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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30

'휘트니 비엔날레'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미국을 넘어 세계의 아티스트와 손을 잡고 확장해가는 휘트니 비엔날레

위쪽 ‘2022 휘트니 비엔날레’ 설치 전경. 5층은 벽을 없애고 밝은 분위기로 꾸며 어두운 6층과 대조를 이룬다. @Photo by Ron Amstutz
아래쪽 6층에 들어서면 보이는 ‘데니세 토마소스’의 강렬한 작품. (왼쪽부터) ‘Jail’(1993)과 ‘Displaced Burial/Burial at Gorée’(1993). @Photo by Ron Amstutz

휘트니 비엔날레는 휘트니 미술관이 1932년부터 ‘Annual’이라는 제목의 연례 전시를 열면서 시작됐다. 해마다 미국의 조각과 회화를 번갈아 주목하며 꾸준히 전시를 열다가 1973년 지금과 같은 비엔날레 형식으로 전환, 더욱 내실 있는 구성으로 현재까지 3600명 이상의 예술가를 배출했다. 2015년에는 휘트니 미술관이 어퍼이스트의 상징적 건물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분관(MET Breuer)에 내어주고(지금 그 자리는 프릭 매디슨(Frick Madison)으로 바뀌었다), 당시 힙스터의 성지라 불린 미트패킹 지역으로 이사하면서 또 한번 전환점을 맞았다.
올해는 휘트니 큐레이터 데이비드 브레슬린(David Breslin)과 에이드리엔 에드워즈(Adrienne Edwards)가 공동 기획을 맡았다. 총 63명의 다국적 예술가가 참여하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Quiet as It’s Kept’로, 소설가 토니 모리슨과 재즈 드러머 맥스 로치, 예술가 데이비드 해먼스 등이 인용한 문구에서 따왔다. 사람들은 보통 비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이 문구를 사용하는데, 작품을 하나하나 관람하다 보면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재키 코놀리(Jacky Connolly)의 멀티 채널 영상 작품 ‘Descent into Hell’(2021)의 스틸 컷. @Courtesy of the Artist

두 큐레이터는 2019년 휘트니 비엔날레가 폐막한 후 같은 해 말부터 계획에 돌입했다. 처음 준비할 때는 코로나19, 미국을 뒤흔든 인종차별 사건과 정의를 요구하는 시위, 2020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 같은 굵직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하지만 세계 전역에 급박한 변화가 찾아왔고, 심지어 행사 기간을 한 해 미루면서 이런저런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고민 끝에 위태롭고 즉흥적인 시기를 반영하고자 미국에서 발생한 사회·인종·평등에 관한 이슈를 주목하고, 과거·현재·미래가 서로 맞닿을 만한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냈다.
떠오르는 신예 아티스트를 주로 초청해온 휘트니 비엔날레는 점차 이를 개선했고, 올해는 완전히 규칙을 탈피해 중견 작가와 작고 작가를 대거 소개한다. 인종차별이나 혐오 등의 소재를 담은 주제를 확고히 하듯, 유색 인종의 작가도 이전보다 많이 포함돼 있다. 그뿐 아니라 미래지향적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예전 비엔날레와 달리 올해는 과거를 샅샅이 살펴보고 기억해야 결국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전망하며 과거 예술이 현대미술에, 과거 사건이 후대에 미치는 영향 등을 탐구한다. 현재는 과거와 연결돼 있고, 최근 일어난 사건·사고도 깊이 뿌리 박힌 과거 잔재에서 왔다고 다시 한번 상기한다.





한국인 참여 작가 차학경의 영상 ‘Permutations’ (1976) 스틸 컷. Courtesy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 Gift of the Theresa Hak Kyung Cha Archive
차학경의 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의 워스 라이더 아트 갤러리 (Worth Ryder Art Gallery)에서 한 퍼포먼스 ‘A Ble Wail’의 도큐멘테이션. Courtesy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Art Museum and Pacific Film Archive Gift of the Theresa Hak Kyung Cha Memorial Foundation
파오 후아 허(Pao Houa Her)의 ‘Untitled from My Mother’s Flowers’ (2016). Collection of the Artist Courtesy the Artist and Bockley Gallery, Minneapolis
알리아 파리드(Alia Farid)의 ‘Palm Orchard’(2022).


