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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28

그녀의 소환법

이제 ‘제주’도 비엔날레 행렬에 동참한다. 김지연 예술감독이 밝히는 제주비엔날레의 존재 이유와 전시 기획자로서 그녀를 이끄는 힘.

1973년에 태어난 독립 큐레이터 김지연은 가나아트센터와 학고재를 거쳐, 2013 해인아트 프로젝트, 2014 아트쇼부산, 2014 창원조각비엔날레, 2014 지리산프로젝트 등 대규모 행사의 예술감독으로 활약했다. 올해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 관장과 함께 제주비엔날레를 이끌고 있는 그녀는 전시 기획사 소환사의 대표이기도 하다.

제주에서 첫 비엔날레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지금?’ 그리고 ‘왜?’였다. 9월 2일부터 12월 3일까지 제주 전역에서 열리는 이번 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은 독립 큐레이터 김지연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해인아트프로젝트, 창원조각비엔날레, 세계문자심포지아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통해 기억한다. 물론 상업 화랑에서도 오래 근무했지만 그녀의 경력엔 유독 장르를 가리지 않는 큰 행사가 많다. “처음부터 전시 기획자를 꿈꾸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거든요. 그때 제1회 미디어시티서울2000이 열렸는데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어요. 당시 규모가 큰 행사에서 미술의 흐름을 경험하고는 현장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매료됐습니다. 그중에서도 기획자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총괄한 전광판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전광판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죠.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도 야외나 현장에서 작업하는 걸 좋아합니다. 물론 가끔 돌발적이고 예외적인 일이 생겨 놀랄 때도 있지만요.”
대규모 행사를 치른 경험이 많은 그녀에게 제주비엔날레의 설립 의의를 묻고 싶었다. 도입부에서 밝혔듯, 제주에서 왜 지금 대형 전시를 시작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했으니까. 이미 비엔날레 포화 상태인 한국에서 제주가 단순히 지역사회의 이름을 내세운 행사를 만들어내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요즘 비엔날레가 점점 물신화, 브랜드화되고 있습니다. 전시 규모도 커지고요. 하지만 이런 행사가 주는 ‘스펙터클’은 분명히 효과가 있어요. 이슈몰이의 역할도 하죠. 제주에도 국제 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제주에서 산발적 축제는 많이 열렸지만 이렇게 전체의 흐름을 진단할 수 있는 전시는 없었어요.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는 연속성을 갖는 행사잖아요. 이 정도 규모의 국제 전시가 정기적으로 제주에서 열린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물론 미술계는 요즘 대형 전시를 벗어나려는 추세죠. 하지만 저는 각 지역의 문화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고 생각해요. 현대미술에 대한 경험치도 각각 다르고요. 지금 제주엔 비엔날레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술계가 비엔날레의 사망을 선언하는 이 시점에 제주비엔날레를 통해 비엔날레의 원래 의미를 돌아보려 해요. 지금 비엔날레가 직면한 문제점을 진단하는 메타비평적 태도로 말이에요.”






1 리슨투더시티, ‘장소 상실 내성천, 구럼비, 옥바라지골목’.   2 김옥선, ‘빛나는 것들_무제_하원1695’.

제1회 제주비엔날레가 선택한 주제는 ‘투어리즘’이다. “제주 사회의 이슈를 예술로 풀어내기 위해 무수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다 관광이라는 답에 도달했죠. 투어리즘은 제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지닌 이슈입니다. 전시를 통해 관광 메커니즘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고 싶어요. 투어리즘은 이 시대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의 발단이 되는 아주 중요한 단어예요. 관광은 브랜딩, 지역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거든요.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에 관광의 기능을 고민하고, 우리가 왜 이토록 여행을 권장하고 떠나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여행지에서 남과 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인해 생태계가 점점 망가지잖아요. 또 관광의 효과를 부정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도 있고요. 이번 제주비엔날레는 그런 문제점도 짚어보면서, 관광이라는 범시대적 현안을 풀어낼 수 있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전시에 친절한 장치를 넣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엔 대중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제주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총 70여 팀의 작가 리스트를 훑어보니, 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작가가 눈에 띄었다. 주제 면에서도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탐라순담’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위정자의 시각으로 제주 지역사회를 바라보는 ‘탐라순력도’에서 모티브를 얻었죠. 사람들이 각자 안고 있는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사람을 통해 제주가 안고 있는 문제를 들여다보는 작업입니다. 나아가 비엔날레라는 플랫폼 안에서 현대미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도 하고요. 또 ‘한라살롱’은 제주 작가 60여 명이 모여 제주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한라산을 그린 프로젝트예요. 한라산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드러내죠. 퍼포먼스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빅은 여행의 끝에서 연인과 헤어지는 퍼포먼스 작품 ‘The Lovers: the Great Wall Walk’를 통해 여행의 의미를 파헤치고, ‘무늬만 커뮤니티’라는 팀은 한국 사회에서 이주 노동자로 사는 세리파족과 함께 한라산을 등반하며 새로운 시선으로 제주를 바라봅니다. 300만 원으로 제주에 땅을 산 이원호 작가의 작업도 흥미로워요.”






김형규, ‘새로운 세계화_사상화(思象畵)_ 3’.

올해 제주비엔날레도 마찬가지지만 그녀가 기획한 전시엔 유독 사람들과 함께 꾸리는 프로젝트가 많다. 개별 작가보다는 팀이 대부분이고, 작가 혼자 진행하는 작업보다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작업이 많다. 그녀가 전시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바로 사람이다. “동료들과 다 같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잡아나가는 과정을 좋아합니다. 어떤 주제를 놓고 작가들과 협의하는 것도 큰 기쁨이에요. 일을 하면 할수록 가장 중요한 건 팀워크와 파트너십이라고 느껴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제 아이디어의 원천이기도 하고요. 주변인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모든 것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가 머릿속이 좀 산만한 편이거든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대화하면서 항상 레이더를 세우고 있죠.”
김지연 예술감독은 작년부터 ‘소환사’라는 전시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제가 생각하는 전시 기획은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불러들이는 거예요. 혹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 해도 새로운 맥락으로 소환하는 거죠. 소환사는 친한 작가의 중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제주비엔날레가 끝난 다음 소환사의 리더이자 독립 큐레이터로서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저는 예술의 비물질성에 관심이 있어요. 한시적이고 소멸하는 것에 매력을 느껴요. 그래서 퍼포먼스와 사운드 아트를 좋아해요. 물성이 강한 미술보다는 실체가 없는 개념미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주목하는 주제는 시간이나 시계예요. 시간은 인간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잖아요. 어쩌면 시간이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이라는 주제를 어떤 형식으로든 풀어내고 싶어요. 전시나 공연, 출판이 될 수도 있겠죠.”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녀가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소환했을지, 앞으로 어떤 전시를 꾸릴지 너무도 궁금했다. 올가을엔 제주를 방문해 그녀의 열정이 담긴 작업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정태호(인물)  사진 제공 제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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