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주목받는 문화예술계의 핫 이슈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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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04

지금 주목받는 문화예술계의 핫 이슈

명사 4인의 에세이와 함께 느껴보는 푸른 봄의 생기.

Book
책 수선의 세계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책 수선’이라는 낯설고 매력적인 일을 아름답고 정감 있는 책들을 통해 보여준다.



어린 시절, 새 교과서를 받으면 표지를 조금이라도 깔끔하게 펼치려고 손금을 그은 뒤에 접었다. 또 책싸개를 할 일이 생기면 전보다 잘해보려 무척 공을 들였다. 몇 년 전에는 도서관용 테이프를 사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누렇고 끈끈한 자국을 남기는 스카치테이프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의 내용뿐 아니라 물성에도 꾸준히 애정이 있었지만, ‘책 수선’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북 아트 전문가인 배재영 ‘재영책수선’ 대표의 SNS를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솔직히 모든 걸 내려놓고 도제로 들어가 책 수선을 배우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러나 간간이 올라오는 작업 사진과 풀어헤쳐 단정하게 손질해놓은 페이지의 사진만 봐도 충분히 기분 좋았다. 그리고 곧 작업 이야기가 책으로 묶여 나온다니 더욱 반가웠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전문적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정감 있고 즐겁게 읽히는 책이다. 또 읽고 나면 묘한 치유의 효과가 있는데, 세상의 무언가를 정성껏 수선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도 평균 2년 4개월을 쓴다는 시대이기에, 종이 한 장의 쓰임을 연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느린 시간은 마음을 단정하게 펴준다.
이 책은 재영책수선이 그간 손본 책들에 얽힌 사연과 작업 방식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한 권 한 권 책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며 저자가 스스로 책 수선이라고 명명한 작업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모든 작업 공정을 사진으로 담은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에서 종이를 섬세히 다루는 집중도 높은 시간과 한 과정을 만족스레 마쳤을 때의 보람이 전해진다. 의뢰인이 가져온 당시의 책 사진에 이어 작업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이야기의 끝에는 새로운 모습을 갖춘 책이 방금 미용실에 다녀온 것처럼 산뜻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등장한다.
재영책수선의 책 수선 작업은 조금 독특하게 시작된다. 의뢰인이 책과 맺은 인연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상담사처럼 세세히 귀 기울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수선과는 별개의 작업 철학과 감수성인가 보다 했는데, 읽을수록 이건 함께 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선은 원본 상태를 목표로 하는 복원과 달리,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책은 본래의 의미를 조심스레 유지하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한 수선도 거친다. 3대를 이어오며 낱장으로 흩어진 옥편이 보관함을 얻고, 너덜너덜해진 요리책이 처음부터 있었던 듯 어울리는 책등을 얻는다. 수선가는 종이의 섬유질까지 하나하나 고려해 정밀하게 책을 손보고, 원본 속 폰트의 미세한 차이를 복원하려 긴 시간 애쓰기도 한다. 어릴 적 끄적인 낙서를 그대로 남기는 방식을 택하기도 하고, 애초에 없던 하드커버를 창조하기도 한다.
이런 작업 공정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섬세한 기술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양한 분야에 젊은 장인이 많고, 종종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 이야기가 무척 귀하다는 것은 안다.
어떤 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모두가 잠시 일을 멈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털어놓았듯 이 책은 1인 가게를 운영하며 열심히 홍보도 해야 하는 젊은 소상공인의 또 다른 업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덕에 우리에겐 이렇게 아름답고 신선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더구나 이 책은 무척 실용적이다. 나는 ‘테이프는 종이의 적이다!’라는 뜨끔한 교훈도 얻었다.
글. 김목인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영미 문학 번역가이기도 하다.





Movie
상실의 시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역량을 알게 해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말을 하고 있지만 누구에겐 잘 들리지 않고, 대화인 줄 알고 기억했지만 누구에겐 독백이었던 어긋난 소통에 대한 자기 고백 같은 영화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한 장면.

