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신경균이 말하는 '과정의 미학'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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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9

도예가 신경균이 말하는 '과정의 미학'

그가 완성한 작품의 심원한 빛깔과 절묘한 형태는 모두 실패한 과정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다.

작가님은 2년 전 <노블레스>와 처음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2년은 짧고도 긴 시간인데,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주변 환경이 좀 변했죠. 머리카락도 좀 더 길었고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어요. 작가라면 바뀌어서도 안 되고요. 언제나처럼 새벽 2시쯤 일어나 종일 작업하고, 밤 10시에 잠드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한 시간으로 치면 남보다 두 배 이상 산 셈이죠. 이렇게 산 지 40년 정도 됐습니다.

현재 작업을 잠시 쉬고 계시다고요. 덕분에 이렇게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거겠죠.
추울 때는 못 해요. 유약도 반죽도 얼거든요. 물론 인공적으로 가열해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그렇게는 안 합니다. 자연도 쉬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지금 몸이 쉰다고 작업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소설에 기승전결이 있듯, 장작 가마에 불을 때고 나무 물레를 차야 할 때가 있다면 또 지금처럼 가만히 바라보는 시기도 있는 겁니다.

작업에만 몰두하는 삶이 고독하리라 생각됩니다. 힘들지는 않으세요?
힘든 거랑은 상관없어요. (탁자를 가리키며) 천년 괴목으로 만든 물건입니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었기에 이렇게 멋진 결을 만들 수 있었겠어요? 인생도 그래요. 탄탄대로로만 가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오기 어렵죠. 작가에게 최우선순위는 언제나 ‘작업’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난이 있다면 달게 받아들여야죠.

이번 전시 얘기를 해볼까요? 아직 출품작이 모두 확정되진 않았지만, ‘Moonlight(달빛)’라는 전시명은 정해진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달항아리를 주로 보여주실 건가요?
달항아리와 함께 다구와 생활 도자를 선보일 생각입니다. 정확히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는 가마에 불을 피워봐야 알겠죠. 정성스레 도자를 빚어 가마에 넣으면 인간의 역할은 거기서 끝이에요. 나머지는 불이 결정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깨진 달항아리 파편을 전시하는 걸 염두에 두신다고 들었습니다.
‘과정’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달항아리를 만들다 보면 중간에 깨지는 일이 다반사예요. 인간의 실수 혹은 자연의 힘이 작용하죠. 사람들은 대체로 완성된 일부 결과물만 보는데, 사실 그것보다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시간이 있었는지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해요. 깨진 도자를 보면 보통 실패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하지만 과정의 측면에서 보면 성공이나 실패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도자를 만드는 행위가 있을 뿐이죠. 저는 수행하는 마음으로 도자를 빚습니다. 수행에는 궁극적으로 목적성이 없어야 해요. 욕심이 있어서도 안 되고요. 그래서 저는 잘못돼도 개의치 않아요.

한편으로는 작가님이 달항아리를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작업 초기에는 식기 등 생활 도자를 주로 만드셨다고 알려졌거든요.
조선의 찻사발 ‘이도다완(井戶茶碗)’을 재현한 아버지(故 신정희 사기장)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흙을 만졌고, 열다섯 살부터 본격적으로 물레를 찼어요. 그러다 ‘신경균만의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독립했습니다. 식기를 만든 건 아버지가 손대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이고요. 달항아리의 경우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제작한 건 제대로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설 만큼 충분히 공부하고 경험치를 쌓은 후입니다. 과거 부산의 한 전시장에서 꼬박 한 달간 달항아리를 살피고 만지던 기억이 나네요. 또 <세종실록지리지>에 적힌 전국 가마터 324곳 중 300여 곳을 답사하며 제작 기법을 연구했습니다. 기록에 맞는 흙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2010년에야 강원도 양구에서 전통에 부합하는 흙을 찾았어요.





무제, White Porcelain, 42×44.5cm, 2014.
무제, White Porcelain, 48×48cm, 2015. 사진 김광섭
무제, White Porcelain, 50×48cm, 2009. 사진 박우진
무제, White Porcelain with Underglaze Iron, 44×46cm, 2019. 사진 박우진






위쪽 신경균이 만든 ‘분청 귀얄 사발’ (2010).
아래쪽 신경균 1964년 경남 진주에서 도예가 故 신정희 선생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전통 도자 제작 기법을 계승했다. 부산시립공예고등학교 도자기학과를 졸업하고 경성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한 그는 2005년 APEC 정상회의 대표 작가로 선정되고, 2014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초대전을 치르는 등 세계에 한국의 미를 알리고 있다. 2018년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개인전 [서울에 뜬 달]을 열었고, 2019년 이탈리아의 팔라초 리타와 파리의 그랜드 파레즈에서 열린 그룹전 [Korean Inspiration-Unexpected Touches]에 참여했다.

예전 전시에선 관람객에게 작품을 직접 만질 수 있게 하셨어요. [Moonlight]전에서도 그렇게 하실 생각인가요?
우리 그릇은 촉감으로 느껴봐야 해요. 관상용이 아닌, 생활 속에서 쓰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니까요. 실제로 만지고 써본 사람이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달항아리의 미감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달항아리의 모습을 그리는 회화 작가도 제법 있고요.
달가운 얘기는 아니지만, 달항아리의 미술적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 때 외국인들이에요. 민예 운동을 일으킨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를 필두로 일본 사람들이 달항아리를 사 모으기 시작했죠. 고려청자나 이도다완이 너무 비싸니 그 대안으로요.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가 1935년 달항아리를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항아리의 매력을 잘 몰랐어요. 너무 흔했거든요. 과거에 도자를 구울 때도 불막이용으로 쓰던 천덕꾸러기 머슴 같은 존재였죠. 그러다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겪고, 우리 미술을 다시 정립하기 시작한 1970~1980년대 들어 진열장에 갇힌 달항아리를 보고 뒤늦게 조명한 측면이 있어요.

사람들이 달항아리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중국과 일본을 뒤져봐도 달항아리 같은 도자가 없어요. 도자의 크기가 크면 그림으로 장식하기 마련인데, 되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겁니다. 이렇게 여백을 남긴 것 자체가 대단한 거죠.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어려운 일이거든요.

보통 달항아리 하면 순백색을 떠올립니다. 한데 작가님의 달항아리는 그 색이 훨씬 풍요롭습니다.
자연이 완성한 아름다움입니다. 저는 흙도 재도 모두 자연에서 직접 구한 것을 고집합니다. 재료를 구했다고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숙성 과정이 필요해요. 도끼질로 패고 수년간 말려 사용하는 영사(가마에 불 땔 때 사용하는 땔감을 이르는 말)도 마찬가지고요. 재료상에서 쉽게 구한 것으로는 지금의 맛을 낼 수 없어요. 여기에 장작 가마에서 1350℃ 고온의 자유분방한 불이 더해져 만들어내는 자연의 빛깔, 따뜻한 질감이 있습니다.

자연 가까이에서 전통 기법을 고수하며 작업하는 작가님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작가님이 생각하는 ‘전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과거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만 머물러서는 발전이 없겠죠. 단순히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는다고 전통이 아닙니다.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해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 작품은 옛것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닌, 이 시대에 맞는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님에게 도예는 무엇인가요?
삶이죠. 아버지는 제게 도예는 종교이자 신념이라고 하셨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전시 일정 2021년 3월 5일~4월 16일, 일·월요일·공휴일 휴관
문의 02-540-5588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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