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이 선택한 이정인 소믈리에와의 취향 있는 대화
와인보다 사람을 먼저 살피고, 한 잔의 이름보다 그날의 기억이 오래 남기를 바라는 이정인 소믈리에. 2026 미쉐린 소믈리에 어워드를 수상한 그에게 와인을 대하는 자신만의 철학과 취향, 좋은 한 잔이 지닌 의미를 물었다.

Q. 2026 미쉐린 소믈리에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자신의 어떤 점이 좋은 평가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나요?
특별히 남들과 다른 서비스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와인보다 손님을 먼저 보자’는 원칙은 꾸준히 지켜왔습니다. 좋은 와인을 많이 알고 값비싼 와인을 추천하는 것보다 손님이 어떤 기분으로 이 자리에 왔는지, 어떤 음식을 즐기고 있는지, 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싶어 하는지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페어링 역시 정해진 공식보다 손님의 경험을 우선합니다. 한 잔의 와인을 통해 “이 음식이 이렇게도 느껴질 수 있구나” 하는 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죠. 그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 좋은 평가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Q. 레스토랑의 미쉐린 1스타와 개인에게 주어진 소믈리에 어워드를 동시에 맞이했습니다. 두 수상은 각각 어떤 의미인가요?
두 수상의 의미는 조금 달랐습니다. 미쉐린 1스타가 팀 모두의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라면, 소믈리에 어워드는 제가 걸어온 시간을 돌아보게 한 상이었죠. 레스토랑의 별에는 팀의 일원으로서 뿌듯함을 느꼈고, 소믈리에 어워드에는 기쁨과 함께 더 큰 책임감이 따랐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소믈리에는 좋은 팀 없이 혼자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미쉐린 1스타는 ‘함께 만든 결과’이고, 소믈리에 어워드는 ‘앞으로 더 잘해야 할 이유’입니다.
Q. 한식은 발효와 감칠맛, 다양한 양념이 어우러지는 음식입니다. 한식과 와인을 페어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한식의 매력은 한 접시 안에 다양한 맛이 공존한다는 점입니다. 발효에서 오는 감칠맛과 장의 짠맛, 단맛, 산미 등 와인과 연결할 수 있는 요소도 풍부하죠. 저는 음식에 어울리는 품종을 정해두기보다 어떤 맛을 강조할지 먼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간장게장의 감칠맛을 길게 이어갈 수도 있고, 와인의 산도와 미네랄리티를 활용해 진한 맛의 균형을 잡을 수도 있죠.

Q. 소믈리에는 와인만큼 사람을 잘 알아야 하는 직업이라고도 하죠. 짧은 대화 속에서 상대의 취향을 읽어내는 비결이 있나요?
처음부터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지 묻기보다 손님이 사용하는 표현에 귀 기울입니다. “가벼운 게 좋아요”, “떫은 건 싫어요” 같은 짧은 말에도 취향을 짐작할 단서가 담겨 있어요. 제 역할은 손님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취향까지 자연스럽게 찾아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모금을 마셨을 때의 표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잔이 비워지는 속도를 유심히 살핍니다. 어쩌면 그 속도가 가장 솔직한 답일 수도 있거든요.

Q. 수많은 와인을 경험해 온 만큼 취향도 끊임없이 변화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정인 소믈리에가 좋아하는 와인은 어떤 와인인가요?
‘첫 잔보다 두 번째 잔이 더 궁금해지는 와인’입니다. 요즘은 첫인상이 화려한 와인보다 마실수록 새로운 매력이 드러나는 와인에 마음이 갑니다. 처음에는 산도가 느껴지다가 온도가 오르면서 미처 몰랐던 질감이 드러나고, 시간이 지나며 예상치 못한 향이 피어나는 와인들이 있죠. 밸런스가 완벽한 와인보다 마실수록 궁금해지는 와인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을 한 번의 대화로 다 알 수 없듯, 와인 역시 한 모금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언젠가 꼭 마셔보고 싶은 ‘꿈의 한 병’이 있다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생산자, 도멘 뒤작(Domaine Dujac)의 ‘클로 드 라 로슈 그랑 크뤼 1996(Clos de la Roche Grand Cru 1996)’입니다. 뒤작의 와인을 좋아하지만 이 빈티지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어요. 오랜 시간을 거친 부르고뉴 와인의 과실 향과 질감이 어떻게 변화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특히 좋아하는 생산자의 와인이 3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네요.
Q. 와인 페어링을 어렵게 느끼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 있나요? 식상한 말일 수 있지만 와인 페어링에 절대적인 공식은 없습니다. 하지만 간단합니다. 우선 음식과 와인의 맛을 조화롭게 연결할지, 서로 대비되는 특징을 활용할지 두 가지만 생각해 보세요. 담백한 음식에 섬세한 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전자라면, 기름진 음식에 산도 높은 와인을 매치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어렵다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시도하면 됩니다. 대신 음식과 와인을 번갈아 맛보며 음식의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기억하세요. 그 변화가 기분 좋게 느껴지는 방법이 자신만의 기준이 됩니다. 무엇보다 취향이 먼저입니다. 맛있으면 일단 성공이고, 왜 맛있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부터 진짜 페어링이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