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미 작가의 새로운 도전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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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18

이경미 작가의 새로운 도전

'고양이 작가'로 알려진 이경미 작가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마스터피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리즈를 선보인다.

아래 왼쪽 No. 12/15, 91×79×8cm, Oil on Canvas & Constructed Birch Panel, 2022.
아래 오른쪽 Four angels holding back the winds, 156×121×8cm, Oil on Canvas & Constructed Birch Panel, 2015~2022.

작업실이 갤러리 같습니다. 작가들은 보통 그림을 겹겹이 쌓아놓는데, 작품이 흰 벽에 깔끔하게 걸려 있네요. 작업실을 옮긴 지 1년 정도 됐어요. 본래 탁 트인 공간이었는데, 벽을 세워 구획을 나눴죠. 특히 손님에게 작품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여러 번 도안을 고쳤어요. 갤러리처럼 느껴진다니 성공했네요.(웃음) 한편으론 코로나19의 영향이 큽니다. 예전에는 갤러리와 작가가 하는 일이 서로 명확했고, 고정적이었죠. 갤러리가 작가를 프로모션하고 작가들은 작업만 하는. 하지만 팬데믹으로 갤러리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작가 스스로 홍보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미 젊은 작가들은 정말 잘하고 있고, 저는 그걸 벤치마킹하고 있어요. 최근 SNS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낀 세대인지라 저항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조금씩 적응하고 있어요.

작가님은 분신과도 같은 고양이 나나가 등장하는 ‘스트리트(Street)’ 시리즈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선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화 ‘요한의 묵시록(The Revelation to John)’을 모티브로 한 ‘뉴 버티컬 페인팅’ 시리즈를 주로 선보이신다고요. 2019년 첫선을 보인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 그 시작점부터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인 시절을 제외하곤 2017년 귀국하기 전까지 줄곧 해외에 있었습니다. 미국에 오래 머물렀고, 그다음엔 독일이었죠. 특히 미국에 있는 동안 나나가 주인공인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많은 분이 나나를 찾아주시니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론 다른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죠. 마침 독일로 향하면서 새로운 작업에 도전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머무른 프랑크푸르트에는 좋은 미술관이 참 많은데요.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뒤러의 회고전이 열렸어요. 한 공간에 ‘요한의 묵시록’ 연작 15점이 모두 걸려 있는데, 그렇게 큰 에너지를 느낀 건 처음이었어요.

왜 유독 뒤러, 그리고 ‘요한의 묵시록’이었을까요? 뒤러는 ‘독일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화가이자 판화가입니다. 그가 특별했던 이유는 작가로서 실력도 뛰어났지만, 스스로 역량을 잘 드러낸 데 있죠. 뒤러 이전에는 성직자에게 주문을 받아 작업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뒤러는 자신이 기획하고 투자해 ‘요한의 묵시록’을 제작했어요. 기존 목판화보다 사이즈도 키웠고, 화면 구성도 남달랐죠. 당시 사람들에겐 잘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실제로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예술적·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고요. 작가의 비전을 포함한 모든 것이 제게 감동으로 다가왔고, 작품을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대신 작품을 전사(轉寫)하기 시작했죠. 그때만 해도 이것이 새로운 시리즈로 발전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사 작업이 하나의 시리즈로 완성되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독일에 오래 머무를 줄 알았는데, 예정보다 빨리 귀국하게 됐어요. 돌이켜보니 한국에서 교육받고 미국에서 활동하다 독일에 머물고, 다시 한국으로 오면서 저만의 연대기적 레이어가 쌓였더군요. 뒤러와 그의 ‘요한의 묵시록’에서도 그러한 레이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뒤러의 작품에선 유려한 인물 표현 등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죠. 성경 이야기는 중동 지역을 배경으로 하지만, 뒤러의 ‘요한의 묵시록’엔 그가 살았던 독일의 풍경이 엿보여요. 그래서 전반적 컨셉을 뒤러가 쌓은 레이어에 500년이 지난 현재를 사는 제 레이어를 덧입히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역사적 마스터피스를 다루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부분적으로 인용하거나 전체적으로 자기 스타일로 바꾸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원화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이미지를 올리는 방식을 택했고, 그런 만큼 뒤러와 저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완성한 작품엔 이미지가 여러 겹 쌓이고, 과거와 현재 시간이 중첩되기에 그 의미를 살려 ‘뉴 버티컬 페인팅’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2019년 선보인 작품에 현대적이면서도 이국적인 이미지가 돋보이는 건 작가님의 시간, 그러니까 경험이 묻어 있기 때문이군요. 독일 슈퍼마켓의 상품광고 전단지, 천연색 신문 간지 광고 등에서 추출한 이미지를 활용했죠. 딱히 뒤러의 이미지와 의미적 연관성을 짓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저만의 역사를 정리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2년여 시간이 흘러 이 작업을 다시 소환했으니, 신작에는 한국에서 보고 느낀 경험이 직간접적으로 녹아 있습니다. <불의 검>이라는 만화책이 ‘요한의 묵시록’과 잘 어울려 그 책에서 한글 의성어와 의태어를 뽑아내 작품에 반영한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Nana Astro-M2202R, 60×49×3.8cm, Oil & Acrylic on Shaped Wood Panel, 2022.

