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현대미술 비엔날레' 여전히, 아직도, 문제적인 현재!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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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31

'베를린 현대미술 비엔날레' 여전히, 아직도, 문제적인 현재!

최신의 예술 경향을 고찰하는 예술계의 실험실, 베니스 비엔날레

이번 비엔날레의 메인 무대인 KW 현대미술관.

올해로 12회를 맞이한 베를린 현대미술 비엔날레는 역대 최초로 아티스트에게 예술감독을 맡겼다. 알제리계 프랑스 작가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를 중심으로 꾸린 아티스틱팀에는 큐레이터·이론가·연구자인 아나 테이셰이라 핀토(Ana Teixeira Pinto), 도 뜨엉 린(ðỗ Tường Linh), 마리 엘렌 페레이라(Marie Hélène Pereira), 놈 시걸(Noam Segal), 라셔 살티(Rasha Salti)가 합류했다. 카데르 아티아는 “오늘날 우리가 당도한 곳은 우연이 이끈 것이 아니다. 수 세기에 걸쳐 건설한 역사적 형성의 결과다”라고 선언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현재 세계가 앓는 문제는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누적된 상처를 견디고 있기 때문에 비롯됐다는 의미다. 그는 이런 진단에 자신의 작업을 통해 꾸준히 주창한 ‘repair’, 즉 수리 혹은 바로잡기라는 개념을 적용한다. 아티아와 아티스틱팀이 주목한 이번 비엔날레의 중심 주제는 식민주의, 제국주의, 파시즘, 자본주의 등 묵직한 개념이다. 만약 이러한 거대 이데올로기가 이미 우리 시대가 충분히 해결한 이전 세기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와 관련한 문제 제기를 다소 낯설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Still Present!’라는 비엔날레의 제목이 명시하듯, 카데르 아티아는 현재라는 시점을 강조한다. 그러니 앞의 단어를 인종, 젠더, 계급, 생태학적 위기, 사회통제 등으로 세분화한다면 이는 국제사회가 당면한 오늘날 이슈이자 일련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쟁과 식민주의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베를린, 독일, 나아가 유럽이라는 대륙을 구성하는 다양성과 지정학적 특성, 반복되는 역사와 문화적 갈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미래를 위한 탈식민화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는 대부분 시차의 혼란이 따르지 않는다.





아카데미 데어 쿤스트(Akademie der Künste, Hanseatenweg)에 설치된 이마니 재클린 브라운(Imani Jacqueline Brown)의 영상 설치
‘What Remains at the Ends of the Earth?’(2022). @Photo by dotgain.info

가령, 폐공장이던 KW 현대미술관 초입의 벽에 설치된 닐 얄테르(Nil Yalter)의 작품 ‘Exile is a Hard Job’은 1980년대 프랑스 파리로 넘어온 포르투갈과 튀르키예 노동 계급 이민자의 인터뷰를 담은 사진과 영상이다. 방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은 시리아 난민부터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까지 여전히 국경이라는 선을 넘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망명 혹은 유배의 현실과 공명한다. 같은 전시장 안에 또 다른 복합 설치 작품을 선보인 미리암 엘 하이크(Myriam el Haïk)는 미니멀하고 시적인 위빙 설치를 중심으로 피아노 연주와 라이브 월 드로잉 퍼포먼스로 구성한 작품 ‘Please Patterns’를 출품했다. 기억, 약속 등을 상기시키는 엘 하이크의 주제는 ‘시간’으로, 완료된 행동과 미처 끝나지 않은 것을 엮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느끼게 한다.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작품의 색깔처럼 다섯 곳의 미술관 및 베를린 곳곳에서 진행하는 베를린 현대미술 비엔날레는 70명(팀)이 넘는 예술가가 채택한 다채로운 방법론으로 느슨한 정신의 긴장을 일깨운다.
무엇보다 작가의 개인적 배경에서 기인한 직설적이고 명백한 작업이 눈에 띈다. 그중 메이 응우옌-롱(Mai Nguyen-Long)의 ‘Vomit Girl’은 베트남전쟁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조각 작품이다. 응우옌-롱은 베트남인 아버지와 호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파푸아뉴기니와 필리핀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이후 호주·중국·베트남에서 거주했다. 연속적 이주 경험 속에서 사회적·정치적 감각을 벼린 작가는 정체성과 역사·문화적 유산을 가로지르는 작업을 한다. ‘Vomit Girl’ 역시 끝없이 구토하는 존재를 통해 “언어, 목소리,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계속해서 지워진 존재가 있음”을 밝히고, 엄청난 슬픔과 망각 속에 잊힌 이들의 고통을 곱씹는다.





스벤 조네(Sven Johne)의 작품 ’Medicinal Plants in the Death Strip, Germany(detail)’ (2021) 역시 아카데미 데어 쿤스트에서 볼 수 있다.
@Photo by dotgain.info

프라바카르 캄블레(Prabhakar Kamble)의 조각 시리즈 또한 인도 사회에 존재하는 카스트제도의 명암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계급이 정체성을 규정하는 사회에서 하층 신분에 속하는 절대다수가 얼마나 소외당하고 고통받는지를 시각화한 것. 농민의 발을 금속 주형으로 본떠 위에 기둥을 세우고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지는 테라코타 항아리로 카스트제도의 유형을 상징한다. 사회적 멸시를 감내하며 남들이 기피하는 일에 종사하도록 내몰리면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달리트(카스트 내에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가 사용하는 빗자루, 위생 장갑 등 캄블레가 ‘Utarand’(2022)에 활용하는 오브제는 어떤 성명서보다 정치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진지하다. 굉장히 진지하다.” 그래서인지 화두의 비장함에 비해 “미학적, 개념적 정확성의 결여”를 지적하는 리뷰도 있다. 주제어가 담은 이데올로기의 거대함에 개별 작품의 매력이 압도됐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를린 현대미술 비엔날레 측은 일방통행적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주제별 투어, 워크숍, 퍼포먼스, 스크리닝, 콘퍼런스 등으로 담론과 비평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 참여를 권함으로써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펼쳐 보였다.
날카로움을 숨긴 채 인류의 의식과 무의식을 횡행하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어쩌면 현재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예술은 예측할 수 없는 힘으로 시간을 유예하고 저항의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현재의 희망을 공고히 한다. 예술가이자 감독인 카데르 아티아의 신념이 굳건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현존해야 한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베를린 현대미술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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