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Languages, One Echo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아티스트가 오랜 시간 감각을 주고받으며, 혼자서는 닿을 수 없던 영역으로 나아간다. 음악, 시각예술, 공연, 패션, 건축 등 장르와 분야의 경계를 허물며 ‘함께’라는 또 하나의 창작 방식을 만들어온 동시대 예술가들의 파트너십을 소개한다.


Ryuichi Sakamoto × Shiro Takatani
사카모토 류이치와 다카타니 시로는 지난 25년간 소리와 이미지, 빛과 공간을 넘나들며 하나의 감각적 경험을 만들어왔다. 음악가이자 작곡가인 사카모토는 영화음악과 전자음악, 현대음악을 넘나들며 동시대 음악의 지평을 넓혀왔고, 2000년대 이후에는 전시 공간을 무대로 한 사운드 설치 작업에 집중하며 음악을 공간과 시간 속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탐구해왔다. 사진과 영상, 조명, 무대 디자인을 아우르는 시각예술가 다카타니 시로는 아티스트 그룹 덤 타입(Dumb Type)의 창립 멤버로, 기술과 자연, 빛과 움직임을 결합한 몰입형 공간 작업을 지속해왔다. 1999년 오페라 에서 다카타니가 비주얼 디렉터를 맡으며 시작된 두 사람의 협업은 이후 설치와 퍼포먼스, 공연을 넘나드는 장기적 예술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이 함께 탐구해온 것은 비단 음악과 영상의 결합만이 아니다. 소리와 이미지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2007년 설치 작업 ‘LIFE – fluid, invisible, inaudible…’을 통해 오페라 를 물과 안개, 영상과 사운드가 어우러진 공간 설치로 확장한 후, 이들의 협업은 음악을 공간 속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했다. ‘IS YOUR TIME’(2017/2024)에서는 동일본대지진 쓰나미로 훼손된 피아노를 중심에 놓고, 전 세계 지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소리로 변환해 자연이 연주하는 악기로 되살렸다. 이어 2017년 앨범 를 작업하며 두 사람은 음악을 공간 속에 배치하는 ‘설치 음악(installation music)’ 개념을 탐구했고, 소리와 빛, 영상, 공간이 하나의 감각으로 작동하는 일련의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자연과 시간, 기억을 향한 사카모토의 사유는 빛과 공간을 다루는 다카타니의 시각언어를 통해 새로운 형태를 얻었고, 다카타니의 작업 역시 사카모토의 음악과 만나 보다 깊은 감각의 층위를 만들어냈다. 각자의 영역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의 언어를 자신의 매체로 끊임없이 번역한 두 사람은 비로소 오랜 시간이 깃든 하나의 작품 세계를 완성했다.
Iris van Herpen × Philip Beesley
네덜란드 출신 패션 디자이너 이리스 반 헤르펜은 첨단 기술과 자연과학, 건축, 생물학을 오트 쿠튀르에 접목하며 패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왔다. 3D 프린팅과 레이저 커팅, 자성 소재 등 혁신적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자연의 성장 원리와 유기적 형태를 섬세한 의상으로 구현하며 동시대 패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캐나다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필립 비즐리는 인공지능과 센서, 반응형 소재를 결합한 설치 작업을 통해 살아 숨 쉬는 듯한 건축 환경을 연구해왔다. 관람객의 움직임과 빛, 공기의 흐름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의 작품은 건축을 고정된 구조물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처럼 바라보게 한다. 2013년 ‘Voltage’ 컬렉션을 시작으로 ‘Magnetic Motion’, ‘Lucid’, ‘Sensory Seas’, ‘Meta Morphism’ 등 10여 년에 걸쳐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선보인 두 사람은 패션과 건축, 기술과 생명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발전시켜왔다.
대표적 협업 프로젝트 ‘Sensory Seas’(2020)는 해양생태계와 미생물, 유기적 성장 원리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 수천 개의 투명한 아크릴 구조와 섬세한 실리콘, 레이저 커팅한 부품을 층층이 연결한 비즐리의 반응형 설치 속에서 반 헤르펜의 쿠튀르 드레스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공간과 함께 호흡한다.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설치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빛과 움직임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의상과 건축은 하나의 유기적 환경을 이루는 존재로 확장된다. 두 사람은 이를 통해 옷을 몸에 입는 대상이 아니라 공간과 생명, 환경을 연결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제안했다. 이들의 오랜 협업은 2023년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시작해 2026년까지 이어진 순회전 를 통해 다시 조명되고 있다. 패션과 건축, 기술과 생명체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구축해온 하나의 유기적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


