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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31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영역으로

애니메이션을 도구로 '에릭 오'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신작 <오리진>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선 에릭 오.

에릭 오(Erick Oh)를 기억하는지. 그의 애니메이션 <오페라(Opera)>(2020)는 영화 <미나리>로 들썩이던 지난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올라 마지막까지 경쟁을 펼쳤다. 유일한 한국 제작 작품이자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중 유일한 아시아 작품이었다. <오페라>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살아 있는 예술 작품’으로, <워싱턴포스트>는 ‘인류의 모든 면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호평했다.
사실 에릭 오는 <오페라>로 널리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의 애니메이터로 <도리를 찾아서>, <인사이드 아웃> 등의 제작에 참여했고, 톤코하우스 소속으로 TV 시리즈 <피그: 더 댐 키퍼 포엠스(Pig: The Dam Keeper Poems)>(2017)를 만들어 세계 최고 권위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안시(Annecy) 2018’에서 TV 프로덕션 부문 최고상을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에릭 오를 진즉에 만나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작업하는 그에게 닿기는 쉽지 않았다. 마침 신작 <오리진(Origin)>으로 한국을 찾는다고 하니 좋은 구실이 생겼다. 팬심을 눌러 담은 질문, 그리고 대답.





<메타모더니티>는 9월 14일부터 베를린에서 열리는 세계적 영화제 ‘픽토플라스마’의 공식 프로그램에 초청됐다.

8월 24일부터 12월 2일까지 스페이스K 서울에서 신작 <오리진>을 선보입니다. 서울에서 이런 형식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시가 어떻게 성사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오리진>은 <오페라>를 만들면서 떠올린 작품이에요. <오페라>가 인류 역사와 사회를 묘사한 영화적 작품이라면, <오리진>은 자아의 탄생, 변화와 성장, 부패와 소멸, 승화로 이어지는 영적 여정을 담은 추상화 같은 작품이죠. 언뜻 둘은 달라 보이지만, 인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맥락을 함께합니다. 4년의 준비 끝에 완성한 <오페라>가 감사하게도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오리진>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전형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은 아니다 보니 기획 단계부터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방식을 고려했는데요, 실내 전시를 생각하던 차에 스페이스K에서 외벽 파사드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스트리트 아트처럼 실외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도 좋을 것 같아 진행하게 됐죠. 야외 환경에 맞춰 <오리진>을 선보이지만 추후 밀폐된 공간에서 작품을 전시하게 되면 러닝타임을 늘리거나 사운드 시스템을 입체적으로 가져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 작품의 버전을 여럿 두는 거죠.
<오리진> 속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는 구체의 모습에서 세포분열이 연상되기도 하고, 행성의 탄생과 소멸이 반복되는 우주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말씀대로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는 추상화 같은 작품이라 여전히 <오페라>와는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두 작품의 연결 고리에 관해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해에 <오페라>를 구상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대통령 탄핵이라는 큰 이슈가 있었고요. 정치색을 떠나 제가 집처럼 여기는 두 나라가 완전히 분열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많은 사람이 느낀 박탈감과 무기력감을 기록해야겠다고, 나아가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죠. 100년 전보다 우리는 훨씬 많은 것을 영위하게 됐지만,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페라>는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리진>을 처음 떠올렸을 때에는 <오페라> 이전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인간 문명이나 사회 시스템이 구체화되기 전 시작점에 관해 다루고자 했는데, 만들다 보니 <오페라> 앞이나 뒤에 붙는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보다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점에서 바라본 것에 가깝죠. <오리진>에는 흥망성쇠가, 개인이 있었다가 관계가 형성되고 폭발하고 무너지고 잃어버리는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오페라>는 구체적 예시를 들고 있을 뿐 근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같죠. 하나의 세계관으로 존재하는 두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페라>와 <오리진> 모두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작품이죠. 애니메이션을 선형적이고 기승전결이 명확한 장르로 생각하던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형식의 작품은 미디어 아트로 종종 만나봤기에, 에릭 오에겐 ‘감독’보다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질문한 부분이기도 해요. 작가, 그러니까 아티스트로 칭하는 건 왠지 거창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일부 그런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죠. 음…, ‘이야기꾼’이 적절할 것 같아요. 소설가와 시인은 글로, 회화 작가는 그림으로, 조각가는 조각이라는 도구로 이야기를 펼쳐내잖아요. 저는 애니메이션이 도구인 것이고요. 한편으로 이야기에 방점을 둔다면, ‘애니메이션’ 하면 떠오르는 형태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기도 합니다. 열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레 <오페라>와 <오리진>으로 이어졌고요.
작품 전반을 살폈을 때 <오페라>는 이질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오페라>의 시선이 외부로 향했다면, 다른 작품은 개인의 상황이나 감정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둔 것 같거든요. 심지어 주인공이 쇠똥구리인 <웨이 홈(Way Home)>(2008)이나 <심포니(Symphony)>(2008)에서의 세포 같은 생명체라도요. 그런 의미에서 감독님의 작업은 자전적 성격이 강해 보입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당시 느낀 감정이나 상황이 필터링되어 작품으로 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작품은 저라는 사람이 영글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죠. 아무래도 20대에 발표한 작품은 자신을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나도 나를 잘 모르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폭이 좁기도 했고요. 나이가 들면서 시선이 점점 밖을 향하게 됐고, 그 결과물이 <오페라>입니다. 앞으로도 세상을 배워가면서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게 되겠죠.