첫 장면의 잔상이 길게 남는 영화를 좋아한다. 처음이 또렷하면 한참 시간이 지나도 영화에 대한 느낌을 비교적 세세히 기억할 수 있다. 고급 맨션의 침실, 창밖은 아직 푸른빛이 살아나기 직전의 새벽 도시 풍경이다. 나지막하고 건조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천천히 책을 읽는 듯한, 소통을 위한 언어라기보단 종교적 강독이나 독백에 가까운 읊조림. 목소리의 주인이 화면 속 인물인지, 실재하지 않는 존재인지 알 수 없다. 화면 속 침실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현실의 공간이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다른 세계의 현실처럼 느껴졌다.
모든 관계는 결국 상실로 귀결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영원히 함께할 것 같던 누군가도 지나고 보면 한때의 인연이라는 것을. 시간이 흘러 관계의 밀도가 느슨해지고 신선하던 감정이 하나둘 권태라는 그늘에 가려지면 상대의 눈빛이, 음성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이미 잘 알고 있듯 그 경험은 늘 충격적이다. 이력이 쌓여도 쉬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새로운 상실의 시작은 누구에게든 언제나 어렵고 고단한 일이다.
물건도, 사람도, 기억도, 욕망도, 늘 좋을 것 같던 그 무엇도 처음의 마음처럼 오래가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을 향해 간다. 마음은 모든 새것을 순식간에 헌것으로 만든다. 끝에 남는 건 당신과 나, 그 사이를 오간 소통의 흔적뿐이다. 그나마 마음이 각색한 언어, 문자, 소리의 흔적은 적당히 조작되고 완화된 까닭에 상실감은 조절되고 현실은 그럭저럭 견딜 만한 과제가 된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억하고,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만 기억하게 된다. 한때 누구보다 믿는 사이였지만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마음은 서둘러 상실을 받아들일 채비에 들어간다. 마음이 먼저 끝나버린다. 한번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사람, 시간, 공간은 그대로다. 마음만 먼저 떠나가니, 불안과 슬픔은 일찍 증폭되어 쉽게 멈추지 않는 강한 관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 관성이 사람을 옭아맨다.
주인공 가후쿠의 죽은 아내 이름이 왜 ‘오토’인지, 아내 이름과 영화 제목의 ‘마이 카(my car)’가 언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은 영화의 중반부를 지날 무렵이었다.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매일 차 안에서 듣는 남자에게 19년 된 빨간색 사브는 여전히 그의 삶을 지배하는 아내의 정령(精靈)이었다.
하지만 엔딩 장면에서 남자의 빨간색 사브는 운전을 맡았던 미사키의 차가 된다. 미사키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빨간색 사브를 타고 도로를 내달리며 영화는 끝난다. 아름다운 해피엔딩이었다. 아마 가후쿠는 상처를 떨쳐내고 자신의 삶을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 하기 위해 헌 차를 버리고 새 차를 마련했을 것이다. 물론 남자의 새 차가 나오는 뻔한 장면은 영화엔 등장하지 않지만 말이다.
우리의 삶은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그것을 한 페이지씩 읽고 복기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순례의 과정일지 모른다. 그 과정 사이사이에 타인의 이야기가 접속되어 더러는 합쳐지고 더러는 겉돌다 떠나가며 이야기들로 채워진 하나의 세계가 구축된다. 내가 바라보는 세계, 그 좁은 현실이 전부인 우리에게 이 영화는 작은 교훈 하나를 남겨주었다. 지나간 사람, 지나간 시간과 공간에 머물며 후회하는 일은 두말할 것 없이 미련한 짓이겠지만 가끔 어떤 경우엔 그런 과정을 거쳐야 삶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는 교훈. 그런 페이지는 접어두고 페이지 속에 머무는 일을 기꺼이 감내한 사람이 되자는 것이 영화가 내게 건넨 메시지다.
영화의 후반부, <바냐 아저씨> 연극 공연에서 소냐 역을 맡은 장애인 유나는 바냐 역을 맡은 가후쿠를 뒤에서 안은 채 수어로 천천히 말한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도록 해요.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움직이는 유나의 손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가후쿠의 깊은 눈빛이 참 좋았다.
글. 최준석 건축사사무소 나우랩(NAAU LAB)을 운영한다. 얼마 전 에세이 <집의 귓속말>을 발간했다.





