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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01

미술계 큰손으로 떠오른 MZ세대

MZ세대가 미술을 소비하기 시작하며 미술계 풍경이 바뀌고 있다. 그 지점을 조명했다.

그라운드시소 명동에서 11월 28일까지 열리는 <블루룸>전.

지난 몇 년 사이 MZ세대를 의식한 미술계의 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집에서 손으로 미술을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젊은 층을 위해 마련한 MMCA TV 학예사 전시 투어, MMCA 라이브 시리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8월 1일까지 열린 <호민과 재환>전에서 팬덤을 형성한 인기 만화가 주호민을 SNS를 활용한 전시 홍보에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미술에 관심 없던 젊은 층까지 전시장으로 데려왔다. 지난해 9월 OVR로 열린 KIAF에서는 차세대 미술 애호가에게 작품의 소장 가치를 알리는 장을 열어주고자 ‘밀레니얼 아트 트렌드세터: 나의 안목이 세상을 바꾸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MZ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아트 페어도 생겼다. 지난 6월 개최한 ‘더 프리뷰 한남 with 신한카드’는 신진 작가 128명의 작품 700여 점을 선보였으며 작품 가격을 10만 원대부터 시작해 비용 부담을 낮췄다. 아트 페어 개막과 함께 런칭한 앱 ‘My Art Flex’로 판매자와 구매자를 이은 것도 인상적. 행사가 열린 10일간 6000여 명이 방문하고 작품 판매액이 6억 원을 넘어서는 등 호응을 이끌어냈다. 서울옥션은 MZ세대가 주로 찾는 아트 토이와 스니커즈 등을 경매하는 ‘블루’를 2016년부터 운영 중. 한데 이러한 변화는 미술계 ‘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느새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미술을 마주하고,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술을 소비하고 있다.



MZ세대를 위한 아트 페어를 표방한 ‘더 프리뷰 한남 with 신한카드’.

백화점, 호텔에서도 외치는 아트
백화점(百貨店)은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상품을 진열해 판매하는 곳이다. 그래서 무엇을 취급하든 놀랍지 않지만, 몇 개월 사이 아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행보는 이례적으로 느껴진다. 지난 2월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은 6층에 복합 문화 공간 알트원을 함께 오픈했다. 작은 미술관 규모를 자랑하는데,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의 회고전에 이어 7월부터 세계 최초 360도 감성 체험 이머시브 전시 <비욘더로드>를 개최 중이다. 이에 질세라 롯데백화점도 지난 6월 본점 에비뉴엘관 9층에 240여 평 규모의 미디어 아트 전시관 그라운드시소 명동을 열었다. 전시장에 70대 이상의 고성능 프로젝터와 멀티플렉스급 사운드 시스템을 도입해 선명한 영상과 사운드를 구현하는 것이 특징. 롯데백화점 측은 그라운드시소 명동이 연간 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모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백화점은 미술 작품 판매까지 하며 갤러리와 아트 페어의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봄 본점 본관 3층과 4층 명품 매장 사이 아트 월에서 ‘블라섬아트페어’를 열었다. 100만 원대부터 2억5000만 원대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을 소개했는데 김창열, 줄리언 오피 등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도 포함했다. 아트 페어 기간에 전문 큐레이터가 상주하며 공간 맞춤형 아트 컨설팅을 진행한 것은 기본. 이어서 여름에는 강남점과 경기점, 타임스퀘어점에서 순차적으로 <이머징 아티스트 위드 신세계>전을 열어 박기복, 이시, 신채훈 등 젊은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며 아트 마케팅을 강화했다. 비슷한 시기에 롯데백화점도 <아트 롯데>전을 열어 이우환, 박서보 등 거장의 작품을 선보였다. 또 7월 30일부터 8월 29일까지는 [flex art]전을 개최했는데, 이는 미술 시장에 갓 진입한 젊은 컬렉터를 겨냥한 신진 작가 작품 판매전으로 전 연령대의 소비자를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백화점뿐만이 아니다. 호텔도 자신의 공간에 미술을 입히고 있다. 작년 여름 문을 연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은 1년 만에 흑자를 달성했는데, 이광호와 고상우 등 감각적인 작가의 작품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아트 감성이 손님을 끌어오는 데 한몫했다는 평이다.
청담 에이든도 지난 3월 아트와 파인·캐주얼다이닝,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아트 라운지 에이라운지를 오픈했다. 권오상, 김희조, 임선희 등 재능 있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 및 판매해 호텔 아트 페어를 연상케 한다. 한편,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갤러리플래닛과 협업해 7월 20일부터 9월 7일까지 <아트 바캉스>전을 연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미술 작품을 감상하며 휴식과 예술을 동시에 즐기게 하려는 목적. 앤디 워홀의 ‘플라워’ 시리즈 판화, 이경미의 ‘NANA the Astro’ 시리즈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러한 예술적 변화의 중심에는 MZ세대가 있다. MZ세대는 당장 시장의 큰손은 아닐지라도 SNS를 기반으로 다른 세대에까지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소비 주체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직격탄을 맞은 백화점과 호텔업계는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고, 미술을 최고의 유인책으로 꼽았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자신의 기호나 취향을 드러내는 걸 꺼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거기서 힘을 얻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과 달리 미술은 인증샷을 찍어 즉각적 공유가 가능하다. 여기에 이색 경험을 추구하고 남들과 다르길 원하는 MZ세대에게 미술은 취향 저격 콘텐츠. 이제 아트를 입지 않은 공간은 살아남기 힘들다.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을 수놓은 고상우 작가의 회화 작품.

