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미술의 인큐베이터, 에이드리언 정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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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9

중국 현대미술의 인큐베이터, 에이드리언 정

한국에도 많은 페이스북 친구가 있는 에이드리언 정은 홍콩의 재벌 뉴월드 그룹 후계자로 세계적 아트 컬렉터, K11 아트 파운데이션 설립자, 영 컬처 리더 등 다양한 역할 사이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는 인물이다. 컬렉터를 넘어 예술가를 키우는 인큐베이터가 되고 싶다는 그를 홍콩에서 만났다.

홍콩 K11의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촬영한 에이드리언 정




상하이 Chi K11 공간

‘젊고, 부유하며, 멋지기까지 하다’는 수식어를 늘 동반하는 에이드리언 정(Adrian Cheng)은 홍콩 재벌 그룹 뉴월드를 이끄는 3세대 경영인이다. 2012년 <포춘> 선정 ‘40세 이하 스타 기업인 40인’, 2015년 <아트리뷰>의 ‘파워 100인’에 이름을 올리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차세대 기업인으로, 그의 할아버지 정위퉁(Yutung Cheng)은 50여 년 전 뛰어난 상업 수완과 시대의 흐름을 타고 현재 홍콩 4대 부호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기도 하다. 에이드리언 정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일찌감치 서구권에서 교육을 받은 덕분에 세계적 문화의 흐름을 잘 읽어내 조부와 부친의 가족 사업을 유연하게 연결시키면서 자신만의 전설을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손꼽히는 재벌가의 후계자지만 2008년 예술과 인문학, 자연을 융합한 크리에이티브 브랜드 K11을 창립한 후 더욱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2010년 K11 아트 파운데이션을 세우며 홍콩 아트 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선견지명을 지닌 사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한 후 도쿄에서 1년간 일본 문화를 공부한 그는 2006년 뉴월드 그룹에 입사, 2009년 홍콩에 최초의 ‘뮤지엄 리테일 스토어’ K11 아트 쇼핑센터를 오픈하며 예술과 소매 유통 산업이라는 이질적인 두 장르를 신선하게 결합했다. K11 아트 파운데이션을 통해 청년 작가들에게 국제 예술계에 등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그의 이름은 현대미술계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에 힘입어 2013년 상하이 한복판에 새롭게 문을 연 K11은 오픈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상하이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상하이 K11의 지하 3층에는 ‘Chi K11’이라는 작은 미술관이 들어섰는데, 2014년 열린 <인상파의 거장-모네(Master of Impressionism-Claude Monet)>전은 미술계와 대중에게 극찬을 받으며 상하이 예술계를 들썩이게 했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해 말에는 <미디어-달리(Media- Dali)>전을 열며 중국 관람객에게 초현실주의의 개념을 다시 알렸고, 초현실주의가 중국에 미친 영향을 정리한 작품도 함께 선보이며 다각적인 기획을 펼쳤다.
그러나 Chi K11을 찾는 관람객이 옛 대가들의 전시에만 환호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4만여 명에 달하는 K11의 팬은 청년 작가와 젊은 큐레이터가 함께 준비한 신선하고 독특한 전시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는 에이드리언 정이 정한 K11 아트 파운데이션의 목표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중국 동시대 미술의 인큐베이터 역할입니다. 1990년대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 작가들을 뛰어넘는 yCa(young Chinese artists) 시대가 머지않아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중부 지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알려진 후베이 성의 우한(武?)에 위치한 K11 아트 빌리지는 전 세계 청년 작가의 공화국과도 같다.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된 작가들은 창작 공간과 전시 플랫폼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품 활동을 펼치는데, 에이드리언 정은 바로 여기에 K11 아트 파운데이션의 영혼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2014년 K11 아트 파운데이션과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는 중국과 프랑스의 차세대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고자 3년간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3년 동안 전시와 레시던시 프로그램, 아티스트 교환 프로그램이 이어지는데 이런 상호 교류는 두 기관의 파트너십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다. 두 기관의 합작 전시 <중국의 내부: 거인의 속(Inside China: L’Interieur du Geant)>이 지난해 홍콩에서 아트 바젤 기간에 성공적으로 열렸는데, 이후 상하이 Chi K11 미술관으로 순회전이 이어지면서 중국과 프랑스의 작가를 국제 예술계에 소개했다. 또한 같은 해에 진행한, K11 아트 파운데이션과 퐁피두 센터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는 에이드리언 정에게 ‘영 컬처 리더’라는 명예까지 안겨주었다. 이 모든 협업은 중국의 청년 큐레이터를 육성하는 동시에 중국 동시대 미술의 발전 과정을 탐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 37세인 에이드리언 정은 중국 국가박물관재단과 영국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의 이사이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방문위원, 테이트 미술관 국제위원회 위원, 퐁피두 국제컬렉션위원회 위원, 홍콩 서구문화구 이사국 구성원으로 활동 중이다. 더불어 MoMA, 퐁피두 센터, 팔레 드 도쿄의 관장, 큐레이터와 함께 중국 동시대 미술의 현장을 조사하기도 했다. 아트 컬렉터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장언리(Zhang Enli)의 평면 회화 ‘물질(The Material)’과 쉬전(Xu Zhen)의 2014년 작 ‘기업-4개의 나이프 조합(Corporate-4 Knives Groups)’을 퐁피두 센터에 기증하기도 한 것(쉬전의 작품은 에이드리언 정과 데이비드 차우(David Chau)가 공동 기증). 젊고 유망한 재벌가 귀공자 이상의 면모를 지닌 그를 만나 문화 예술 산업에 대한 큰 뜻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K11과 팔레 드 도쿄의 홍콩 연합전