사회를 반영한 대조적 디스플레이
휘트니 미술관 5·6층에 모습을 드러낸 이번 비엔날레는 현재 미국 사회에 만연한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반영하고, 두 층을 완전히 대조적으로 구성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6층은 완벽한 어둠 그 자체. 검은색으로 벽을 칠하고 바닥에는 검은색 카펫을 깔아 빛이 들지 않는 깜깜한 공간으로 만들었으며, 작품에는 옅은 조명을 비추고 높은 칸막이로 공간을 나눠 미로처럼 구성했다.
게다가 입구부터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주로 다루는 작가 데니세 토마소스(Denyse Thomasos)가 노예를 수용한 구조물을 그린 대규모 흑백 회화 작품을 걸어 어둠을 극대화한다. 수많은 선을 겹치고 밀집한 그림은 “밀실 공포증 상태를 재현하고자 선을 사용했고, 숨을 쉴 공간을 남겨두지 않았다. 감금된 느낌을 내려고 했다”라는 데니세 토마소스의 말처럼, 작가와 기획자의 의도가 맞물려 6층 입구부터 어둠과 작품에 동시에 압도된다.
칠레 출신 작가 알프레도 자르(Alfredo Jaar)의 몰입형 비디오 설치 ‘06.01.2020 18.39’(2022)도 6층의 암울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2020년, 미국에서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작가는 당시 사건 이후 일어난 시위를 재현하고, 시위대를 엄호하는지 위협하는지 모를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화면으로 작품을 마무리하며 사태를 꼬집는다.
한편 5층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띤다. 휘트니 비엔날레의 건축가 렌초 피아노(Renzo Piano)가 설계한 대로 기둥 없이 탁 트인 5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작품 사이에 가벽을 거의 설치하지 않고 시원하게 개방한다. 밝은 빛으로 가득한 전시장 곳곳에는 회화와 영상만 소개하는 6층과 달리 조각·설치·회화·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매체가 경계 없이 펼쳐진다. 작품의 구분이 없는 데다 오가는 사람이 워낙 많아 살짝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두 층이 완벽한 대조를 이루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5층에서는 작고한 한국계 작가 차학경의 작품이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1970년대 미국에서 아시아계 이민자이자 여성으로서 살던 당시의 치열한 삶을 기록한 작품을 비롯해 1970년대에 제작한 작품을 다수 선보인다. 이동·망명·가족·시간이라는 주제에 몰두하며 후대에 페미니스트, 개념예술가, 아시아계 미국학 분야의 중요한 인물로 이름을 남긴 작가의 작품 14점을 볼 수 있다. 내부 전시장 외에도 휘트니의 상징적 공간 중 하나이자 5층 전시장에서 이어지는 루프톱 테라스에는 올해로 휘트니 비엔날레에 여섯 번째 참여하는 미국 조각가 찰스 레이(Charles Ray)의 인체 조각이 전시돼 있다.
참여 작가들은 인종차별, 혐오, 환경 파괴, 총기 사고, 폭력, 이민, 미국 원주민의 정체성, 식민지, 민주주의 붕괴, 의료 불평등 같은 무겁지만 누군가는 꼭 짚어야 하는 주제를 다룬다. 지난 3년간 사회는 크게 분열됐다. 세계적 혼란을 가져온 바이러스의 대유행뿐 아니라 여전히 사회에 들끓는 혐오 범죄와 인종차별, 폭력 문제를 경험하며 큰 정신적 충격에 노출됐다.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불평등과 편협함을 쉬쉬하며 비밀로 치부하는 현대사회의 위선을 겪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가 ‘비엔날레’를 일컬어 만화경 같다고 표현할 만큼 단발성 짙은 비엔날레가 현재의 이슈를 온전히 이해하고 담아내기에는 전시 형식이 산발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2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는 비엔날레를 향한 기대가 큰 만큼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면, 시간이 흐르고 가치관이 변하면서 과거 빗나간 주제 선정으로 비난받은 비엔날레가 후대에는 좋은 사례로 꼽히는 일도 더러 있다. 올해 80회를 맞은 휘트니 비엔날레는 미래에 어떻게 기억될까? 두 큐레이터는 우리가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그대로 침묵하기(‘Quite as It’s Kept’)보다는 혼란 속에서도 과거를 발판 삼아 삶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암흑 같은 순간에 맞닥뜨려도 결국 삶은 계속된다는 믿음은 앞으로 어떤 시대가 오더라도 분명 유의미하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휘트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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