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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7 FEATURE

에디션, 아는 만큼 보인다

  • 2017-08-13

지금 당신이 파리의 로댕 뮤지엄을 거닐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정원에서 청동으로 만든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감상한 다음, 전시장에서 ‘지옥의 문’ 일부인 ‘생각하는 사람’과 맞닥뜨린다. 과연 두 작품 중 무엇이 진짜일까?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 뮤지엄에 있는 청동 에디션이 가장 유명하다.

정답은? 둘 다 진품이다. 로댕의 이 위대한 명작을 모두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미술의 ‘에디션’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술 작품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같은 작품이 여러 점이라면 모작이나 가품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물론 회화는 단 한 점이 맞다. 같은 작품을 똑같이 그리더라도 완전히 동일한 작품일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전통매체 중에서도 조각과 판화는 틀만 있으면 같은 형태로 여러 점을 찍어낼 수 있다. 그래서 데이미언 허스트의 똑같은 판화가 무려 3000개나 되고,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세계 도처에 존재할 수 있는 것.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엔 ‘지옥의 문’ 일부로 제작한 70cm 높이의 조각이었다. 하지만 이후 크기를 키워 다시 찍은 작품이 오히려 더 유명해졌고, 단일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이 작품은 로댕이 살아 있을 때와 죽고 나서 찍어낸 것, 석고와 청동으로 찍어낸 것, 크기를 달리한 것, 제작 연도가 다른 것 등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사후 제작 작품에 관해서는 진품에 대한 의견이 나뉘는 터라 사실상 ‘생각하는 사람’의 오리지널 수를 헤아리기는 어렵다.
본래 출판에서 초판, 재판 등의 판을 의미하는 에디션은 미술에서는 작품 수를 한정 짓거나 반대로 여러 점 제작해 전시하고 유통하는 걸 뜻한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은 에디션 개념을 이렇게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같은 판형으로 만든 동일한 인쇄물이나 작품을 일컫지만 조각, 사진 및 비디오 같은 다른 매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각과 판화 장르에서 통용되던 에디션 개념은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시각예술분야로 확장됐다. 사진, 영상, 멀티미디어 등에 에디션을 붙여 여러 점을 유통할 수 있다. 같은 작품을 동시에 다른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건 에디션이 모두 진품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시각예술가 정연두의 85분짜리 비디오 ‘Documentary Nostalgia’(2007년)의 에디션은 총 6개로, MoMA와 국립현대미술관, 아티스트 펜션 트러스트 등이 각 에디션을 한 점씩 소장하고 있다. 이렇게 작품의 에디션을 한 점만 구매할 수도 있지만, 모든 에디션을 한꺼번에 사는 걸 선호하는 컬렉터나 미술관도 있다. 특히 커미션 작업은 작품 제작 목적이 확실하므로 의뢰자가 모든 에디션을 구매하는 것이 예의다. 같은 작품이 많을수록 시장가격이 낮아지고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물론 있지만, 그렇다고 꼭 부정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작품의 전시 영역을 확장하고, 비교적 부담이 적은 가격대로 일반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고한 천경자 화백의 회화는 작년 K옥션 봄 경매에서 17억 원에 낙찰되는 등 한 점당 수억 원대를 호가한다. 하지만 판화는 에디션 수가 많아 작품 가격이 몇백만 원대로 형성돼 그만큼 향유할 수 있는 수요층이 넓다.




1 지난 2월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열린〈Isaac Julien: Playtime〉전 전경.  2 아이작 줄리언의 ‘Eclipse(Playtime)’.

