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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 2023-03-30
WHISKY GALORE!
위스키에 막 빠져든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 숫자로 매링한 위스키 이야기.

ⓒ 골든블루
맥캘란·발베니·야마자키·히비키 같은 네임드 위스키와 입술에 닿는 순간 왠지 낯설지 않은 다양한 풍미가 느껴지는 국산 위스키 기원·김창수 위스키까지. 싱글 몰트와 블렌디드를 막론하고 2023년 벽두부터 오픈 런과 품절 대란이 일어날 만큼 위스키 열풍이 뜨겁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소규모로 가볍게 술을 마시는 문화가 생기면서 주류 시장의 패러다임이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다양한 위스키를 마신다는 것은 위스키를 만드는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듯 위스키는 문화와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롯이 맛과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위스키도 매력적이지만, 위스키에 덧씌워진 레이어를 알고 나면 더욱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이제 막 위스키에 빠져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숫자로 풀어낸 위스키 이야기.

작년 10월 서울옥션에서 ‘발베니 DCS 컴펜디움’ 시리즈 25병이 5억 원에 낙찰됐다. ⓒ Balvenie
작년 이맘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관한 ‘분석할 결심’을 잠시 실현해보자. 당시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곳곳에 심어놓은 감독의 미장센을 읽으려 노력했는데, 그중 위스키를 애정하는 에디터의 시선을 끈 오브제가 있었다. 바로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Kavalan Solist Oloroso Sherry)’다. 혹 ‘천사의 몫(위스키를 숙성할 때 증발하는 양)’처럼 기억이 사라졌다면 장해준이 송서래 집을 방문했을 때 LP 수납장에 있던 병을, 회식 자리에서 장해준이 플라스크로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을 다시 찾아보길 바란다. 카발란은 2005년 대만 ‘킹 카 그룹’이 설립한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위스키다. 니트 잔에 코를 가까이 대는 것만으로도 열대기후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까닭에 카발란은 아는 사람만 아는 마니아 성격이 짙었다. 영화 속 캐릭터의 고상한 취향을 상징하는 데 제격일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모두의 위스키가 되어버렸다. <헤어질 결심> 이후 2022년 상반기 판매량이 전년 대비 427% 증가한 결과다. 게다가 BTS RM과 슈가의 유튜브 콘텐츠에 소개되면서 구매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무래도 ‘헤어질 결심’을 받아들여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한식과의 마리아주를 배가하기에 충분한 ‘기원 배치 1’. ⓒ 쓰리소사이어티스
3은 위스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숫자다. 대표적으로 스카치위스키는 증류된 원액을 700리터가 넘지 않는 오크통에 담아 스코틀랜드에서 3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 이를 법률로 제정한 인물은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노동자가 술을 마셔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그는 1915년 3년 미만의 위스키 판매를 금지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스카치위스키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3년 동안 오크통 안에서 맛과 향이 더욱 깊어졌기 때문. 당시 많은 위스키 회사가 손해를 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숙성된 위스키가 큰 인기를 끌었으니 위스키 애호가로선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탓’을 ‘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남양주에 위치한 국내 최초 싱글 몰트 위스키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가 ‘기원 배치 1’을 선보였다. 2020년 설립한 증류소 이름에 붙은 ‘쓰리(Three)’는 재미교포 도정한 대표와 스코틀랜드에서 온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루 샌드, 한국인 직원을 상징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기원 배치 1을 입안에 머금으면 자연스레 ‘한국적’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그들 말마따나 위스키 맛과 향의 모티브를 제육볶음에서 얻은 것이 강하게 작용한 듯하다. 스파이시한 여운과 풍부한 오크, 바닐라 등은 한식과의 마리아주를 배가하기에 충분하다.

현존하는 가장 고가의 싱글몰트 위스키 ‘Isabella’s Islay’. ⓒ Isabella’s Islay
620만 달러, 즉 약 80억 원. 강남 지역의 60평대 아파트 한 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위스키 한 병의 시판 가격이다. 2011년에 출시한 ‘이저벨러 아일러(Isabella’s Islay)’는 현존하는 가장 고가의 싱글 몰트 위스키다. 라가불린, 라프로익, 아드벡 같은 피트 위스키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아일러섬에서 탄생했으며, 캐스크 스트렝스(물에 희석하지 않은 숙성 원액)를 담았다. 향과 맛이 럭셔리 스카치위스키의 전형이라지만, 80억 원이란 가격은 디캔터를 구성하는 8500개 이상 다이아몬드와 300개에 달하는 루비, 화이트 골드바의 지분이 커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위스키 원액 리필이 가능하다는 것. 반면, 옥션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위스키는 ‘에메랄드 아일 컬렉션(The Emerald Isle Collection)’이다. 2021년 2월 200만 달러(약 26억 원)에 낙찰된 에메랄드 아일 컬렉션은 아일랜드 부시밀스 증류소의 위스키를 사용하며, 금을 활용한 조각을 포함한다. 참고로, 이 위스키 전에는 1926년에 증류한 맥캘란 파인 앤 레어(Macallan Fine and Rare)가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기록한 190만 달러(약 24억 원)가 옥션 최고가였다.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10월 서울옥션에서 ‘발베니 DCS 컴펜디움’ 시리즈 25병이 5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24억 원에 낙찰된 맥캘란 ‘파인 앤 레어’. ⓒ sotheby’s
고백하건대, 골프와 위스키의 관계는 설에 가깝다. 첫 번째는 본디 22홀이던 골프가 위스키 때문에 18홀로 줄어들었다는 것. 기온이 낮은 스코틀랜드에서 골프를 칠 때 체온을 유지하려면 위스키가 필요했는데, 늘 18홀에서 떨어졌다고. 두 번째는 하이볼과 골프의 연관성이다. 과거 하이볼은 영국 상류층이 골프를 칠 때 갈증 해소를 위해 마신 음료다. 하지만 라운드 후반이 되면 술에 취해 공을 이상한 곳으로 보내는 일이 잦았고, 이때마다 기분이 들떠 있다는 뜻의 ‘하이볼’을 외쳤다고 한다. 여담으로 하이볼은 1895년 바텐더 크리스 라울러가 칵테일 레시피를 정리한 책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