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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01

왼손은 인생을 거들 뿐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른들의 애니메이션 사랑이 화두다

위쪽 My Father’s Dragon ©netflix
아래쪽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Dreamworks Animation

만화 [슬램덩크]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는 언제쯤 사그라들까? 영화가 개봉한 지난 1월부터 기사를 작성하는 시점인 2월 둘째 주까지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누적 관객 수 25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250만 명은 <너의 이름은>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은,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순위 3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대한 관심은 극장 밖에서도 뜨겁다. 오래전 출간한 원작은 서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고, 1990년대 후반에 방영한 TV 만화 [슬램덩크] OST를 리마스터링한 LP 음반은 예약 판매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온·오프라인에서 뜨거운 반응이 일고 있으며, 더현대 서울에 문을 연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는 연일 굿즈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과거의 것이 빛을 잃지 않고 계속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다니. ‘콘고지신(콘텐츠+온고지신)’의 대표적 사례다. 만화에선 강백호가 점프슛을 하기 위해 왼손을 거들었건만, 현실 속 우리는 콘텐츠 소비를 위해 왼손으로 지갑을 거들 뿐이다.
신드롬 중심에는 3040세대가 있다. 이에 관해 평론가들은 “1990년대 [슬램덩크]에 미쳤던 그들의 향수를 자극한 까닭이다. 현 3040은 청소년 시기 IMF와 Y2K라는 우울한 시기를 버텼는데, 어른이 됐음에도 여전히 현실이 고달프니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크게 와닿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비슷하게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도 한 인터뷰에서 “코트 위 강자들의 태연한 얼굴 뒤에도 각각의 삶이 있고, 그곳까지 가는 길이 있다. 객석에 앉아 있는 분들도 각자 자신이 주인공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조금은 힘이 나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한다. 종합하면, 만화를 보며 꺾이지 않는 마음을 다시금 다진다는 의미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만 어른들을 향해 큐피드의 화살을 쏜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역시 화제다. 어린이 애니메이션으로 알고 자녀와 함께 극장을 방문했는데, ‘두려움을 극복하는 건 용기’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아 눈물을 훔쳤다는 후기가 잇따른다. 이 외에도 눈에 띄는 해외 작품으로 [My Father’s Dragon](2022), [BoJack Horseman](2014~2020), [Tear Along the Dotted Line](2021~) 등이 있다(OTT에서 감상 가능). 루스 스타일스의 동명 소설(1948)을 바탕으로 제작한 [My Father’s Dragon]은 용기와 신뢰에 대한 이야기이며, [BoJack Horseman]은 우리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임을 상기하고, [Tear Along the Dotted Line]은 불안한 상상을 하게 될 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님을 말한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공통점은 잠깐의 시간 여행을 통해 위축된 어른에게 지금을 살아갈 힘을 북돋워준다는 것. 과거의 것을 꺼내 향수를 느끼는 ‘레트로’와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기억의 편향성인 ‘므두셀라증후군’의 오묘한 조화 덕분이다. 물론 므두셀라증후군에는 ‘도피’라는 맹점이 있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할 터. 최근 대중문화에선 무조건 과거의 것을 부활시키겠다가 아닌, 그나마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다고 믿는 1990년대 ‘감성’을 우선시하겠다는 흐름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방증하는 건 2020년대 들어 속속 회자되는, 당시 대중문화를 지배하던 공동체·근성·낭만 등 가치가 아닐는지.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같은 애니메이션을 관통하는 펀치라인처럼 말이다. 규격화·획일화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적 사고에서 인간 본성으로의 회귀. 이처럼 오늘날 애니메이션 열풍 속 만화책과 스마트폰을 받치는 왼손은 우리네 인생을 거들고 있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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