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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15

여전히 우리는 '쿠사마'가 필요해

예술로써 스스로를 넘어 타인을 치유하고자 노력한 작가.

쿠사마 야요이 192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쿠사마 야요이는 일본화를 공부하고 1952년 마쓰모토의 커뮤니티 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해프닝, 회화, 조각, 전위적 퍼포먼스 등을 선보이며 미국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1973년 일본에 돌아와 폴카 도트를 무한 반복하는 시리즈로 이름을 알렸다. ‘1993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이며 뉴욕 현대미술관, 퐁피두 센터, 테이트 모던 등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기관에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지난겨울 도쿄에서 루이 비통과 쿠사마 야요이의 협업 컬렉션 런칭 이벤트가 있던 날, 야속하게도 비가 계속 쏟아졌다. 도트 무늬로 뒤덮인 야외 조각과 호박 작품의 매끈한 표면 위로 굵은 빗줄기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동행인이 건넨 한마디에 정신이 들었다. “지금 마치 초현실주의의 한 장면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 초현실이라는 단어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쿠사마의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했다. 긴 역사를 지닌 절 조조지 앞에 찍힌 수많은 도트, 한적한 시바 공원에서 비바람에 흔들리는 초대형 호박, 반짝이는 도트 무늬 조명을 입은 도쿄타워, 시부야 교차로를 오가는 사람들 위를 떠다니는 작가의 얼굴까지, 이처럼 쿠사마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를 기묘하게 조합하며 우리를 새로운 세계와 차원으로 끌어당긴다.
익히 알려진 작품만으로도 이미 설명은 충분하지만 작가의 삶을 살게 된 출발점을 잠시 들여다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 보수적 환경에서 자라며 자주 소외감을 느낀 작가에게 큰 힘이 된 존재가 바로 ‘예술’이다. 어릴 때부터 이미 물방울무늬로 덮인 사물과 사람을 그렸는데, 당시의 드로잉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고등학생일 때는 낙하산 공장에 징집되고 폐렴을 앓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현재 쿠사마의 대규모 회고전 가 열리는 홍콩 M+의 보도에 따르면, 작가는 스스로 이 시기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림을 그리는 게 제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고, 이는 오히려 절박함 속에서 폭발한 제 열정이기도 합니다”라고.





도쿄 긴자 도버스트리트마켓에서 볼 수 있는 루이 비통과 쿠사마 야요이의 협업 컬렉션 디스플레이.

1952년 마쓰모토에서 개인전을 연 이후에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길 원했다. “제 예술, 즉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투쟁하는 예술, 삶과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지는 예술을 하기’에는 ‘일본’은 너무 작고, 너무 비굴하고, 너무 봉건적이고, 너무 여성을 경멸했습니다. 제 예술을 위해 무한한 자유와 더 넓은 세상이 필요했습니다”라는 생각으로, 뉴욕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했고 당시 미국에서 유명한 여성 예술가 케네스 캘러핸과 조지아 오키프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교류를 시도하기도 했다. 1957년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스스로 거의 모든 작품을 파괴했을 만큼 미국행은 작가의 인생에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이후 회화, 조각, 공연,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아시아의 여성 작가 중에서도 단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작가의 최근 작업은 도쿄에 있는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서 2월 26일까지 열린 전시 는 최근 작가가 가장 몰두하는 작품 시리즈의 제목이면서 중심을 차지하는 문구다. 최근 몇 년동안 쿠사마는 작품에 시를 암시하는 긴 제목을 붙인 적이 많다. 사랑, 예술, 평화를 위한 기도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화면에 텍스트를 새겨 표현한 작품으로 예술을 향한 헌신, 사랑과 죽음에 관한 기도를 담은 자작시를 함께 선보인다. 아쉽게도 이번 전시가 막을 내린 직후부터 미술관은 다음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문을 닫는다. 4월 29일부터 새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니 미술관 홈페이지(yayoikusamamuseum.jp)를 주시할 것. 홈페이지에서 시간대별 입장권을 미리 구매해야 하며 현장에서는 살 수 없다.
한편 쿠사마의 가능성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 많은 사람에게 각인한 계기는 2012년에 루이 비통과 함께한 프로젝트가 아닐까? 당시 쿠사마는 루이 비통의 트렁크에 도트 패턴의 핸드 페인팅을 더하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일회성으로 그칠 줄 알았던 프로젝트가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부활했다. 이번에도 무한함을 상징하는 모티브를 메종의 프로덕트에 가미해 실제 작품의 텍스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도트 무늬를 구현하면서 패션계와 아트 신의 호응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마지막으로 루이 비통×쿠사마 야요이 협업 컬렉션을 진행하며 작가가 전한 이야기를 살짝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쉽사리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는 작가의 답변은 오로지 여기서만 만날 수 있다.





