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끝 없는 모험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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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30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끝 없는 모험

2023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있는 아모레퍼시픽 서울 본사. Courtesy of Noshe

프리츠커상은 건축으로 인류와 환경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재능, 비전, 헌신의 자질을 인정받은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저명한 건축상이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이 특별한 영예를 받아 건축가라는 직업에 영감을 준 과거 수상자들과 함께하게 돼 벅찹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심사위원장이자 2016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는 명상적이라고 할 만큼 차분한 치퍼필드의 건축 디자인은 물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오래 지속 가능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찬사를 보내며 “많은 건축가가 결과물을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수 있는 기회로 보지만, 그는 정확하고 세심하게 각 프로젝트에 대응합니다. 건축은 때로는 강하고 기념비적인 설계를 요구하는 반면, 건축가로서 존재를 거의 지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궁극적 목표는 더 큰 선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기에 그의 건축물은 항상 시간의 시험을 견뎌낼 것입니다. 패셔너블한 느낌을 피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오히려 영구적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치퍼필드는 이처럼 섬세하고 우아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다채로운 분야의 건축물을 지었다. 특히 활동 초기부터 미술관이 그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1985년에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를 설립, 현재 런던, 베를린, 밀라노, 상하이에 기반을 두고 전 세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건축가다.

그가 지은 미술관은 규모에 상관없이 미술관이 엘리트 문화를 위한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한다. 그는 베를린 신박물관(Neues Museum)과 제임스-사이먼-갤러리(James-Simon-Galerie), 에센 폴크방 미술관(Museum Folkwang), 상하이 웨스트번드 박물관(West Bund Museum), 마르바흐 현대문학박물관(Museum of Modern Literature), 멕시코시티 후멕스 미술관(Museo Jumex), 세인트루이스 미술관(Saint Louis Art Museum), 마게이트 터너 컨템퍼러리(Turner Contemporary) 등 다양한 미술관을 설계하며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최근 개관한 쿤스트하우스 취리히(Kunsthaus Zürich)도 그의 작품이며, 그리스 아테네에 국립고고학박물관(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Athens)도 건축 중이다.
그는 미술관은 전시뿐 아니라 도시 문화와 교차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하며 경계를 허물어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미술관과 박물관은 시민을 위한 공간이자 도시의 새로운 움직임이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목적을 충실하게 구현해낸다. 그가 만든 미술관의 특징은 유행을 따르지 않고 도시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데 있다. 특히 언제나 넓은 야외 공간을 만들어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에게도 문화 공간을 선물하려는 의도가 매혹적이다.





베를린 뮤지엄 아일랜드의 관문 역할을 하는 제임스-사이먼-갤러리. Courtesy of Simon Menges
아래 19세기 건축물을 창조적으로 리노베이션한 베를린 신 박물관. Courtesy of SPK /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Photo by Joerg von Bruchhausen

대표작 중 하나인 베를린 신박물관과 제임스-사이먼-갤러리를 살펴보자. 그는 과거에 지은 건축물을 존중하며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낡은 건축물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2009년 완공한 베를린 신박물관은 19세기 중반에 건립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황폐화됐다. 이 건축물을 얼마나 보존할지 고민한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분별력이 돋보인다. 그는 낡은 건축물을 전면에 내세우며 흠집으로 얼룩진 세월의 흔적조차 현대적으로 새롭게 탄생시켰고, 야외 공간은 미술관에 관심이 없는 사람과도 훌륭한 연결 고리가 되어준다.
또한 치퍼필드는 지역 고유의 건축 언어를 채택하고, 새로운 창조를 위해 환경과 역사적 영향을 계산한다. 쿠퍼그라벤 운하를 따라 좁은 땅에 위치해 슐로스브뤼케 다리로 접근할 수 있는 제임스-사이먼-갤러리(2018년 완공)는 베를린 뮤지엄 아일랜드의 관문 역할을 하며 쿠퍼그라벤 운하와 신박물관 사이에 남북 방향으로 길게 자리 잡았다. 그는 웅장한 기둥이 테라스, 계단, 다양한 개방된 공간을 포용해 건물의 넓은 입구로 풍부한 빛이 들어오게 설계했다. 이 미술관 건축 디자인은 주변 건물과 도시경관을 통해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건축가로서 저는 어떤 면에서 의미, 기억 그리고 유산의 수호자입니다. 도시는 역사적 기록이고, 어느 순간 이후 건축물도 역사적 기록입니다. 도시는 역동적이기 때문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진화합니다. 그리고 그 진화 과정에서 우리는 건축물을 없애고 다른 건축물로 대체합니다”라고 프리츠커상 수상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혁신적 작품은 역사적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이를 현대건축물로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원래 디자인과 구조를 창의적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비전을 강조한다.