Culture
우리가 모르던 한류의 개척자들

BTS와 <오징어 게임>의 성공 이면에는 한국을 알리기 위한 선배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한글과 한국을 배우려는 외국인 학생들.

K-팝, K-무비와 K-드라마, 한식에 이르기까지. 지금 전 세계에서 한류는 최고의 인기 상품으로 통한다. BTS, 박찬욱, 봉준호라는 이름은 한류의 독특한 개성과 경쟁력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작년 연말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오징어 게임>은 어떤가. 무려 83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직접 본 사람만 1억4200만 명이다. 그리고 이런 성공은 모두 한류의 우수성이라는 배경 위에서 이룩한 성과물이다.
그렇다면 오늘과 같은 한류의 성공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온 이들이 있지 않을까.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과거, 한류의 꿈을 품고 고군분투한 사람들이 있다. 1960년대,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고광림 박사는 우리 문화가 강성해지기 위해선 한국어를 보급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다. 한국학과는 고사하고 한국어 강좌조차 없던 당시, 그는 미국 최고의 동양학 권위자인 에드윈 라이샤워(Edwin Reischauer) 하버드 대학교 교수를 찾아갔다. 목적은 오직 하나, 한국어 강좌를 개설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함이었다. 대화는 약속된 시간을 지나 1시간 넘게 이어졌다. 라이샤워 교수에게 한국어 강좌 개설은 절실한 일이 아니었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예산 때문에 한국을 공부하겠다는 연구원도 없었고, 연구자가 없으니 연구 결과물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고광림 박사는 한국을 알아야 중국과 일본을 더 잘 알 수 있다며 그를 설득했다. 그러자 라이샤워 교수가 책 한 권을 꺼냈다. 엔닌이라는 일본 승려가 당나라까지 여행하며 쓴 일기를 모은 책이었다. 라이샤워 교수는 그 책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수정, 보완하던 중이었다. “내가 이걸 읽다 보니 한국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한국인 이름과 지명 그리고 사찰이 많이 나오는데, 한국어 발음을 알아야 말이지요.” 안타깝지만 한국을 한국 자체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주변부 연구로서만 가치를 인정받을 만큼 한국에 대한 관심은 열악했다. 하지만 그렇게 라이샤워 교수의 동의를 얻어냈다. 한 일본 승려의 일기에 등장하는 한국의 지명과 인명을 알기 위한 동기에서 한국어 강좌가 간신히 하버드 대학교에 둥지를 틀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칠 강사를 구하는 일이 문제였다. 고광림 박사의 발걸음은 당시 서두수 박사가 있던 뉴욕으로 향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문교부 차관으로 내정되어 귀국을 앞둔 서두수 박사가 있던 뉴욕으로 강의를 맡아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고광림 박사는 이미 서울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 서두수 박사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문교부 차관을 할 사람은 한국에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버드에서 한국어 강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이 기회는 절대 놓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하버드에서 한국어 강좌 개설을 알리는 통지가 도착했다. 서두수 박사는 3년간 객원 부교수로 강의를 맡았다. 고광림 박사는 그 뒤에도 예일 대학교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대학에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그렇게 그들이 뿌린 씨앗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021년 현재 미국 아이비리그 모든 대학에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107개국 1411개 대학에 한국학 강좌가 열린다. 프린스턴 같은 명문대에서 학기당 100명이 넘는 수강생이 수업을 듣고 있다. ‘중국과 일본을 알기 위해 한국을 알아야 한다’며 강좌 개설을 설득하던 과거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한 사람들,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는 것 역시 지금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 아닐까.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작가. 2020년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선보였다.