그렇다면 미술 작품의 에디션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 모든 권한은 창작자가 가진다. 아티스트가 직접 작품 수를 정하고, 번호를 매기고, 서명한다. 작업 방식이 허용하는 선에서 에디션을 지정할 수 있다. 한 작품당 에디션 5개가 있다고 하면 1/5, 2/5 순으로 넘버링하며, 5개 중 첫째, 둘째 작품이라는 뜻이지만 순서는 크게 상관없다. 번호가 인쇄 순서와 전혀 다르거나 반대일 때도 있고, 순서 없이 ‘edition of 5’로만 표기할 때도 있다. 여기에 ‘아티스트가 공인한(Artist Proof)’의 줄임말인 AP, 책 인쇄물에서는 ‘발행인이 공인한(Publisher Proof)’을 줄인 PP가 붙기도 한다. ‘AP 1/5’이라고만 쓰기도 하고, AP를 다른 에디션과 별도로 제작했을 때는 영국 작가 아이작 줄리언이 런던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 전시에서 사진 ‘Eclipse(Playtime)’(2013년)을 선보이면서 붙인 캡션 ‘Edition of 6 Plus 1 AP’처럼 쓰면 된다.
에디션과 유사한 개념으로 알아두면 좋을 것이 레플리카(replica)다. 레플리카는 쉽게 말해 복제품이지만, 흔히 가짜라고 말하는 모조품과는 다르다. 원작자가 동일한 재료, 방식,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 레플리카로 마르셀 뒤샹의 ‘샘’(1917년)이 있다. 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작품인 ‘샘’을 찍은 이미지를 보고 그대로 복제해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 ‘샘’에는 ‘1917, Replica 1964’라는 캡션이 붙는 것. 물론 원작과 레플리카 모두 분실돼 현재는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나움 가보의 플라스틱 조각은 금이 가거나 손상된 작품이 많지만,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조각의 모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어 오리지널의 레플리카 버전을 제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마르셀 뒤샹은 발칙하게 에디션과 레플리카, 오리지널의 개념을 뒤틀었다. 그의 ‘Box in a Valise(From or by Marcel Duchamp or Rrose Se´lavy)’(1935~1940년)는 ‘샘’을 포함한 작품 60여 점을 축소한 레플리카, 이미지, 단 한 점의 오리지널 드로잉을 가죽 슈트케이스에 넣은 작품이다. 그는 디자인과 내용물에 베리에이션을 준 브라운 가죽 가방을 만들어 20개의 딜럭스 에디션을 냈다. 이 딜럭스 에디션 외에도 여러 점을 제작해 무려 300개의 에디션이 존재하는 작품이다. 가방의 유무와 컬러, 내용물 수에 따라 7등급으로 분류되며 등급마다 작품 가격이 크게 차이 난다는 점도 특징이다. 한국에선 이 작품과 관련한 해프닝이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05년 이 작품을 구매하며 약 6억원을 지불했는데, 딜럭스 에디션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당시 큰 논란이 일었던 것.
그런가 하면 프란시스코 고야의 애쿼틴트작품은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작하는 에디션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작가가 사망한 이후, 그가 남긴 판형을 통해 추가 에디션을 제작한 적이 있다. 판화의 특성상 인쇄면이 마모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복원 과정을 거쳐도 작품의 질이 점점 떨어졌고, 이 작품은 ‘사후 에디션’은 물론 추후 제작자가 에디션의 수를 제한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1880~1881년 제작한 에드가르 드가의 조각 ‘Little Dancer Aged Fourteen’도 1922년에 에디션으로 다시 제작됐다. 이 작품은 작가가 작고한 1917년 이후에 그의 작품 판권을 관리하는 이스테이트 측에서 다시 찍은 것으로, 작품 제작 연도 뒤에 ‘cast c.1922’가 붙는다. 이렇게 작가가 죽은 다음, 유족이나 갤러리 등이 판권을 관리해 작품을 찍기도 한다. 단, 이때 오리지널 여부는 의견이 갈린다.
사후 작품에 대해서는 2013년에 이런 일도 있었다. 뉴욕 폴 카스민 갤러리는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개인전에 작가 사후에 제작한 작품을 몇 점 출품했다. 유족의 동의하에 오리지널 캐스트로 주조한 청동 작품인데, 당시 원작이라는 의견과 레플리카라는 의견이 맞섰다. 작가가 죽은 다음 제작한 작품을 제대로 관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사후 에디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후 작품이라는 점을 정확히 표기하지 않은 채 작가가 살아 있을 때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과 함께 유통되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커진다.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규정이나 기준이 확실하지 않아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른 실정이다. 에디션과 레플리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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