장인의 손끝에서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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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03

장인의 손끝에서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의 여섯 번째 주인공, 조대용 염장과 조숙미 계승자의 이야기.

마크 테토와 국가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제114호 조대용 염장, 그리고 5대 계승자이자 딸인 조숙미 작가.

전통 가옥에서 햇빛을 가리거나 사생활을 보호하는 가림막으로 꼭 필요했던 ‘발’. 한 장의 발을 완성하려면 수 천개의 대나무 실이 필요하다. 대나무를 쪼개 얇은 대올을 뽑고 엮기까지, 지문이 닳을 정도로 수고로운 작업이지만 염장의 길은 계속되고 있다. 증조부 때부터 5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조대용 염장, 그리고 그의 딸 조숙미 계승자의 손길을 통해.





위쪽 조대용 염장의 격문양 가리개와 발베니 30년은 모두 대대로 전통을 이어오는 장인정신이 담겨 있다.
아래쪽 무게 추 역할을 하는 고드래, 발을 제작 중인 조대용 염장.

마크 테토 한옥에 산 지 10년이나 됐는데, 발은 생소하네요. 커튼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조대용 비슷해요. 문에 발을 달아두면 햇빛은 막고 선선한 바람은 그대로 들어와요. 밖에서는 실내가 어렴풋이 보이고 안쪽에서도 바깥 풍경이 보이는 묘한 가림막이죠.

마크 테토 발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조대용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부터 발에 대한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 <경국대전>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있어요. 종묘 제사나 궁궐 행사는 물론 어린 임금 대신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할 때도 왕좌 뒤에 발을 내리고 앉아 있었어요. 궁중용, 의례용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마크 테토 그럼 선생님이 요즘 제작하는 발은 어떻게 쓰이나요? 조대용 1970~1980년대에는 가정집에서 발을 많이 사용했는데, 요즘은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찾는 사람이 적네요. 지금은 고궁, 공공 기관 건물 등에 설치할 발을 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의 백인제 가옥에 여섯 점 정도 들어가 있고요.

마크 테토 발이 한 폭의 예술 작품 같습니다. 문양도 보이네요. 조대용 육각형은 거북이 등을 닮아서 귀(龜) 문양이라고 해요. 이 문양을 응용해 발을 짜거나 기쁠 희(喜) 등의 글자를 넣기도 합니다. 발 크기보다는 어떤 내용을 넣느냐가 제작 시간을 좌우하는데, 보통 발 한 장에 3개월에서 6개월 혹은 그 이상 소요되기도 합니다.

마크 테토 어떤 계기로 발과 인연이 시작됐나요? 조대용 어릴 때부터 익숙한 존재였어요.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본업 외 틈날 때마다 발을 제작하셨고, 할아버지도 직접 만든 발을 주변에 선물하시곤 했죠. 또 증조부는 무과 급제해 발을 진상했는데, 철종 임금의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도 집안 내력을 자연스레 이어받았죠. 제 경력만 55년, 집안 내력은 도합 130년 이상 되었습니다.

마크 테토 통영의 발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조대용 대나무 중에서도 얇은 시릿대를 사용합니다. 나무를 채취해 껍질을 벗기고 속대를 벗긴 뒤 햇빛에 말리고, 새벽 이슬을 맞혀요. 그렇게 푸른빛이 사라지고 미색이 나오면 1mm씩 칼로 쪼개기를 반복해야 비로소 얇은 실 같은 대올이 나와요. 쇠판에 1mm보다 작은 홈을 내고 수천 개의 실을 통과시키길 반복하며 가늘고 고르게 다듬는 조름질 과정을 거치고요.

마크 테토 대나무에서 실을 뽑다니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정말 고된 작업이겠네요. 조대용 작업을 하다 보면 지문이 사라져 난처한 적도 있었어요. 서류를 떼야 하는데, 지문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마크 테토 이 손이 바로 문화재와 다름없네요. 여기 달려 있는 도구도 직접 만드신 건가요? 조대용 그렇죠. 이건 고드래예요. 발틀에 거는 무게 추 역할을 하는데, 작업할 때 수월합니다. 뽑아낸 대올로 제가 그려놓은 도안을 보며 꼼꼼히 엮어 대발을 만드는데, 180cm 발 한 장에 지름 0.7mm 정도 대올이 1800개 이상 들어가요.

마크 테토 상당한 인내가 필요한 작업을 수십 년간 해오시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조대용 궁궐이나 종묘, 정자 등 건물에 있던 발을 복원하고 싶습니다. 다음 세대에 발 만드는 기능을 계속 전하는 것이 목표고요.

마크 테토 따님까지 5대째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계승자님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조숙미 저는 결혼해서 다른 일을 하다 염장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이제 10년 정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마크 테토 어려움도 분명 있었을 텐데요. 조숙미 재료부터 대발 엮는 과정까지 전부 배워야 하고 염장 자체가 힘든 일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여자가 한다고 하면, 특히 수상 대회에 참여하면 여성 참가자라 놀라는 분이 많아요. 그런 점에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마크 테토 두 분이 대화 중에도 굉장히 빠른 손놀림으로 작업하시네요. 조숙미 틀과 대나무만 있으면 TV를 보면서도 하고, 일상에서 늘 곁에 두고 발을 엮어요. 발틀을 둘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거든요.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벼워지고 시간도 금방 갑니다. 조대용 대대로 집안 내력이 이어진 비결이기도 해요. 공간이나 장비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터라 선친 때부터 어느 날은 마당에서, 대청에서, 혹은 방에서 발을 엮다 머리맡에 두고 자기도 하며 이 작업을 해왔죠.

마크 테토 조숙미 계승자님은 아버지와 다른 자신만의 정체성이 있나요? 조숙미 이 일은 누군가의 노하우를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만큼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크 테토 계승자님에게 조대용 선생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조숙미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시고, 제게 아이디어도 많이 주세요. 여전히 배울 점이 많습니다.

마크 테토 두 분 덕에 귀한 전통이 이어지네요. 선생님도 따님이 참 대견하시겠어요. 조대용 입문해준 것만으로도 고맙죠. 다음 세대에 이어갈 하나의 끈이 생겼으니까요. 고려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발이라는 문화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크 테토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여러 세대에 걸쳐 130년이 넘도록 가업과 전통을 이어온 발베니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모두 장인정신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두 분에게 장인정신은 무엇일까요? 조숙미 단순히 가업을 잇기보다는 소중한 전통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대용 장인의 길에는 끈기가 있어야 해요. 흔들림 없는 명확한 신념으로 다음 세대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어떤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며 최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장인이 아닐까요.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사진 김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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