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이 그려내는 컬러의 향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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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4

거장이 그려내는 컬러의 향연

프랑스 추상미술의 거장 베르나르 프리츠의 역동적이고 복합적 감각의 신작.

한국에서 5년 만에 여는 개인전입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팬데믹이라는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다행히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제 일상은 거의 비슷해요.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이사한 지도 17년 되었고요. 미테(Mitte) 지구에 집을 지었고, 작업실로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작업실로 올라가죠. 어시스턴트 없이 작업하기에 행정 업무를 직접 처리하고, 작품을 구상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밑 작업을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2009년 학고재에서 치른 개인전을 비롯해 2014년 조현화랑, 2017년 페로탕 서울에서도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한 만큼 특별한 추억을 많이 쌓았을 것 같습니다. 1995년 갤러리 신라의 초대로 처음 한국에 왔는데, 한 달간 남부 지방을 여행하며 옛 신라의 정원 등 아름다운 풍경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워낙 오래전이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만난 사람들이 모두 친절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요. 지금은 모든 게 글로벌화되면서 소통 면에서 훨씬 즐겁고 쉬워졌죠. 몇 년 사이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잠깐의 유행이 아닌 깊은 변화로서 도약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2017년 전시와 다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이전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에는 잘 정리된 책장처럼 수평과 수직의 규칙적 형태가 부각되었는데, 올해 출품작은 즉흥적인 붓질이 눈길을 끕니다. 음, 저는 항상 같은 작업에 임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통로를 찾아 동일한 관념을 묘사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 통로를 찾는 측면에서 관람객이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겠지만,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혼돈(chaos)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고, 제 작품은 예술을 위해 탄생합니다. 한번 붓을 들면 긴박하게 완성되는 제 작업은 창조와 파괴, 재탄생 과정을 수반하죠. 저는 그런 것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스스로 혼돈 속에서 태어난, 어찌 보면 이미지가 없는 이미지 말이죠.
많은 사람이 작품의 아름다운 컬러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과거 인터뷰를 보니 작가님은 컬러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방금 대답으로 그 뜻을 조금은 헤아릴 것도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컬러는 그 자체로 주인공이기보다는, 관념을 표현하는 도구에 가까운 것이군요. 근래엔 대여섯 가지 컬러로만 작업하고 있어요. 같은 컬러로 작업하다 보니 종종 지루하기도 합니다. 한두 가지 컬러만 사용해보기도 했지만, 썩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어요. 글쎄요, 저는 여전히 컬러를 선택하거나 결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작품은 화려하지만, 그렇게 브랜딩된 측면도 있습니다. 작업에서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해왔는데,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또 다른 유형화가 이루어진 것이죠. 마치 덫에 걸린 기분이에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고민 중입니다.
그런 작가님의 모습에서 끊임없이 예술을 탐구하는 구도자적 면모가 엿보입니다. 우리는 친근하게 예술에 접근하고, 간편하게 문화를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 젊은 작가의 작품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지만, 이전 세대에 속한 저는 예술이 과거로부터의 배움을 기반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저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작가들이 쌓아온 층(layer) 위에 저만의 층을 더하길 바라죠. 항상 그런 지점을 생각하다 보니, 제게 그림은 보이는 그대로 감동을 넘어 지적으로 큰 만족감을 줍니다. 그림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부터 새로운 지적 차원이 형성되는 거죠. 제 작품에 그러한 차원이 녹아 있길 바랍니다.





‘Isegʼ, 2022.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Aderʼ, 2022.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감상자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작품을 이해합니다. 저만 해도 출품작 ‘Ader’(2022)에서 물속을 유영하는 금붕어의 모습이, ‘Iseg’(2022)에서는 산 위에 구름 낀 풍경이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과연 제가 작품을 제대로 감상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저희는 작가님의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우선 저는 구상 작업을 보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형상이 있으면 의미를 쉽게 파악할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는 고야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다른 시대 사람이니까요. 마티스와 피카소의 작업은 형상보다 표현 방식에 집중해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추상 작업도 명확한 소통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다양한 해석을 열어두기에 작가와 감상자가 쉽게 연결될 가능성이 있죠. 그런 점에 끌려 작업 초기 추상 작업에 몰두했지만, 알다시피 저는 복잡한 걸 좋아합니다.(웃음) 추상 작업에서 형상화의 가능성을 깨닫고 여러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관람객은 제 작품에서 자신을 투영하고 싶은 무언가를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제가 금붕어를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안에서 금붕어를 발견하는 것처럼. 그러한 장치가 관람객을 그림 속으로 안내하고 이끈다면 제 시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님은 1977년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 그룹전으로 첫 전시를 치렀고, 이후 4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붓을 막 들었던 작가님과 지금의 작가님은 무엇이 가장 다른가요?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공부했지만, 졸업 후 8년간 다른 일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거든요. 서른여섯 살에 다시 붓을 들었을 때에는 충분한 사유의 시간이 있었던 만큼 스스로 무엇을 추구하는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때와 지금의 저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앞서 늘 같은 작업에 임한다고 이야기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최근 미술계에 신기술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NFT가 대표적이죠. 전통 회화 작가인 작가님은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꽤 흥미롭지만, 작업해보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가지는 않습니다. 실체가 없기 때문이죠. 여자친구를 좋아하지만, 여자친구를 찍은 사진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과 비슷해요. 저를 만족시키는 건 그림 자체입니다. 그건 확실히 다른 생각이에요.
넷플릭스 CEO는 최대 경쟁자로 게임을 지목했습니다. 콘텐츠가 장르와 분야를 넘어 유한한 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시대가 온 거죠. 이런 상황에서 회화는 이전과 같은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실제로 요즘은 많은 사람이 영상 콘텐츠에 흥미를 느낍니다. 회화 등 예술은 잊힌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중요한 건 여전히 예술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있는 한 예술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술에서 비롯되는 지적, 정서적 쾌감은 넷플릭스 영상과는 다르죠. 예술은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것이고, 저는 앞으로도 이들을 위해 즐겁게 작업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노력 중인 젊은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미술관을 방문해 많은 작품을 감상하고, 예술사를 공부하며 감각을 익히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전설적 인물, 그리고 그들의 철학은 도움이 될 뿐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습니다. 작품은 가능한 한 직접 봐야 하고요. 한 작품을 다른 작품과 비교하며 무엇이 다른지 다양성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예술에 대한 판단과 견해를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김미영(jarah@noblesse.com)
사진 서승희(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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