Fashion
모나코 공주의 상속녀 룩

샤를로트 카시라기는 ‘우아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모나코의 전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손녀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끌었다. 더군다나 그녀 자신의 시크한 개성과 쿨한 이미지로 많은 여성의 로망이 되었다.



모나코 왕실의 패션 아이콘 샤를로트 카시라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모나코 왕실의 패션 아이콘, 샤를로트 카시라기(Charlotte Casiraghi). 그녀는 모나코 공주 카롤린 그리말디의 딸이자, 모나코 왕 알베르 2세의 조카다. 화려한 공주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비영리단체를 지지하는 인도주의자이자 자연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 그리고 뮤직비디오와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를 만드는 프로듀서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30대 열혈 파워우먼이라 더욱 매력적이다. 게다가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철학도답게 철학 관련 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으며, 모나코철학학회 회장으로서 매년 다양한 주제로 세계 석학들과의 철학적 만남을 주재하고 있다.
한편 구찌, 생 로랑, 몽블랑 등 명품 브랜드의 뮤즈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는 그녀는 작년에는 샤넬 앰배서더로서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샤를로트 카시라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스타일은 승마 룩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승마 선수로도 활약한 그녀다. 꽤 오래전이지만 승마장에서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포착된, 클래식한 재킷에 피케 셔츠와 타이트한 화이트 진 그리고 라이더 부츠로 연출한 그녀의 클래식한 승마 룩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럽다.
평상시 스트리트 룩도 요즘 흔히 쓰는 말로 ‘꾸안꾸 스타일’이 정말 잘 어울리는데 가죽 재킷에 심플한 티셔츠, 청바지에 로퍼나 스니커즈를 신고 머플러 하나만 목에 칭칭 둘러도 윤기 나는 그녀의 긴 갈색 머리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만약 금발이었다면 그런 고급스러운 느낌은 조금 덜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얼굴 윤곽과 흑갈색 헤어가 잘 어울린다.
로열패밀리라고 해서 마냥 클래식한 스타일만 고집하기보다 때로는 파격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스모키 메이크업에 한쪽 어깨를 드러내는 에지 있는 오블리크 네크라인의 마이크로미니 원피스에 투박한 앵클부츠를 매치해 어번 시크 룩을 선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반대로 빈티지 패턴이 돋보이는 보헤미안 시크 스타일의 롱 드레스를 입기도 한다. 2019년 칸 영화제에는
생 로랑의 점프슈트 차림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었는데, 하의가 굉장히 짧은 쇼트 팬츠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오픈 마인드로 패션을 사랑하고 즐기는 그녀의 자유로운 감성이 드러난 옷차림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결혼한 이후에는 여성스럽고 성숙한 스타일을 주로 선보이는데, 샤넬의 빈티지 롱 드레스를 입기도 하고 여성미가 느껴지는 플로럴 패턴 롱 드레스 차림에 자연스럽게 헤어를 묶고 귀고리를 길게 늘어뜨려 포인트를 주기도 한다. 역시나 그녀의 옷차림만큼 빛나는 긴 헤어가 전체적으로 분위기 있는 스타일을 연출하는 데 일조한다.
패션은 언제나 자유롭게 다양한 스타일을 즐기지만 헤어만큼은 자연스러운 긴 생머리를 고수하는데, 포멀한 자리에서 드레스 차림에 올림머리를 하는 정도로만 변화를 준다. 그래서인지 ‘내추럴 뷰티’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그녀다. 세계적으로 멋쟁이라 불리는 셀레브러티들을 보면 옷차림은 완벽하게 코디하지만 헤어만큼은 조금 빈틈을 남겨두듯 무심하게 연출하는 공통점이 있다. 옷 자체도 중요하지만 헤어 스타일링, 그 한 끗 차이가 촌스럽거나 세련됨의 경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새해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샤를로트 카시라기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글. 장은정 플랜제이(Plan J)를 운영하는 스타일 컨설턴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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