커피 한 잔 가격으로 사는 작품
코로나19 팬데믹은 국내외에서 MZ세대의 재테크 열풍을 촉발했다. 경제 불확실성의 증가로 금리가 낮아지고 유동성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면서 투자 기대감이 커진 것. 주식시장으로, 암호화폐 시장으로 쏠리던 이들의 시선은 최근 여러 곳으로 분산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조각 투자’다. 고가의 투자 대상을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구입해 소유권을 조각조각 나눠 갖는 방식. 조각 소유 비율에 따라 시세차익을 노린다. 희소성 높은 명품부터 아이돌의 음원 저작권, 서울 한복판의 노른자 빌딩까지 조각 투자의 대상은 굉장히 다양하다. 물론 미술품도 여기에 포함된다. 조각 투자는 대부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데, 2018년 10월 아트앤가이드가 국내 최초로 김환기 화백의 ‘산월’을 공동 구매한 이후 아트투게더, 피카프로젝트, 테사 등 여러 업체가 미술품 조각 투자 시장에 진출했다.
미술품 조각 투자가 MZ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소액 투자가 가능하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미술 작품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MZ세대는 몇 없지만, 적게는 1000원, 많게는 100만 원부터 투자해 일부를 소유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 4월 아트앤가이드는 박서보 작가의 3억5000만 원짜리 ‘묘법 No.180411’을 100만 원짜리 조각 350개로 나눠 공동 구매자를 모집했는데, 시작한 지 1분 30초 만에 45명이 참여하며 마감됐다. 작가의 작품을 알아보고, 구매하고, 소유하는 심리적 만족감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MZ세대의 성향은 투자 시에도 적용되는데, 기왕이면 자신이 ‘덕질’할 수 있는 대상을 선호한다. 미술을 좋아하는 MZ세대에게 미술품 조각 투자는 최고의 선택인 셈. 또 미술에 별 관심이 없어도 미술품 조각 투자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저금리 시대에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투자 상품 중 하나이기 때문. 앞서 언급한 ‘묘법 No.180411’은 구입한 지 56일 만에 5억 원에 국내 오프라인 경매에서 낙찰되며 4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2018년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아트투게더는 2020년 말 기준 렌트·매각 수익금 분배 등으로 투자자들이 거둔 평균 수익률은 약 22%라고 밝혔다.
미술품 조각 투자가 인기를 끌며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조각 투자 상품을 내놓은 플랫폼은 금융 당국에 등록된 투자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는 피해에 대한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 소유권이 분산되기에 작품 보유와 판매에 대한 의사 결정이 자유롭지 않은 것도 문제. 또 현재는 미술 시장의 활황으로 매매율과 수익률이 높지만, 미술 시장은 경제 상황에 따라 급변하기 마련이다. 순식간에 가격이 꺼지는 것은 물론, 안 그래도 낮은 작품의 환금성이 더 떨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미술을 미술로 바라보지 않고,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취급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술품 조각 투자 열풍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하다. 미술에 관심 없던 MZ세대까지 미술을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 미술을 향유하고 소비하는 사람 없이 미술 시장은 작동할 수 없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 기존과 다른 방식일지라도 미술을 보기 시작한 MZ세대의 관심은 꾸준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술품 투자 플랫폼 테사 애플리케이션 구동 이미지.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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