영국 옥스퍼드셔에 있는 강과 조정 박물관(River and Rowing Museum) 또한 치퍼필드의 작품이다. Courtesy of Richard Bryant / Arcaid
아래 영국 미술가 윌리엄 터너를 기념하는 터너 컨템퍼러리. Courtesy of Simon Menges

지난해에 완공한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프로쿠라티에 베키에(Procuratie Vecchie)는 미술관을 포함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16세기 건축물의 복원과 재창조에 공예의 힘을 끌어와 건축과 공예가 서로 얽혀 있다는 믿음을 강조하며 지역 장인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장인들은 오리지널 프레스코화, 테라초 타일, 파스텔 톤 바닥과 석고 작품을 되살려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현대적 건축 기술과 연결되는 순환 구조를 완성해냈다. 복원한 건축물은 옥상 테라스, 전시 공간, 강당과 갤러리로 구분하는 아치를 드러내 안팎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변모했다.
한편 국내에서 그의 이름은 신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건물 지하에 있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도 멋진 전시로 미술 애호가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주요 용도는 오피스 건물이기 때문에 데이비드 치퍼필드 미술관 디자인의 진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재 그가 몰두하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프로젝트는 10팀의 최종 경쟁 후보 중에서 우승을 차지한 결과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선사시대와 고대 예술품을 소장한 이 박물관은 19세기에 건립한 최초의 신고전주의 건축물이다. 치퍼필드는 이를 리모델링하고 확장해 현대적 박물관으로 만들고, 공간의 조화로운 앙상블을 통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균형을 찾을 생각이다. 박물관 정원은 번화한 도시에 조용한 공공 공간을 제공하며, 시민을 위한 공공 집회 공간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이상을 반영하는 한편 미술관이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의 건축 철학을 강조할 계획이다.





웨스트 요크셔 지역에 있는 헵워스 웨이크필드. Courtesy of Iwan Baan

찬사를 받은 작품 위주로 소개하다 보니 오래된 건축물을 활용한 미술관을 주로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헵워스 웨이크필드(The Hepworth Wakefield), 터너 컨템퍼러리 같은 완전히 새로운 건축물을 도시 안에 설계하는 데도 능숙하다. 중요한 점은 그의 건축물엔 어디에서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스타 건축가만의 표식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챌 수는 없다 해도 세계 각국의 상황에 맞게 특별히 설계한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건축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갑다.
그의 건축 언어는 기본적 디자인 원칙의 일관성과 지역 문화에 관한 유연성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다. 그는 “좋은 건축물은 좋은 과정에서 나오고, 좋은 과정은 당신이 다른 힘과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확신을 갖고 다작하는 건축가다.
얼마 전 그는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는 스페인의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갈리시아 공동체를 향한 애정을 담아 재단(Fundación RIA)을 설립했는데, 이 재단은 기후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지역의 얽히고설킨 경관, 농업, 생태 및 토지 전통을 보존하는 데 열정적이다. 그는 “우리는 건축가로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전에 맞서야 하며 다음 세대가 비전과 용기를 가지고 책임을 받아들이도록 영감을 주고 헌신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사실 그에게 건축 분야의 업적이 가장 특별한 이슈는 아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건축을 매개체로 역사를 다시 보며 지역을 변화시키고 더불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그의 목표다. 대중을 위해 지은 그의 미술관을 보면 누구나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이소영(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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