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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08

사랑하는 만큼, 신뢰하는 만큼. 작가 이수경

깨진 도자 파편을 이어 붙인 ‘번역된 도자기’로 알려진 작가 이수경의 작품관

쉼 없이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이수경 작가.

올해 상하이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 페어에서 열리는 <컨투어리스>전에 참여하죠. 출품작이자 대표작인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 이야기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2001년 시리즈를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지났네요. 처음 시도할 때와 지금, 변화가 있나요? 처음 ‘번역된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 한동안 원하는 형태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작품을 여러 번 망치고 좌절한 다음에는 오직 퍼즐을 맞추듯 매 순간 집중하고, ‘파편의 중매쟁이’ 같은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작업 태도는 물론 삶의 태도까지 바꾼 작업입니다.
깨진 도자기와 처음 만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1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알비솔라 비엔날레’에 참여했어요. 알비솔라는 과거 피카소, 폰타나 같은 거장이 도자 작업을 한 지역이에요. 이 비엔날레는 현대미술 작가를 현지 공방과 일대일로 연결해 작업하게 해주고 결과물을 전시합니다. 김상옥 시인이 1947년 조선 백자를 찬미한 시 ‘백자부’를 알비솔라의 한 도공에게 들려줬어요. 조선 백자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도공이 상상과 제 이야기만으로 18세기 조선 백자 스타일의 도자기 12점을 제작했죠.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와 한국의 지역적 문화 특성을 혼합한 ‘번역된 도자기’ 작품이 탄생했어요. 현재 잘 알려진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와는 시각적으로 매우 달라요. 아주 개념적인 작업이죠.
‘번역된 도자기’의 시초군요.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조선 백자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자료를 찾다가 어느 공방에 갔는데, 전통 가마에서 도자기를 하나씩 꺼내 살펴보던 도예가가 망치로 도자기를 깨뜨리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운명의 순간이네요. 높은 경지에 오른 도예 명장은 최소한의 명작 외에는 다 깨버리죠. 티끌만큼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으니까요. 햇빛 아래 반짝이던 파편이 제 마음을 움직였고, 허락을 받아 깨진 파편을 가득 담아 왔어요. 파편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2개의 파편이 퍼즐처럼 완벽하게 들어맞더군요. 우연히 깨진 파편을 이어 붙여 금(crack)을 금(gold)으로 덮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언어유희죠.
파편은 주로 어디에서 구하나요? 이천·여주·강진·문경과 중국 단둥을 통해 북한 생산으로 추정되는 파편을 구해 씁니다. 퍼즐을 맞추듯 이어 붙여 형태를 만들고 에폭시로 메워 순금박으로 틈새를 덮어요. 최근에는 파편 사이를 메우는 선에 집중해 서예의 필선처럼 에너지를 담습니다. 갈수록 이 작업을 조각보다는 평면 회화로 생각하게 돼요. 색감과 질감이 미묘하게 다른 파편 사이로 금색 선을 그리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처럼 섬세한 작업 같아요. 2017년부터 선보인 ‘달빛 왕관’ 시리즈도 흥미롭습니다. 크고 무거워서 절대로 머리에 쓸 수 없는, 왕관 자체가 몸이 된 작업입니다. ‘절대 권력의 상징이자 태양처럼 빛나는 왕관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면에 무엇을 감추었을까? 주로 부처, 예수, 성인의 머리에 묘사하는 후광과 광배의 대체물이 바로 왕관 아니었을까? 먼 옛날 고차원의 세계와 소통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서 실제로 빛나는 후광을 당시 인류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여러 질문에서 시작한 작업이에요.
도자도 그렇고, 원래 전통 소재에 관심이 많으시죠? 각 시대의 서로 다른 문명 사이 믿음의 흔적이 섞이고 녹아들면서 생겨난 유물에서 끊임없는 영감을 받아요. 한반도의 고대 문화에도 흥미를 느끼고요. 작업 과정은 밑그림에 기대거나 계획을 갖고 진행하지는 않아요. 매 순간 파편 자체에 집중해 이어 붙이고 집중하면서 스스로 변화합니다. 개념적이고 존재론적 물음을 탐착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세상 만물을 연결하는 관계성과 우주 만물을 가득 채우는 에너지를 주목해요.
