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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3

아트 시티 서울의 미래

서울을 향한 국제 미술계의 관심이 뜨겁다

화상으로 진행한 토크 장면.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전시감독.
선재미술관의 분관 아트선재센터는 1995년 <싹>전 개최 후, 1998년 서울 소격동에 설립해 동시대 예술가와 함께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전시를 이어왔다. 센터라 명명한 건 전시 외에도 교육, 학술, 영상 작업을 다양하게 선보이고자 한 설립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로렌시나 화란트리 
(주)로렌스제프리스 대표.
1994년에 설립한 아트 컨설팅 회사 (주)로렌스제프리스는 현재 12년째 송은의 프로그램을 위탁 운영 중이다. 송은문화재단의 비영리 전시 공간으로 청담동에 위치한 송은은 ‘숨어 있는 소나무’를 뜻하는 이름에 걸맞게 신진 작가를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 큐레이터.

스페이스K는 코오롱의 비영리 문화 예술 공간으로 지역 주민, 미술 단체와 협업해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11년에 창립해 5개 전시 공간을 운영했고, 2019년 마곡에 있는 미술관 스페이스K로 통합했다.





송은에서 열린 [Summer Love 2022]전의 ‘Boogie Voogie’ Party. Courtesy of SONGEUN

해외 미술계에서 서울의 인지도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세 분은 작년에 이어 최근까지 분위기를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이장욱  예전에는 해외 메이저 갤러리에서 작품 소장을 제안하러 오면 그에게 어떻게 한국 작가의 도록을 자연스레 전해줄까 타이밍을 고민하곤 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그들이 적극적으로 한국 작가에 대해 묻습니다. 이를테면 “단색화 이후 한국에 누가 있어?”, “어떤 젊은 작가가 괜찮을 것 같아?”라는 질문. 확실히 달라진 풍경이죠.  로렌시나  최근 한국 미술 시장이 대중화된 것은 럭셔리 브랜드의 상황과 비슷해 보여요. 예전엔 소수만이 향유했는데 이제는 그 소비층이 굉장히 넓어졌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시장이 팽창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술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것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디너 자리에 참석해보면 미술 작품을 얼마에 샀고 얼마에 팔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거든요.  김선정  제가 느끼기에 서울의 아트 열기는 갑작스럽다기보다는 오랜 시간 꾸준히 달아오른 현상입니다. 한국은 광주와 부산 그리고 서울미디어시티 같은 현대미술 비엔날레를 일찍부터 개최했고, 아트 페어 키아프도 오랜 역사를 이어 운영하며 그 문화적 기반을 다져왔어요. 지금의 관심이 하루아침에 생성된 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지역의 문화 성숙도는 시장의 규모뿐 아니라 작가, 갤러리, 미술관 그리고 컬렉션을 포괄하는 인프라를 바탕으로 구축될 텐데, 과연 서울의 문화 성숙도는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  김선정  저는 유럽이나 다른 지역을 보더라도 한국만큼 미술계 시스템이 잘되어 있는 나라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대안 공간, 아티스트 레지던시도 많고 지원 시스템도 잘 갖춘 곳이 한국이에요. 굳이 부족한 것을 찾는다면 컬렉션일 텐데, 이것도 서울에 처음 대안 공간이 생긴 199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컬렉터층이 굉장히 넓어졌기에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장욱  서울의 비교 대상인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을 한번 살펴보죠. 금융 허브인 홍콩은 괜찮은 미술관이 몇 곳 있기는 하지만 마켓을 위한 도시의 성격이 강합니다. 싱가포르는 동아시아의 상황 때문에 홍콩에서 빠져나가는 금융자본의 혜택을 보겠지만 미술계 인프라가 아직 없고요. 도쿄는 공예에 비해 컨템퍼러리 미술 시장이 작아요. 이렇다 보니 아트 시티로 서울만 한 메리트를 가진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지점을 내는 메이저 갤러리들도 이런 점을 다 고려해보고 투자를 결정한 게 아닐까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여쭤볼게요. 아트 시티로서 서울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요?  로렌시나  이건 단점일 수도, 장점일 수도 있는데, 저는 한국 미술 신이 다양해서 좋아요. 어떨 때 보면 약 500개의 전시가 동시에 열려요. 물론 그 안에는 프로페셔널 전시부터 아마추어 전시, 대관 전시까지 섞여 있지만 저는 그런 점이 더 흥미로워요. 예를 들어 스위스는 어느 미술관에 가도 콘텐츠부터 설치까지 모든 게 완벽하거든요. 그래서 인간미가 없어요. 서울은 공간뿐 아니라 전시 그리고 작가의 퀄리티도 매우 다양하죠. 그 자체가 자연스러운 거예요. 저는 이렇게 공존하며 조금씩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바로 ‘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장욱  사실 한국이 미술품을 컬렉팅하는 구매력은 크지 않습니다. 수십억씩 하는 마스터피스를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은 아시아의 금융 도시들과 비교해보면 작죠. 한국이 그런 도시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수많은 미술대학이 있다는 거예요. 그곳에서 공급하는 작가의 힘은 실로 엄청난 것이거든요. 또한 한국인의 세련된 취향이나 세금 정책 같은 여건도 서울을 선택하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한국 컬렉터의 적극성이에요. 관심 있는 작가의 전속 갤러리에 직접 연락해 교류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공유하는 모습이 해외에서 보기에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쳐 한국의 미술 현장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송은 전시 공간.

