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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0

팬을 위한 나라는 있다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게끔, 사랑하는 사람은 더욱 사랑하게끔. 스페이스오디티 김홍기 대표의 상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아이돌 팬인 친구가 ‘블립(Blip)’을 보여줬다. ‘내 손안의 덕메이트’를 자처하는 앱.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실시간 뉴스부터 방송 일정 등 스케줄, 실시간 차트 순위까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덕질’하기 참 좋은 세상이다. 누가 이런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나 알아보니 스페이스오디티(Space Oddity)가 만들었다. 낯설지 않은 이름. 에디터의 플레이리스트에 오른 시티 팝 곡 상당수도 이들이 기획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갸우뚱했다. 시티 팝과 팬덤 앱이 ‘음악’이라는 단어로 묶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둘은 다른 게 아닌지. 정체가 궁금해졌다.
“음악을 주제로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만듭니다.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보다는 소비하는 입장에서 접근한 것이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든 비결이 아니었나 싶어요.” 스페이스오디티 김홍기 대표의 코멘트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기.’ 교과서적 답변이지만 실천하긴 어렵다. 스페이스오디티가 이런 방식으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장 대표부터 음악의 열렬한 소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라디오에 푹 빠져 살았죠. <별이 빛나는 밤에>나 <0시의 데이트> 등 애청자로 ‘세상에는 이렇게 좋은 음악이 많구나, 그 음악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해야겠다’고 꿈꿨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공연 기획사 ‘좋은콘서트’에서 이소라, 성시경 등이 출연한 공연 <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 등의 기획에 참여했다. 서울음반에선 상상밴드, 박기영 등 아티스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기도. “그다음이 네이버였죠. 음반 산업이 디지털로 기울어지며 나름대로 방향을 전환했어요. 처음엔 오프라인 경험을 토대로 IT 회사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콤플렉스로 느껴졌지만, 새로운 일을 기획하며 그 경험이 강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티스트의 특색에 맞춰 소규모 공연을 기획한 네이버뮤직의 ‘음악감상회’가 대표적 예다. “PC통신 시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좋은 곡을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던 것을 떠올렸어요. 아티스트가 팬과 함께 폐교로 떠나 공연하고 테헤란로 빌딩 옥상에서 야경을 배경으로 노래하는 등 당시로선 색다른 시도로 화제를 모았고, 업계의 정형화된 포맷으로 자리 잡았죠.” 메이크어스의 음악 채널 딩고뮤직에서 선보인 아티스트의 취중 라이브 ‘이슬라이브’도 그의 작품이다. “과거 콘서트 뒤풀이에서 흥에 취한 아티스트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영상으로 담으면 특별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들의 진정성 있는 모습을 담아낸 이슬라이브는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연이어 히트 상품을 내놓은 그를 찾는 곳이 많았지만, 김홍기의 선택은 스페이스오디티였다. “새롭게 판을 짜보고 싶었어요. 소속 가수를 두지 않는 대신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재능 있는 아티스트와 감독, 작사가와 작곡가를 모으는 허브 역할을 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공개 6주 만에 조회 수 700만 건을 넘긴 음원 사이트 멜론의 브랜드 필름 ‘우리 지난날의 온도’, 시티 팝 등 숨은 명곡을 발굴하고 재해석해 뉴트로 열풍을 이끈 ‘온스테이지 디깅클럽서울’, 디뮤지엄 전시 에 맞춰 국내 최초로 발매한 전시 OST 등이 그 빛나는 결과물이다. “음악은 음원으로만 듣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트, 디자인, 영상 등과 함께 음악을 입체적으로 경험시키려는 것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디뮤지엄 전시 OST는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한정판 LP로도 발매됐다.
시대를 앞선 숨은 음악을 재조명한 온스테이지 디깅클럽서울.
팬덤 데이터 관측기, 케이팝 레이더.
K-팝 팬을 위한 스케줄 알리미, 블립.


2~3년 사이 스페이스오디티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2019년 K-팝 아티스트의 현재를 보여주는 대시보드 ‘케이팝 레이더(K-Pop Radar)’, 2020년 K-팝 팬덤 앱 블립을 출시하며 데이터 기반 회사로 변모한 것. “데이터를 비즈니스에 접목해야겠다는 생각은 2017년 스페이스오디티 설립 전부터 했습니다. 메이크어스에서 콘텐츠를 만들 때 소셜 데이터를 활용하기도 했고요. 스페이스오디티에서도 그랬습니다. 웹 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 OST를 만들 때 가수 폴킴이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당시엔 인지도가 떨어져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데이터상으로 상승세가 뚜렷해 힘을 실어주면 성공하겠다고 판단했죠. 실제로 그렇게 됐어요. 폴킴이 부른 노래 ‘있잖아’는 실시간 음원 차트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K-팝 시장 그리고 팬덤 문화는 그가 내부적으로 활용하던 데이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계기가 됐다. “K-팝은 전 세계가 듣는 음악이 됐습니다. 이미 90% 이상이 해외에서 소비되고 있어요. 팬덤 문화도 성숙해졌죠. 과거 팬이 수동적 소비자였다면, 지금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분석해요. 그렇다면 우리의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죠.” 케이팝 레이더가 하늘의 별처럼 흩뿌려진 K-팝 아티스트들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서비스라면, 블립은 별 하나를 세밀하게 살피는 현미경이다. “케이팝 레이더의 경우 팬들은 물론 업계 관계자도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아티스트의 플랫폼별 팬덤 규모와 변화 추이, 달성 마일스톤을 통합적으로 탐지해 객관적 데이터로 제공하죠.” 그리고 앞서 소개한 블립은 전 세계 K-팝 팬들의 편리하고 재미있는 덕질을 돕는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집중하고 싶은데, 방해 요소가 너무 많아요. 어느 플랫폼에서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일일이 찾아보기도 벅차죠. 그걸 블립이 대신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팬덤 문화가 미디어에서 희화화되는 게 싫었던 한 사람으로서 블립의 성장세가 반갑다. “몇 년 전만 해도 직장인 아저씨가 K-팝 아이돌을 잘 알면 이상하게 쳐다봤죠.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아요. 덕질이 일상의 개념으로 자리 잡은 거예요.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아는 만큼,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현재 8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팬덤의 소비자 파워는 K-팝을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아티스트와 팬이 일방적 관계를 넘어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가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블립과 스페이스오디티가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에 없던 접근 방식으로 음악 시장에서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고, 이를 아티스트 등 음악의 생산자들과 엮어 또 다른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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