Dots Obsession,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1996/2022 Installation view at YAYOI KUSAMA MUSEUM, Tokyo, 2022
LIFE, F.R.P., Tile, 227×φ110cm, 200×φ95cm, 152×φ75cm, 125×φ60cm, 103×φ50cm, 2015 Installation view at YAYOI KUSAMA MUSEUM, Tokyo, 2022
도쿄의 한 볼링장에서 열린 루이 비통과 쿠사마 야요이의 협업 컬렉션 런칭 파티.


루이 비통과 함께한 두 차례 협업에서 작가로서 작품과 삶을 어떻게 녹여냈나요?
예술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패션은 영감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삶과 대담하게 맞설 수 있게 해줍니다.
2012년 협업 덕분에 더 많은 관람객과 마주했다고 생각하세요? 특히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고자 한 바가 있나요?
지난 프로젝트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큰 호응을 얻었죠. 이번에는 세상의 모든 이와 제 예술철학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패션과 의상이 작가님의 정체성과 사람들이 작가님을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집에서 입는 편한 차림부터 미국 여행길에 선보인 스타일과 ‘쿠사마 패션 회사’로서 보여준 스타일, 요즘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제 옷은 손수 만들어 입었어요. 1960년대에는 패션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고요. 당시에는 패션과 예술을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지만, 저는 패션과 예술을 따로 떼어놓고 보지 않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제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왼쪽 EVERY DAY I PRAY FOR LOVE (from series, EVERY DAY I PRAY FOR LOVE), Acrylic, Marker Pen on Canvas, 100×100cm, 2021
오른쪽 EVERY DAY I PRAY FOR LOVE (from series, EVERY DAY I PRAY FOR LOVE), Acrylic, Marker Pen on Canvas, 100×100cm, 2022

지금까지 아주 다양한 표현 수단을 사용했죠. 그중 가장 좋아하는 방식은 무엇인가요?
저는 모든 표현 수단이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각각의 방식을 모두 중요하게 여깁니다. 무엇보다 항상 아방가르드적 형태로 표현하고자 해요.
지금까지 완성한 시리즈 중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지금껏 작업한 모든 작품에는 제 영혼이 담겨 있어요. 지금은 새로운 연작 ‘Every Day I Pray for Love’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루이 비통×쿠사마 야요이 컬렉션 중 가장 좋아하는 오브제를 꼽는다면요?
제 회화 연작 ‘My Eternal Soul’에서 모티브를 얻어 완성한 오브제들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작가가 언급한 루이 비통의 오브제는 3월 말에 출시 예정이다.)
삶에서 작품으로 이루고자 한 것을 대체로 달성했다고 생각하세요?
그동안 미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자 전위적 태도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이제 제가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매일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요.
예술가가 아닌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나요?
예술가가 아닌 제 인생은 상상할 수 없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는다면요?
예전에는 굶주릴 만큼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온종일 그림 그리는 데 열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으니까요.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쿠사마 야요미 미술관·루이 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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