피라미드 구조 내에 존재하는 사회를 그려 계층과 문화, 종교, 이념 간 갈등과 순환을 다룬 <오페라>의 일부 장면.
피라미드 구조 내에 존재하는 사회를 그려 계층과 문화, 종교, 이념 간 갈등과 순환을 다룬 <오페라>의 일부 장면.


20대에 만드신 작품은 대체로 우울하고 어두워요. <하트(Heart)> (2010)에서는 정체 모를 분홍빛 하트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인물이 아귀다툼을 벌이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죠. 영상 말미에는 그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암시가 담겼고요. 과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웃음) 아무래도 염세와 회의가 저를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하지만 작품마다 미세한 희망 한 줄기는 넣어뒀어요. <하트>만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같지만, 다음 번에는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기도 하고요. 생각해보면 제 이야기에는 늘 ‘순환’이 있었어요. 종교적 사유는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배우고 느낀 저만의 삶에 대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님 작품이 대체로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로 끝나는 것도 ‘순환’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답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를 묻고 싶었습니다. 정말 답을 모르니까요! 물론 저만의 의견은 있지만, 그 의견을 그대로 전하기보다는 작품을 보는 각자가 답을 찾아보길 바랐습니다. 그게 예술의 역할이라고 믿어요. 한 영혼이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메타모더니티(Metamodernity)>(2022) 등 여러 작품에서 인물을 서로 구분할 수 없도록 단순하게 그렸는데, 여기엔 관객들이 자신을 인물에 쉽게 대입해 다양한 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크게 보면 제 작품은 삶의 의미 혹은 목적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해요. 여기에 어떤 답을 내리시더라도 전 만족합니다.
<나무(Namoo)>(2021)는 한 사람의 일생을 축약해서 그린 작품입니다. 작품 속 나무는 시적 존재로, 나뭇가지에는 당시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걸려 있죠. 이 작품에 비유했을 때 작가님은 현재 어느 단계에 도달해 있나요? 작품 속 젊은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 후 좋아하는 일을 포기한 채 살아가요. 나이 들 때까지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이루어낸 것이 다시 한번 스러지고, 순수한 본질만 남은 상태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되찾습니다. 노년에 해당하는 장면이지만, 제가 지금 고민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어요. 운이 좋게도 첫 작품 <더 백(The Bag)>(2006)을 만들었을 당시 꿈꾼 것들을 어느 정도 실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도 하고, 막상 이루고 나니 별다른 게 없다고 느끼기도 했죠. 그래서 다음 도착지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또 어떻게 갈지도 중요하죠. 기존 작업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는 건 너무 나이브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꼭 애니메이션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흘러 다음 인터뷰에선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현재 생각은 그렇습니다. 적당한 시점에 건강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쉬지 않고 작업할 운명인 것 같습니다. 최근엔 자연환경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이와 관련한 장편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이후 선보이는 작품들이 좋거나 나쁠 수도, 애니메이션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모든 걸 토해내고 되돌아봤을 때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저만의 방식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그게 제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귀여운 아기 돼지와 여우가 등장하는 10부작 시리즈 <피그: 더 댐 키퍼 포엠스>.
탐욕으로 인한 경쟁을 상징과 은유로 표현한 <하트>.
<나무>에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생각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식량을 찾아 나선 쇠똥구리의 머나먼 여정을 그린 <웨이 홈>.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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