이 작품은 신라 금관과 백제 금동 향로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거죠? 고구려 고분벽화의 기마 인물 옆에 등장하는 영기문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주 만물을 가득 채우는 기운을 표현한 거예요. 금동 향로에는 기묘한 에너지가 응축돼 있고, 각 모티브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불교와 도교의 이상 세계가 나타나죠. 에너지로 가득 찬 세계처럼 비어 있는 곳이 없어요. 궁극적으로 제 미술 행위로 구현하고자 하는 시각 세계가 바로 이거예요.
왕관의 문양도 다채로워요. 각 요소마다 의도한 상징성이 있나요? 왕관 제작에 쓴 재료는 천사, 기도하는 손, 십자가, 용, 호랑이, 바로크풍 식물 문양 등을 새긴, 주로 장신구에 쓰는 금속 장식 조각이에요. 오래된 흔적이 담긴 이 조각은 ‘번역된 도자기’의 도자기 파편과 의미가 유사합니다.
어떤 의미에서요? 명장의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 결과물 중 7할 이상은 작은 오점 때문에 폐기되죠. 그때 각 도자기의 시공간에도 균열이 갑니다. ‘번역된 도자기’에서는 각 도자기의 해체된 파편이 다른 도자기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과 섞이고 맞물리면서 결국 서로 견고하게 엉겨 붙어요. 균열은 순금으로 덮여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내고요. ‘번역된 도자기’ 작업을 통해 도자기가 사물로서 겪은 흥망성쇠의 끝 지점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삶과 부활의 의미를 생각하게끔 합니다.
이 작품도 그렇고, 경면주사 가루로 그린 ‘불꽃’, ‘전생 역행 그림’ 시리즈 등 종교적 소재나 주제를 선택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아름다운 것은 모두 사찰과 성당에 있어요. 종교 자체보다는 신을 경외하고 종교를 고안해낸 인류의 마음의 영역에 관심이 많아요. 믿음이 자신을 구원한다는 생각처럼, 저 역시 극도의 아름다움은 곧 무언가를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믿습니다.
주제나 소재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새로 구상하는 작업이 궁금합니다. 최근에는 메타버스 작업을 구상하고 있고, 아마 올해 말에 선보일 것 같습니다.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실패를 포함한 시간을 필요로 해요. 그래서 격년으로 전시를 좀 줄이는 시간을 가집니다. 다음 해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외 그룹전과 개인전을 열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작업을 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환희에 자주 휩싸였습니다.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작업에 집중하는 동안은 늘 지독한 사랑에 빠진 것처럼 저의 유약함을 온전히 드러내고 싶어요. 부서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과 작업 태도를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Translated Vase_2022 TVW 14, Ceramic Shards, Epoxy, Platinum Leaf, 203×190×165cm, 2022 @Photo by Yang Ian
Moonlight Crown_Guseul Halmang, Glass Buoy, Brass, Iron, 24K Gold Leaf, Wood, 3D Printed Sculpture, Pearl, Glass, Mother-of-Pearl, 134.7×56.4×41.9cm, 2021 @Photo by Yang Ian
You Were There, Installation View of Nirox Sculpture Park, 2021


 이수경 
조각, 설치, 영상, 회화, 드로잉,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와 뛰어난 조형 감각으로 전통 소재를 다루는 작가다.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광주비엔날레, 시드니 비엔날레 등 다수의 국제 행사에 참여했다. 영국 박물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 M+, 울리 지그 컬렉션 등 전 세계 주요 기관에서 작품을 볼 수 있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Che(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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