올해 키아프와 프리즈 주간에 더 많은 아트 피플이 서울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맞춰 기획 중인 전시나 이벤트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로렌시나  송은은 ‘파노라마(panorama)’라는 주제로 한국 작가의 그룹전을 기획하고 있어요. 해외의 미술 관계자들이 한국에 왔을 때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은 작가에게 공평하게 제공하려 합니다. 그리고 작년 키아프와 프리즈 주간에는 송은 주차장에서 디제잉 파티를 했는데, 많은 분이 오셔서 전시도 관람하고 교류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올해도 행사 협찬사를 찾을 수 있다면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장욱  스페이스K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차의 전시를 준비 중입니다. 이 작가는 어릴 때 어머니에게 들은 한국 옛날이야기를 모티브로 인스톨레이션을 하는데, 삶과 죽음에 관한 여러 전설에 베이스를 두고 작업하며 페미니즘까지 연결시킵니다. 또한 이민 2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문화의 객관적 재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서용선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색화나 민중미술의 다음 세대로 특정 사조에 매이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 회화 작가입니다. 그리고 수퍼플렉스의 작품 ‘하나 둘 셋 스윙!’(2019)이 통일부에 기증돼 도라산역에 설치될 예정이라 DMZ를 방문하는 투어를 구상중입니다. 매우 특별한 일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들여 전시나 행사를 기획하는 만큼 그 시너지를 위해 행정적으로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서울 아트 투어에 대해 아쉬운 점을 들은 게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로렌시나  늘 안타까운 것은 서울에 외국인이 볼 수 있는 지도가 없다는 거예요. 외국인이 한국 앱을 다운받아 적응하긴 매우 힘들죠. 이를테면 갤러리가 모여 있는 삼청동에 가면 어떤 동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은지,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는지 알 길이 없어 헤매게 되거든요. 을지로도 재미있는 전시 공간이 많아 추천하고 싶지만 외국인이 찾아가긴 쉽지 않죠.  이장욱  아트 페어 기간에 해외 갤러리나 미술관, 아트 파운데이션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로컬 작가의 스튜디오 방문을 원하고 실제로도 많이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이 언어의 장벽이에요. 작가의 작업에 대해 프레젠테이션할 때 통.번역 지원이 절실합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이런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 분 모두 한국 작가와 외국 작가의 교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전시 공간의 디렉터잖아요. 전시를 기획할 때 어떤 점에 포커스를 두시나요?  김선정  아트선재센터는 외국 작가, 국내 작가를 구분하지 않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전시 프로그램이 좋으면 이를 보러 온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작가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게 되죠. 한국 작가를 포함해 여러 담론을 만들 수 있는 작가에 대해 항상 고민하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작가를 꼭 ‘K’라는 수식어를 붙여 프로모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 더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좋은 전시를 만들면 작가들은 당연히 알려지겠지요. 전시 내용을 더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장욱  저는 예술의 역할이 세상을 다채롭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시를 기획할 때 다양성에 주안점을 둡니다. 다양한 것은 실제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거든요. 제가 ‘아트 바젤 홍콩’ 마지막 날 옥셔니어, 갤러리스트와 모여 어떤 작품이 가장 좋았는지 얘기를 나눴어요. 그 자리에서 거론된 작가가 8명인데, 신기하게도 그중 국적이 같은 작가는 한 명도 없었어요. 그것만 봐도 국가 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걸 알 수 있죠. 우리도 그런 흐름을 잘 읽어야 해요.  로렌시나  작가를 교류하는 전시라면 저는 굉장히 아방가르드한 작가를 선정합니다. 훌륭한 작가인데 작품이 팔리지 않아 작업을 중단하거나 장식적으로 변화되는 흐름을 많이 봐왔어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작가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저희는 컬렉팅이 어려운 작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합니다. 한국 작가 중 주제가 무겁거나 어두워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지 않는 작품도 해외에서는 선호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그곳의 갤러리나 비영리 공간에 소개해 조금 더 조명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좋은 작가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은 기본이겠죠.





