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향기가 느껴질때 만나는 문화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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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4

여름향기가 느껴질때 만나는 문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계절 여름, 그 오후에 만나는 빛나는 문화 예술.

Book | 센스와 두 발로 기록한 전국 방방곡곡의 K-축제
김혼비·박태하의 신간 <전국축제자랑>은 지역 축제라는 카오스 안으로 걸어 들어가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김혼비·박태하의 에세이 <전국축제자랑>의 표지.

서울의 한 지하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다 내 고향 충주의 홍보물을 보는 느낌은 묘하다. ‘충주 하면 사과, 사과 하면 충주’라는 표어와 함께 나를 압도하는 큼직한 사과 이미지. 최근 충주의 열정은 유튜브로 옮겨가 ‘사과하십쇼!’라는 홍보송으로 엄청난 조회수까지 자랑하고 있다.
이런 경험에서 느낀 감정을 대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자부심은 아닌 듯하고, 내 고장의 유난스러움이 주는 민망함이 아닐까? 여기에 종잡을 수 없는 발상과 꾸준한 추진력에 대한 감탄을 더한 감정 정도일 것 같다. 이 책이 포착한 정서가 바로 그런 것이다. 저자는 한때 지자체에서 너도 나도 추진한 지역 축제의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 ‘K스러움’이라 명명한 문화의 한 단면을 포착해낸다.
책에 소개한 축제의 민낯은 생각보다 엉뚱하고 기상천외하다. 너무 우스워 사진을 찍게 되는 홍보 문구와 비가 와서 예고도 없이 바뀐 허술한 프로그램이 이 책에 있다. 싫으면서도 이해가 되고(나더러 홍보하라고 해도 별수 없을 것 같기에), 예산 낭비라 투덜대다가도 어쩌다 한구석에서 파전에 막걸리 한잔하게 되는 그곳. 그 축제라는 카오스의 현장이 이 책에 있다.
일부러 찾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직업상 이런 축제에 가보았다. 첫 장 ‘의좋은 형제 축제’ 편에 묘사한 것처럼 K-축제의 한구석에 종종 인디 밴드의 무대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록 페스티벌처럼 근사한 환경이 공연을 받쳐줄 리 없었다. 시장통 같은 어수선함 속에서 허둥지둥 가설무대에 올라가면 너무 크게 이름을 넣은 현수막이 우리를 맞곤 했다. 어느 지역에서는 여러 주체가 서로 축제를 준비한 탓에 내가 속한 밴드가 연주할 때 농악대가 꽹과리를 치며 지나가는 일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런 어수선함에 치를 떨 것이다. 그리고 우리 문화 전반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 뿌리 깊은 어수선함을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 나 같은 사람은 “이것이 우리가 발 담근 현실이구나. 그 적나라한 현장이구나” 하며 흥미롭게 관찰할 것이다. 김혼비·박태하 작가는 나와 같은 후자구나 싶어 읽는 내내 반가웠다. 물론 기존 번역서 중에도 이런 책이 있다. 옥스퍼드 출신 저널리스트가 세 번 비튼 유머로 기록한 고생담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우리 자신이고,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문제는 조금 달라진다.
의외로 진지한 것을 좋아하고 스스로 꽤 기이한 자질을 갖췄다 싶은데도, 신랄한 자학 유머에는 심드렁한 K-풍토에서 이런 책을 센스 있게 묶어낸 선구 정신을 응원하고 싶다. 사실 이런 재미난 취재기의 핵심은 ‘거길 왜 들어가?’란 마음이 들 정도로, 저자가 점점 깊이 발을 담그는 데에 있다. 저자는 지역 주민도 매번 갈 리 없는 축제의 프로그램을 이른 시간부터, 먹거리 장터와 한편의 콘퍼런스까지 두루 체험하며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성실한 취재를 해냈다.
그렇게 포착한 풍경은 하나같이 허술하면서도 집요하고, 말도 안 되면서 기발하다. 멀리 영산포에 배가 들어오는 것만 보여준 뒤 따로 준비해 짊어지고 온 홍어와 막걸리와 파전을 먹는 옆에서 열린 프러포즈 이벤트, 강릉단오제에서 온 해외 합창단의 마오리족 노래…. 어디서 한 번쯤 봤을 법한 풍경 아닌가? 글래스턴베리 록 페스티벌 참가기와 지역신문을 합친 문체로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이 책이 나는 꽤나 신선했다. 마지막으로 K스러운 소감을 덧붙이자면, 이제 우리에게도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바다.

글. 김목인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영미 문학 번역가이기도 하다.






Movie | <미나리>, 그 집의 기억
새로운 출발을 위해 도시를 떠나 황량한 벌판으로 이사 온 한 가족. 그들을 반겨주는 건 벌판에 버려진 듯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낡은 트레일러와 우거진 잡초, 드문드문 허름한 농가들뿐이다.



‘윤여정’ 신드롬을 만들어낸 영화 <미나리>.