상하이 K11 아트 파운데이션의 전시




K11 아트 빌리지가 레지던시 작가들을 위해 마련한 전시

당신은 종종 컬렉터가 아닌 중국 동시대 미술의 인큐베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솔직히 많은 사람이 컬렉터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래의 중국 작가를 육성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많죠. 이것이 K11을 설립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작가를 인큐베이팅하는데 어떤 면에서 MoMA와 퐁피두 센터, 팔레 드 도쿄와 협력이 필요한가요? 그들과의 협업은 단순한 해외 홍보가 아닙니다. 우리의 젊은 작가와 큐레이터, 예술 생태를 국제 예술계에 연계시키는 행위죠. 지금 국제적 미술관, 큐레이터, 컬렉터는 사실 중국의 젊은 작가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경매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50~60대 작가에게 익숙하죠. 물론 중국 동시대 미술의 중견 작가들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세대가 교체되는 만큼 앞으로 중요한 건 미래입니다. 현재 중국의 정치, 지리, 경제가 모두 변하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업이 문을 열고 있죠. 신흥 기업의 CEO 는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세대로 자신만의 관점과 생활 방식이 있습니다. 그에 부합하는 새로운 예술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발견한 새로운 예술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극적으로 다원화된 관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세계관을 다루고, 어떤 작가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승화시키고, 또 어떤 작가는 미술사의 담론을 논하죠. 그 때문에 그들을 하나의 주제로 개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를테면 1990년대를 아우르는 중국 미술계의 가장 큰 화두는 정치 팝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신세대 작가들은 단일한 주제로 묶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부모 세대가 겪은 충격적인 경험도 하지 않았죠. 그들의 관점과 사고방식은 글로벌 미술계의 작가들과 같을 겁니다. 그러므로 제가 볼 때 새로운 예술가 그룹에서 중국과 서양의 작가를 구분 짓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작가뿐 아니라 큐레이터도 육성할 계획이 있나요? 네. 작가를 포함한 모든 미술 전문가가 우리의 인큐베이팅 대상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기획하는 모든 전시는 반드시 젊은 중국 작가나 중국인 큐레이터를 초청합니다. 솔직히 중국 예술계는 비교적 현실적 문제에 집중하느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미래’에 대한 결핍이 늘 존재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문제시하지 않았죠. 어떻게 13억 인구 중 데이미언 허스트나 제프 쿤스 같은 작가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5000년을 이어온 문화의 저력과 이토록 많은 인구가 있는데, 왜 중국은 그렇게 되지 못한 걸까요? 1990년대 영국에 yBa가 등장한 것처럼 사실 어떤 문화가 절정기에 달했을 때 우수한 작가가 무리 지어 나타나곤 합니다. 현재 국제 학술계에서는 yCa의 개념에 대해 점차 언급하고 있어요. 중국 작가들은 스스로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전략이 필요하죠. 동시에 국제 예술계와도 소통을 유지하는 것, K11은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상하이 Chi K11 미술관의 전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모네와 달리의 전시 같은 대가의 전시, 다른 하나는 젊은 작가의 전시인데, 의도적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그 두 맥락은 각각 두 그룹의 관중을 겨냥한 겁니다. 한 그룹은 어느 정도 예술 감상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 이를테면 달리의 전시를 보면서 ‘초현실주의’가 중국 동시대 미술에 미친 영향을 유추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반면에 다른 한 그룹은 평소 미술관에 거의 가지 않아 미술을 어려워하고, 나아가 미술을 돈 많은 사람들의 놀이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에게 예술의 문을 더욱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학술계에서 논의가 분분한 ‘예술의 민주화’죠. 관중을 육성하려면 우선 예술을 편하게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햄버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생선회를 권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한 번도 날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하겠죠. 그러나 조급함을 버리고 먼저 햄버거부터 한 입 맛본 후 천천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고 하면 거부하지 않을 거예요. 그다음 회 한 점을 올리며 이것도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할 겁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생선회를 즐길 수 있는지 하나씩 알려줄 거예요.