제이디 차의 [House Gods, Animal Guides and Five Ways 2 Forgiveness] 전시 전경. Courtesy of Whitechapel Gallery © Andy Keate

한국 작가들이 해외에서 전시를 통해 알려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지원이 필요할까요? 수년간 해외 미술 기관과 소통하며 현장에서 느낀 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로렌시나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노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어요. 먼저 영문 출판이 필요해요. 물론 한국엔 좋은 책이 많지만 외국어 번역본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서울엔 해외 갤러리가 많이 들어왔거든요. 앞으로 더 들어올 예정이고요. 이들이 로컬 작가를 발굴, 전시해 홍보하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미술 시장에서 중요한 조직인 대형 인스티튜션에서 제 역할을 해주어야 해요. 이들이 주축이 되어 미술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힘을 모아야 좋은 기회가 열릴 수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한국 미술계는 서로 소개하고 연결해주는 활동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김선정  저는 한국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가 열리면 그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희 공간만 해도 규모 면에서 미술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큰 전시는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국공립 미술관에서 그런 전시를 많이 선보이고, 더불어 한국 미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주는 미술사 서적 출판이 뒤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이장욱  런던 프리즈 기간에 테이트 모던 같은 주요 미술관에서는 꼭 영국 작가가 아니더라도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의 전시를 열죠. 그렇게 이목을 끌어주면 주변의 전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도시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전에 어느 국공립 기관의 큐레이터가 우리 돈을 들여 왜 남의 나라 작가 전시를 해줘야 하냐는 자조 섞인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 단순히 하나의 전시로 보지 말고 시야를 보다 넓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지도 높은 해외 작가의 특별전을 메인 전시로 가져오면서 자국 작가의 전시를 연계해 함께 개최하면 관람자의 시선에 자국 미술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킬 수 있거든요.

오늘 소중하고 뜻깊은 토론 감사합니다.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아트 시티 서울을 위한 응원 또는 각오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장욱  작년까지 미술 시장이 좋았고 해외 갤러리가 앞다투어 지점을 내고 있으니 앞으로 한국 미술이 퀀텀 점프를 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고, 한편으로는 해외에서 온 공룡 메이저 갤러리들이 한국 시장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습니다. 낙관론과 비관론이 뒤섞인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죠. 저는 이런 때일수록 허황된 미래를 꿈꾸거나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오늘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 일부분을 인용해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수퍼플렉스의 작품 ‘하나 둘 셋 스윙!ʼ(2019)의 도라전망대 설치 전경. Courtesy of REAL DMZ PROJECT ⓒ 박승만

 

에디터 박수전(노블레스 컬렉션)
사진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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