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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12

할렘의 예술

20세기 초 뉴욕 할렘에 터를 잡은 흑인 이주민들이 스스로 일으킨 예술 부흥기, 할렘 르네상스.

Archibald J. Motley Jr., Black Belt, Oil on Canvas, 83.8×103.2×4.4 cm, 1934, Collection of the Hampton University Museum, Hampton, Virginia.
아래 Archibald J. Motley Jr., The Picnic, Oil on Canvas, 76.2×91.4cm, 1936, Howard University Gallery of Art, 47.22.P. ©Estate of Archibald John Motley Jr. All rights reserved 2023/ Bridgeman Images.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뉴욕 맨해튼 북부 할렘 지역을 기반으로 문학, 미술, 음악, 공연 등 문화 예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당시 할렘은 흑인 문화의 메카로 이름을 떨치며 사회문화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었고, 이러한 흑인 문화 부흥기를 ‘할렘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라 부른다.
지금이야 할렘 하면 흑인 주거지역이라는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지만, 1880년대만 해도 이 지역에는 대부분 상류층 백인이 살았다. 그러다 급속한 난개발로 하나둘 빈 건물이 생기자 집주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1900년대 초 할렘으로 이주한 어느 중산층 흑인 가족을 시작으로 몇몇 흑인 가족이 그 뒤를 이으며 이 지역에 점점 흑인 인구가 늘어날 조짐이 보이자, 처음엔 일부 백인 주민이 이들의 유입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백인들이 이 지역을 떠나야 했고, 1910~1920년대에 걸쳐 무려 약 30만 명의 남부 출신 흑인이 북부, 그중에서도 할렘으로 거처를 옮기는 ‘대이주(The Great Migration)’가 발생했다.
단순히 사는 곳만 옮긴 것이 아니다. W. E. B. 듀보이스(W. E. B. Du Bois) 등의 인권운동가가 문화 예술 영역에서 흑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성과는 문학 분야에서 먼저 도드라진다. 1922년 클로드 매케이(Claude McKay)의 시집 〈Harlem Shadows〉, 1923년 장 투머(Jean Toomer)의 소설 〈Cane〉을 시작으로 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흑인 예술가 고유의 정체성이 깃든 빛나는 성과를 낳았다.
이 흥미로운 시기의 예술 유산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 〈Harlem Renaissance and Transatlantic Modernism〉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MET)에서 2월 25일부터 7월 28일까지 열린다. 사실 MET가 할렘 르네상스를 주목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69년 MET에서 〈Harlem on My Mind: Cultural Capital of Black America, 1900~1968〉이라는 전시가 열렸다. 하지만 대대적 광고와 달리 당시 전시는 신문 스크랩과 사진 등을 선보였을 뿐, 정작 중요한 흑인 화가와 조각가의 작품을 제외해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전시 개막 일주일 전 많은 예술가가 전시 제목을 비틀어 ‘Harlem on Whose Mind(할렘은 누구의 마음속에)?’라는 팻말을 들고 공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MET가 그 오명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MET는 수년에 걸쳐 전 세계 미술관과 대학교, 개인 소장자를 통해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품을 모으고 방대한 자료를 연구했다. 무엇보다 사진과 자료 위주인 지난 전시와 달리 이번 전시는 회화와 조각 작품 중심으로 이뤄진다. 160여 점의 회화, 조각, 사진, 영화, 유물은 1910년대 이후 수백만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대이주 초기 수십 년 동안 뉴욕 할렘을 포함한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흑인 예술가가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 작품을 대거 포함한다.





Laura Wheeler Waring, Girl in Pink Dress, Oil on Canvas, 92.1×66.7×5.7cm, Laura Wheeler Waring Family Collection. Courtesy Clark Atlanta University Art Museum.
William Henry Johnson, Woman in Blue, Oil on Burlap, 88.9×68.6cm, 1943, Clark Atlanta University Art Museum, Permanent Loan from the National Collection of Fine Art, 1969.013. Courtesy Clark Atlanta University Art Museum.


순수예술가 아치볼드 J. 모틀리(Archibald J. Motley), 화가이자 조각가인 찰스 올스턴(Charles Henry Alston), 시각예술가 메타 워릭 풀러(Meta Warrick Fuller), 사진작가 제임스 밴 더 지(James van der Zee), 예술가이자 교육가 로라 휠러 워링(Laura Wheeler Waring) 등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인의 작품이 전시에 대거 등장한다. 앙리 마티스, 에드바르 뭉크, 파블로 피카소 같은 주요 예술가의 동시대 작품,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다룬 유럽 작가의 작품과 직접 병치해 선보이는 전시 방식도 무척 흥미롭다.
이와 더불어 아프리카와 이집트의 미학, 유럽의 아방가르드 회화 스타일 등 이 시기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들이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을 거부하며 자신의 주체성을 현대적 방식으로 묘사한 작품도 함께 자리한다. MET의 전시 소개에 따르면 일부 작품은 “퀴어 정체성, 색채주의와 계급 갈등, 인종 간 관계 등 사회문제에 대한 뉴 니그로(New Negro, 새로운 흑인상) 시대의 접근 방식을 탐구한다”고. MET의 CEO이자 디렉터인 막스 홀라인(Max Hollein)도 전시 보도 자료에서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창조한 매력적인 초상화, 활기찬 도시 풍경과 밤 문화 등을 역동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통해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구조를 형성하는 데 할렘 르네상스 운동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대담하게 강조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영원할 것 같던 할렘 르네상스는 1929년 주식시장 폭락과 대공황으로 막을 내렸다. 1935년이 되자 할렘의 흑인 문화 정체성을 만들어온 기존 주민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남부에서 새로이 유입된 난민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게다가 이러한 변화의 물결 한가운데에서 결정적으로 할렘 르네상스의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 발생한다. 1935년 한 젊은 절도범이 체포된 후 과잉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 과정에서 3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했으며 수백만 달러의 재산 피해가 난 할렘 폭동. 그 후로 9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할렘까지 차로 약 10분이면 닿을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 MET에서 후대의 우리가 그 시기의 영광을 대면하게 된다. “Harlem on Whose Mind?” MET의 이번 전시는 1969년에 던진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백아영(프리랜서)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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