Tilda Swinton × Olivier Saillard
배우이자 퍼포머인 틸다 스윈턴은 데릭 저먼, 루카 과다니노, 짐 자머시 등 동시대 거장들과 긴밀한 협업을 이어오며 시대와 성별을 초월한 독보적 존재감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올리비에 사야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역사학자이자 큐레이터로, 파리 장식미술관 패션 부문을 이끌며 패션의 역사와 아카이브를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해왔다. 2012년부터 함께 작업한 두 사람은 의복을 하나의 살아 있는 기억으로 되살리는 독창적 퍼포먼스를 구축해왔다. 마네킹 대신 사람의 몸을 전시장으로 불러들여 옷에 깃든 시간과 이야기를 드러내는 사야르의 작업에서 스윈턴은 ‘살아 있는 받침대(living socle)’가 되어 의복과 역사, 기억을 연결하는 존재로 기능한다.
대표작 ‘The Impossible Wardrobe’(2012)에서는 팔레 갈리에라 컬렉션에 소장된 마리 앙투아네트와 나폴레옹의 의복을 비롯해 샤넬, 스키아파렐리, 발렌시아가의 역사적 의상을 스윈턴이 직접 입어 과거의 의복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어 ‘Eternity Dress’(2013)에서는 사야르가 무대 위에서 즉석으로 드레스 한 벌을 제작했고, ‘Cloakroom—Vestiaire Obligatoire’(2014)는 관람객이 맡긴 외투를 퍼포먼스의 일부로 전환해 일상의 의복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Embodying Pasolini’(2022~2025)에서는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영화의 의상 30여 벌을 차례로 착용하며, 배우나 인물을 재현하는 대신 영화를 떠난 의상 자체의 기억과 존재를 드러냈다. 최근 공개한 ‘A Biographical Wardrobe’(2025)에서는 스윈턴이 가족에게 물려받은 옷과 영화 의상, 레드 카펫 드레스, 사적 옷장을 함께 펼쳐 보이며 한 사람의 삶을 의복으로 기록하는 자전적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이들은 2025년부터 2026년까지, 암스테르담 아이 필름뮤지엄(Eye Filmmuseum)에서 시작해 아테네 오나시스 레디(Onassis Ready)로 이어진 전을 통해 다시 한번 협업을 펼쳤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온 퍼포먼스는 옷을 입는 행위를 넘어, 시간과 기억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의식으로 이어진다.


William Kentridge × Philip Miller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영화와 오페라를 넘나드는 윌리엄 켄트리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와 식민주의, 기억을 탐구해온 대표적 동시대 미술 작가다. 목탄 드로잉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독창적 애니메이션 기법을 바탕으로 영상과 퍼포먼스, 무대를 아우르며 역사와 개인의 기억이 교차하는 서사를 구축해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곡가이자 사운드 아티스트인 필립 밀러는 전자음악과 미니멀리즘, 아프리카 전통 합창을 넘나들며 공공 및 개인 아카이브에 남은 목소리와 기억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오페라와 연극, 영화, 설치 작업을 넘나들며 음악을 하나의 서사적 장치로 확장해온 그는 켄트리지의 오랜 예술적 동반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93년부터 함께 작업해온 두 사람은 ‘Felix in Exile’(1994)을 시작으로 ‘Black Box/Chambre Noire’(2005), ‘I am Not Me, the Horse is Not Mine’(2008) 등 연극과 오페라,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을 선보이며 서로 다른 매체를 하나의 서사로 엮는 독자적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역사와 기억을 다루는 두 사람의 협업은 파편화된 이미지와 음악을 하나의 서사로 직조하는 과정에 가깝다. 설치 작품 ‘The Refusal of Time’(2012)에서는 5개의 대형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영상과 키네틱 조각 그리고 필립 밀러의 음악을 하나의 무대처럼 엮어 시간과 식민주의, 과학의 역사를 다층적으로 펼쳐냈다. 이어 ‘The Head & the Load’(2018)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동원된 아프리카인의 역사를 행진하는 배우와 무용수, 대규모 합창, 프로젝션 드로잉을 결합한 뮤직 시어터로 재구성했다. 2026년 이탈리아 국립 21세기 미술관(MAXXI)에서 선보인 전시 에서는 ‘Triumphs and Laments’와 ‘The Head & the Load’를 다시 엮어 이미지와 음악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몰입형 시네 콘서트로 확장하며, 단선적 역사 대신 파편과 중첩을 통해 열린 서사를 구축했다. 켄트리지의 드로잉과 영상이 역사의 흔적을 시각화한다면, 밀러의 음악은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와 감정을 불러낸다. 두 사람의 협업은 하나의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이미지와 소리, 침묵이 교차하는 층위를 쌓아 올리며, 역사를 끊임없이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마주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