그 밖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보이는데요. 특히 작품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프레임의 폭이 넓어진 것이 눈에 띕니다. 동시에 뒤러의 자리가 줄기도 했고요. 프레임은 온전한 제 영역인 만큼, 작품에서 ‘이경미’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처음 뒤러의 ‘요한의 묵시록’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낀 점은 연작 15점이 각기 다른 구도라는 거예요. 신작에선 그 특징을 부각하고자 구도에 대한 제 시선을 추상화해 좀 더 다양한 패턴과 색으로 나타냈습니다. 또 그의 ‘요한의 묵시록’이 인물이 잘 보이는 구도는 아닌데, 드러낼 부분은 강조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레이어로 덮는 식으로 작품을 한층 현대적으로 만들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뉴 버티컬 페인팅’에 사용한 입체 프레임은 관람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는 회화 작품에 저부조를 만들어 입체감을 살리는 작가님의 시그너처 기법과도 연관돼 보이고요. 제가 추구하는 조형성은 어린 시절 경험과 관련이 많습니다. 시골에 살던 저는 가출한 어머니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먼 산을 바라봤는데, 그 뒤에 어머니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 영향인지, 배움의 시기에도 무언가 완벽한 이상향이나 흠 없는 진리가 있지 않을까 고민했죠. 하지만 나이가 들며 세상일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오히려 그 점을 작품에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고정된 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저부조 등으로 생물학적 착시를 만드는 것이죠.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볼 때 단번에 의도를 파악하기보다는 ‘이게 뭐지?’ 하면서 다양한 각도로 살폈으면 합니다.

한편으로 ‘뉴 버티컬 페인팅’ 신작에도 군데군데 고양이 나나가 등장합니다. 작업 초기부터 나나를 그린 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나나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고양이를 그린 건 나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어요. 집에서는 나나를 내보내고 싶어 했는데, 제가 학생일 때라 과제를 핑계 삼으면 안 내보낼 것 같았거든요.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딜 당시만 해도 왜 귀여운 강아지가 아닌 불길한 고양이를 그리는지 질문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제게 나나는 소중한 존재였고,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으니 지켜야 할 당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나라는 무명의 타자가 저를 대변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작업 활동을 이어가며 저는 자리를 잡았고, 고양이도 반려동물로 사랑받으면서 처음의 의미가 희석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독일에서 한국에 들어온 겨울에 나나는 세상을 떠났죠. 이별 후 나나가 단순한 고양이가 아닌, 함께한 20년의 세월 그 자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후 나나를 더 그리고 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나가 전면에 나서는 ‘나나 아스트로(Nana Astro)’ 시리즈는 물론 ‘스트리트’ 시리즈 두 점을 출품하는데, 성당 같은 성스러운 공간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현실 너머 어딘가를 향해 기도하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인 것 같아요.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모여 일상을 예술로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흩어진 뭔가를 하나로 응축해 그려내는 일이 종교적 표피로 다가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주라는 소재를 즐겨 사용하는데요. 인간 지식의 정수가 합쳐져 지구 밖으로 나아가는 모습에서 숭고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에 영상 작품 한 점을 선보이는데, 성당과 로켓 발사 장면이 교차하며 등장하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한편으로 저는 숭고한 것, 정수에 관한 이야기를 몇몇 사람만 알아보게 하고 싶지 않아요. 편집한 방식으로 전달되는 추상적 느낌을 배우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작업 초창기 목표였고, 그 뉘앙스를 지금도 가져가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요? 이번 전시 제목은 ‘Old Way×New Era’입니다. 과거 그림이 뒤러의 ‘요한의 묵시록’처럼 서사를 전달하는 목적이 컸다면, 현대에 들어 다양한 매체가 출현하며 그 의미가 퇴색됐죠. 그럼에도 그림은 감동을 전합니다. 붓질에 깃든 에너지 덕분이죠. ‘뉴 버티컬 페인팅’ 시리즈를 만들 때 뒤러의 작품 이미지를 인쇄해 붙이는 ‘뉴 웨이’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손으로 한 땀 한 땀 그리는 ‘올드 웨이’로 작업했어요. 기술이 발달할수록 쉽게 취할 수 있는 것과 대비되는 것의 의미가 증폭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뒤러의 그림을 볼 때 느낀, 그리고 그것을 전사하며 느낀 에너지가 관람객에게 전달되길 바랍니다.







No. 2/15, 91×79×8cm, Oil on Canvas & Constructed Birch Panel, 2022.
No. 8/15, 91×79×8cm, Oil on Canvas & Constructed Birch Panel, 2022.
No. 9/15, 91×79×8cm, Oil on Canvas & Constructed Birch Panel, 2022.
No. 10/15, 91×79×8cm, Oil on Canvas & Constructed Birch Panel, 2022.


 Profile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와 회화과를 졸업,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스트리트’ 시리즈 등 고양이 나나를 화면에 담아 자신을 대변해온 작가는 끊임없이 작품 세계를 확장, 알브레히트 뒤러의 ‘요한의 묵시록’을 오마주한 ‘뉴 버티컬 페인팅’ 시리즈로 2019년 제24회 석주미술상을 받았다. 카이스갤러리 서울과 홍콩, 성북구립미술관, 상하이의 리앙 프로젝트 코 스페이스(Liang Project Co Space), 타이중의 아트에이지(ARTAGE) 등에서 개인전을 치렀고, 세종문화회관과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 등에서 열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경기문화재단에서 그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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