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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7 SPECIAL

아티스트 피

  • 2017-12-07

예술 노동의 가치는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티스트 피 제도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

국립현대미술관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티스트를 지원하고 있다.

“제 꿈은 전업 작가예요”라는 어느 작가에 말에, “지금 전업 작가 아니에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미술계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작가다. “‘전업’ 작가요. 지금처럼 아르바이트하면서 작업하는 거 말고요. 작품 만들고 전시하면서 번 돈으로 또 작업하고 먹고사는 ‘전업’요”라는 대답이 따라왔다.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명성 있는 전시에 대부분 이름을 올렸지만, 작품 제작이나 전시 참여 같은 예술 활동에 대한 금전적 대가가 없으니 그의 말대로라면 ‘전업 작가’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전시 주최 측에서 무보수를 강요한 것은 아니다. 상황이 그렇다. 그동안 한국은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 대한 별도 보수 기준이 없었다. 일부 기관이 제작비를 제공하긴 했지만, 정부와 국공립 기관이 법적으로 정한 사례비 제도는 전무했다. 작가들은 어렵게 만든 작품을 전시하면서도 거의 무료로 봉사한 셈. 이렇게 예술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창작 환경에서 과연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 시각예술가의 창작 활동에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는 ‘아티스트 피(artist fee)’ 제도가 마련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국공립 미술관 여섯 곳을 대상으로 ‘미술 작가 보수 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한다고 밝힌 것. 이 시범 운영 결과에 따라 전국 국공립 미술관을 대상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내년 예산을 확보한다는 전제가 확실시되어야 본격적인 운영이 가능한 사업이므로, 시범 운영 중인 현재로서는 변동의 여지가 많다. 문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매체가 보도한대로 일률적 금액을 월급 형식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보수를 결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작가마다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실질적 작가 지원은 지난 9월부터 시행 중으로, 준비 기간과 결과 보고를 합한 전체 시범 운영 기간은 지난 3월부터 내년 2월까지로 계획돼 있다.
아티스트 피 제도 시범 운영에 대한 미술계의 입장은 어떨까? 그간 미술계의 숙원 사업이었던 아티스트 피 제도를 모두 반길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오히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먼저 사립과 대학 미술관을 위한 별도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공립과 사립 기관의 전시 여건이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헤럴드경제>에 “앞으로 사립, 대학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전시 진행에 따른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일부 작가에게 비난과 항의를 듣거나 심지어 전시 참여 자체를 거부당할 수도 있다”라고 기고했다.




1 국공립 미술관의 아티스트 국제 교환 프로그램으로 레지던시에 입주한 티몬 판데르헤이던의 작품.
2 국공립 미술관의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열린 전시 <그라운드후드>의 포스터.

아티스트 피 제도의 실제 수혜자인 예술가의 반응도 엇갈린다. 젊은 작가들은 노동의 대가를 법적으로 인정받아 정당하게 누리고 싶다며 찬성하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전시를 하는 건 어느 정도 작가로서 역량이 사회적으로 셋업된 사람들이다. 결국 이미 성과를 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지급해 부익부 빈익빈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싶다”라고 정준모 미술평론가가 대변하듯, 지금과 마찬가지로 혜택은 소수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염려의 시선도 있다.
미술계에는 오랜 관행이 있고, 각각의 입장과 여러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예술가의 노동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제고가 먼저라는 변도 설득력이 있다. 아티스트 피를 받고 제작한 작품에 대한 미술관의 소유권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예산 지원의 형평성도 고민해볼 문제다. 국공립 미술관 외의 장소에서 전시하는 작가, 아티스트 피를 지급할 수 없는 여러 사립과 비영리 기관, 독립적으로 일하는 큐레이터와 스태프 등 어느 쪽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법무법인중정 변호사로 미술 작가 보수 제도 연구자로 참여한 캐슬린 E. 김은 온라인 예술 플랫폼 ‘Smart K’에서 마련한 대담 자리에서,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무형 가치를 따지기 어렵고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항목이 없다는 게 문제가 될 때가 많다. 기획자가 창작 예술인에게 아티스트 피를 지급하고 싶어도 적절한 예산 항목이 없어서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이 제도도 해당 예산 항목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대안 공간, 지자체, 국공립 미술관 각각의 공간에 맞게 지급 기준을 정하고 개별 계약을 맺으면 될 것 같다. 지금의 시범 운영은 한시적 제도일 뿐이고, 법제화된다 해도 법령에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령 기준을 제시한다 해도 그 기준 그대로 모든 미술관과 전시 공간에 일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문체부는 앞으로 미술 작가 보수 제도의 사례를 늘리고, 보수 기준도 세심하게 다듬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제화 이후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차분히 준비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이 법안이 당장 미술계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지는 못하거나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까지 기대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애초에 예술을 법의 틀 안에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오히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언급처럼 해당 예산 항목을 만들자는 출발점이라면, 일단은 반가운 정책이 아닐까? 추후 실망하든 만족하든 일단 시범 운영 결과를 본 후 논해도 늦지 않다.




서울시립미술관 2017 신진 미술인 전시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김주원, 안초롱 작가의 작품.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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