홍콩과 상하이 모두 상업적인 지역에 복합 문화 쇼핑몰을 지었고, 상하이 K11의 경우는 그 안에 미술관까지 따로 만들었습니다. 혹시 좀 더 예술적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지역에 미술관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나요? 새로운 상업 모델을 만들려면 대담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합니다. K11은 상업과 예술이 윈윈하는 프로젝트입니다. K11 아트 파운데이션의 건강한 운영은 많은 투자 자금을 필요로 합니다. 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에 미술관을 지었느냐고요? 중국의 미술관들을 보세요. 모두 그렇게 열심히 전시를 오픈해도 극히 적은 관중만 전시를 보러 옵니다. 큐레이터나 작가에겐 참 불공평하죠. 그러나 K11 프로젝트와 미술관은 상당히 학술적이면서도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쉽게 지하 3층으로 내려와 거부감 없이 전시를 보고 갑니다. 저는 좋은 상업적 모델을 가지고 있어요. 관람객과 큐레이터, 예술가를 한 번에 육성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 아닐까요?

K11은 지난 2~3년 동안 우수한 프로젝트를 선보여왔습니다. 향후 10년의 계획은 어떤가요? 앞으로 10년 동안 전력을 다해 인큐베이터를 작동시킬 겁니다. 2016년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3월 홍콩 K11에서는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와 손잡고 국제적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lrich Obrist)와 아미라 가드(Amira Gad)가 기획하는 특별 전시를 오픈할 예정이고, 중국 청년 작가 청란(ChengR an)의 영화 <기적을 찾아서(In Course of the Miraculous)>의 아시아 첫 상영회도 준비중입니다. 지난 9월 제14회 이스탄불 비엔날레에서 첫선을 보인 이 영화는 장장 9시간의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그 안에 담긴 복잡한 개념과 거대한 규모를 통해 촉망받는 신예 작가가 이제 막 시작한 위대한 과업을 직접 확인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영 컬처 리더를 대표하는 에이드리언 정




K11이 후원하는 청년 작가 장딩(Zhang Ding)의 전시 전경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허민(He Min), 마오쥐단(Mao Judan) 사진 Henry W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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