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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 2023-07-10
Over and Over
캔버스 너머 세상에 어떤 이야기가 존재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마틴 그로스의 실험적 작업이 올여름 파운드리 서울을 찾는다.

All In Cold, 196×160cm, Oil Stick on Paper, 2023 © dotgain.info / Courtesy of the artist, Galerie EIGEN+ART, and FOUNDRY SEOUL
멀리서 보면, 김환기의 우주와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로런스 와이너와 바버라 크루거의 텍스트 작업이 떠오른다. 실체가 궁금해 작품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니, 사진을 여러 번 압축하는 과정에서 색 정보가 손실된 픽셀의 단면 같기도, 지도 앱에서 위성사진을 손가락으로 확대·축소할 때 종종 경험하는 버퍼링 순간을 포착한 것 같기도 하다. 비록 추상이라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파편을 여러 겹의 레이어에 담아 직조하는 마틴 그로스(Martin Groß)의 개인전 [Dream File]이 7월 21일부터 9월 16일까지 파운드리 서울에서 열린다.
회화적 생물군(pictorial biome), 즉 다양한 이미지에서 자신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추출해 구성한 가상의 생태계를 지칭하는 개념이 올해 파운드리 서울이 주목한 키워드로 보인다. 지난 5월 막을 내린 야생 생태계, 조직학 연구 사진, 해부학 교과서의 삽화 등에서 발견한 것을 공상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디스토피아적 미래 생태계 풍경으로 그려낸 페르난다 갈바오의 개인전과 마틴 그로스의 [Dream File]전이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틴 그로스 작업의 특징은 자신의 눈으로 포착한 대상을 시각적 기호로 변환하고, 이를 조합하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것. 그는 엽서·지도·CCTV 등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잘라내기(cut-up technique, 이미 쓰인 텍스트를 잘라내고 재배치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법)와 몽타주 기법을 활용해 캔버스 위에 조합한 다음, 여기에 동시대 문화를 상징하는 광고·이모지·인터넷 밈·텍스트 등을 녹여낸다.
이렇게 탄생한 마틴 그로스의 작업은 ‘프로토피아(process + utopia, 디지털 세상이 꾸준히 진보하고 있다는 뜻의 신조어)’ 성격이 짙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가 구축한 세계는 픽셀과 버퍼링 순간이 연상되는 디지털적 장면이지만, 전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디지털 미디어로 구현된 여느 추상 이미지를 볼 때 대개 어디서 어떻게 감상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목적 잃은 곱씹음을 하게 되는데, 흥미롭게도 그의 작업에는 기점 역할을 하는 대상이 있다. ‘Time to Go’(2023) 속 뭉크의 절규를 묘사한 이모지, ‘Night Forest’(2023) 속 고흐의 화풍, ‘Treppenlift Top Kredit Urlaub in Tirol’(2023) 속 돼지 저금통 깨기(Knack das Sparschwein)라는 로또 광고 문구, ‘Grey Skies Turquoise Days’(2023) 속 신스팝 리듬을 형상화한 패턴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그의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당황하지 말고 익숙한 것으로부터 출발해 가지치기하며 해석의 범위를 넓혀가면 된다.
‘작가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읽으면 어떡하지?’라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 마틴 그로스의 작업은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것을 단순히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화면 너머 무한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데 의의를 두는 까닭이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캔버스에 안착한 텍스트와 이미지 구조는 새로운 생각과 개념을 발생시킬 뿐 특정 내러티브를 강조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전시장에 방문한 우리는 마치 하이퍼텍스트(‘디지털 백과사전’처럼 개별 정보를 유기적으로 연결한 디지털 정보 조직)를 클릭하듯 링크된 대상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세계를 마음속에 그리면 된다.
한편, 공간의 건축구조를 변형한 흑백 드로잉으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 마틴 그로스는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다. 드로잉과 함께 글쓰기·목판화·설치·영상 등 디지털 영역과 아날로그적 물질성을 함께 활용하는 그는 현재 독일 미술계에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문의 02-59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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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사진 파운드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