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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07

온전한 작가의 시간을 보내는 김택상의 도약

30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한 뒤 지난 2년간 작가활동에 집중해온 김택상을 만났다.

김택상 중앙대학교 회화과에서 학사를,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리안갤러리 서울과 대구, 도쿄 다구치 파인 아트(Taguchi Fine Art)를 포함한 다양한 기관에서 여러 개인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20년, 오랫동안 몸담아온 청주대학교 교수직에서 내려온 후 작가로서 더 깊이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택상은 다큐멘터리에서 본 미국 옐로스톤공원 내 화산 분화구 물빛에 흠뻑 빠진 이래 지금까지 화폭에 물빛을 담아내고 있다. 캔버스 위에 안료를 희석해 붓고 시간과 자연의 힘을 빌려 서서히 비워낸다. 이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며 지층을 켜켜이 쌓아 올린다. 빛의 색채가 다양하듯 안료도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를 올린다. 이렇게 쌓인 레이어는 작품에 깊이감을 더한다. 오는 11월, 상하이의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에서 열리는 <컨투어리스>전에서도 김택상의 이름에 걸맞은 물빛 가득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를 준비하며 작품에 몰두하는 김택상을 직접 만났다.





왼쪽 reathing Light-Orange Violet 22-1, Water, Acrylic on Canvas, 62×61cm, 2022
오른쪽 Aurora 22-1, Water, Acrylic on Canvas, 59×53.5cm, 2022

온전히 작가로서 시간을 보내고 있죠. 교단에서 내려오신 만큼 작업에 쏟는 물리적 시간이 확실히 늘었을 것 같아요. 그림을 시작한 이래 가장 밀도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단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3일 정도 작업실에 나갔는데요. 그러다 보니 작업량은 부족했고, 감수성도 무뎌졌죠. 한 공간에 적응하려면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데,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에 반해 작업실에 머무는 지금은 작업의 질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몇십 배가 아닌, 몇백 배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죠.
그래서일까요. 최근 화면에 다양한 색채가 보입니다. 물론 그동안 여러 색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작업 방식을 고수했지만, 이전에는 단색이었다면 요즘은 무지갯빛에 가까워요. 인간의 내면에는 다양한 면이 뒤엉켜 있습니다. 잔잔한 노래를 듣다가도 가끔은 신나는 음악을 찾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스스로를 깊게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제 안에 숨어 있던 스펙트럼이 봇물처럼 터졌고, 자연스레 캔버스에 반영된 거죠. 예전보다 자유로워진 마음가짐도 한몫했습니다. 제가 즐겨 하는 말이 있어요. “작업은 삶의 무늬다.” 작품은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게 아닌 작가의 삶 속에서 나오는 존재죠.
아무래도 작가님 하면 색을 빼놓을 수 없기에 시선이 그쪽을 향합니다. 한데 색을 선택하는 기준이 특별합니다. 마음에 와닿는지 보신다고요.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은 절대 못합니다. 즐겁지 않으면 할 이유가 없죠. 그렇기에 감동을 주는 색채만을 캔버스에 옮깁니다. 그림도 똑같아요. 종종 작업을 연애에 비유하곤 해요. 둘 모두 감동과 재미, 설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연애 스타일이 참 다양하잖아요. 아낌없이 주는 헌신이 있는 반면, 소위 밀당이라고 하죠? 긴장감이 팽팽한 스타일도 있습니다. 작가님과 작업은 어떤 모습에 가깝나요? 당연히 밀당이죠.(웃음) 너무 편하거나 혼자 주도하면 결과가 뻔하잖아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대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새로움을 발견하는 방식이 흥미롭죠. 작품에 자연과 시간을 끌어들인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예상할 수 없는 자연과 함께하면 항상 다른 결과물이 나오니까요.
작품 한 점 끝내는 데 짧게는 1년, 길게는 9년까지도 걸립니다. 이 역시 캔버스에 자연과 시간을 끌어들여서일까요? 그렇습니다. 캔버스 위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작업이잖아요. 그 시간 동안 화면에 영향을 미치는 날씨, 햇빛, 습도, 바람, 중력은 계속 변합니다. 그렇기에 총소요 시간이 상이하죠.
그렇다면 캔버스에서 손을 떼는 시점은 언제인가요? 마음이 가지 않는 순간이죠. 하지만 완성이란 마침표를 찍지는 않아요. 1~2년 뒤에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거든요. 그럴 때면 캔버스를 뜯어 다시금 작업하기도 합니다.





왼쪽 Breathing Light-Sweet and Bitter 22-1, Water, Acrylic on Canvas, 97×97cm
오른쪽 Breathing Light-Camellia 2, Water, Acrylic on Canvas, 84×84cm, 2021

그림을 시작한 이래 똑같은 작업 방식을 고수했죠. 감각과 감수성을 잃지 않고자 매일 작업실에 나오시고요. 그래도 시간이 꽤 흐른 만큼 변한 것도 있지 않을까요. 정말 없어요. 저는 농부랑 비슷해요. 농사짓는 사람은 쉬지 않고 새벽같이 일어나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보살핍니다. 저도 제 안에 내재한 가능성을 이끌어내려면 스스로를 꾸준히 돌봐야 해요. 사람은 잘 안 변해요.(웃음) 한 가지 예를 들면, 제가 열여덟 살 때부터 장발이에요. 당시에는 장발 단속을 했는데, 도망 다니면서까지 스타일을 고수했죠. 서울 뒷골목 지리를 꿰고 있답니다. 머리를 기른 이유는 단 하나예요. 잘 어울리니까. 그런데 타인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억압을 하니 의아했죠. 그때부터 구조에 대한 의문을 가졌고, 인문학을 공부했습니다.
달라진 게 없다고 하셨지만, 장발 일화에서 불합리함에 이의를 제기하고 변화에 앞장서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새로움을 탐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인스타그램도 활발히 운영하시죠. 팔로워가 1만 명이 넘더군요. 맞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요. 인스타그램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세상을 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죠. 개인적으로 발전하려면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를 올리는 순간 불특정 다수의 반응을 살피기가 수월해요. 그런 면에서 참 좋은 수단이죠. 팔로워가 왜 그리 많아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상하이에서 열리는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의 <컨투어리스>전을 앞두고 있죠. 출품작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항상 그래왔듯이 전시와 현장 분위기에 맞는 좋은 작품을 내고 싶습니다. 리스트를 고민 중이라 정확히 말씀은 못 드리지만, 120호 두 점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김택상을 논할 때 단색화는 빠지지 않는 단어입니다. 일각에선 해석이 제약됨에 따라 무엇 하나로 규정짓는 것을 꺼리기도 하는데요. 누가 어찌 평가하든 김택상 작업은 김택상 작업입니다. 저를 두고 포스트 단색화니, 단색화니 말하는 건 평론가의 자유죠. 카테고리화는 온전히 그들의 몫입니다. 100명의 비평가가 있다면 평론도 100개가 있어야죠. 그래야 미술사가 발전합니다. 다만 단색화에 대해 이런 생각은 있어요. 우리가 스스로를 정의하지 못하면 타인에 의해 왜곡되기 십상입니다. 아직 단색화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어요. 저희 세대가 해결해야 할 과제죠.
작가님의 사명감이 느껴집니다. 사명감까지는 아니에요. 나이가 들다 보니, 어쨌든 미술계에서 밥을 먹고살았으니 세대가 책임져야 할 것에 응답을 하는 것뿐이죠.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이효정(프리랜서)
사진 안지섭(인물)
사진 제공 리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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