‘이건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트레일러에 힘겹게 오르던 모니카(한예리)가 제이컵(스티븐 연)에게 묻는다. “여기는 대체 어디야?” 제이컵이 답한다. “어, 우리 집이지.” 영화 초반 이 대화에 울컥해서 엔딩까지 그 기분이 이어졌다.
우리 삶에서 집은 대체 무엇이고, 산다는 건 또 뭐길래. 아마도 제이컵이 생각한 집의 근본은 땅이 아니었을까 싶다. 힘겨운 대도시 생활을 십 수년간 하고도 내 땅 한 평 갖기 어려웠을 못사는 나라의 이민자로서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반복적 삶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제이컵은 표류하며 떠도는 생활을 멈추고 정착의 삶을 꿈꾼 것이다. 내 땅에 내 손으로 뿌리내리는 삶만이 불안정한 이민자의 삶의 궤도를 이탈케 해줄 것임을, 아이들과 아내를 구원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들의 새 보금자리가 황무지 위 트레일러라 할지라도.
황량한 땅 위에서 애써 미래의 희망을 품는 제이컵의 불안한 미소를 보며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그와 함께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땅”이라고, “집은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 내 땅만 있으면 누구든 잘살 수 있다”고 J도 그 시절 제이컵과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J의 집에 처음 간 날은 대학 신입생 시절 봄날이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일찍 집으로 향한 나는 지하철역에서 같은 과 신입생 J를 만났고, 같은 방향 열차를 타고 가다 보니 서먹함을 피하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J의 집에 가기로 한 것이다.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 내려서 시(市) 경계를 넘어 과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시 경계를 넘으니 정리되지 않은 택지와 밭, 허름한 건물이 드문드문 있는 다소 황량한 풍경이 이어졌다. 그런 풍경의 중간 어디쯤, 사람 사는 주택이라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 낯선 지역의 정류장에 우리는 내렸다. 비닐하우스와 가설 주택이 밀집한 큰길가, 그 주변엔 밭이 있고 길 건너편 하천 너머엔 대단지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었다. J가 화원(花園) 간판이 걸린 비닐하우스로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다. 각종 화분과 식물 분재가 가득 쌓인 화원의 좁은 실내를 통과하는 J의 뒤통수를 보며 내가 물었다. “근데 여기는 대체 어디야?” J는 걸으며 앞을 보고 답했다. “어, 내가 사는 집이지.”
화원 내부를 지나 비닐하우스 끝에 달린 문을 열고 나가니 아예 비닐하우스 마을이 나타났다. 비닐하우스와 비닐하우스 그리고 그 너머에 또 비닐하우스. 하우스의 틈새는 작은 오솔길이었고, 가스통과 각종 낡은 세간, 버려진 물품, 빨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하우스 중 하나가 J의 집이었다. 변변한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비닐하우스 내부,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바깥 볕이 순간적으로 실내의 뽀얀 흙먼지 입자를 비추자 바닥에서 위로 뿜어졌다가 분사한 듯 뿌려지는 것이 보였다. 온실재배를 위해 설치한 비닐하우스 흙바닥에 두꺼운 스티로폼을 겹으로 얼기설기 깔고 그 스티로폼을 청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실내 바닥을 만들었다. J는 비가 많이 오면 흙에서 물이 올라와 바닥이 물 위에 뜨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나는 잠시 J가 난파선 표류자처럼 뗏목 위에서 살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화장실은 건설 현장용 가설 화장실을 공동으로 쓰고, 목욕물과 식수를 위해 밤마다 비닐하우스촌 외곽을 돌아나가는 공용 수도 밸브를 열어 각 비닐하우스의 큰 물통에 미리 정한 순번에 따라 물을 채워놓아야 하는 생활. 난 그날 밤새 술 마시고 수다를 떨며 그 집을 체험했다. 한참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형편이 어려웠던 J는 논밭 지역에 아파트 개발계획 소문이 돌자 택지 보상을 받으려는 땅 주인 친척을 대신해 비닐하우스를 점유한 채 돈을 받고 살아주는 대리인 역할을 한 것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그 집에 살며 모은 돈은 J에게 새 삶을 위한 희망이었던 셈이다. J는 늘 말했다. “내 땅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내 땅만 있으면 지금처럼 비닐하우스 짓고 살아도 좋겠다”고.
제이컵 가족이 트레일러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애매한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내가 살 집에 관해 집단 히스테리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가 보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민자 제이컵도, 1990년대 비닐하우스의 J도, 지금의 나도, 우리 모두의 뿌리 없는 집에 대한 고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이 단순히 내가 사는 곳을 묻는 게 아니라, 내 계급을 묻는 것이라는 것쯤 아이들도 다 아는 세상이다. 누구는 집이 없어 불안하고 누구는 집이 있어 불안하고, 집값이 오르면 올라서 불안하고 내리면 내려서 불안하다. 돈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아파트 유목민의 세상이다. 얼마 전 거의 20년 만의 통화에서 J에게 “요즘 어디 살아?”라고 물었다. “OO동 OO아파트 살아.” 다주택자 J는 지금 재건축한 강남 OO아파트 22층에 산다.

글. 최준석 건축사사무소 나우랩(NAAULAB)을 운영한다. 에세이 <집의 귓속말>의 저자이기도 하다.






Culture | 속초 갯배를 아시나요?
승객의 힘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이 특별한 배는 우리가 잊고 살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다.



해마다 100만 명이 이용하는 속초 아바이마을의 갯배.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에 살던 어부들은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여 삶의 터전을 형성했으니, 바로 속초 아바이마을이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 믿은 실향민에게 아바이마을은 새로운 삶의 공간이었다. 아바이마을이 위치한 속초 청호동은 바다에 인접한 모래벌판 위에 세웠다. 한창 번성했을 때는 7000여 명의 주민이 그곳에서 생활했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기에 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은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그래서 아바이마을 건너편에는 수협에서 운영하는 공판장도 있었다.
어선이야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아바이마을에서 공판장이 있는 속초시로 걸어 들어가는 데에는 불편함이 컸다. 거대한 청초호가 둥그렇게 자리 잡은 탓에 바다 건너 코앞에 있는 시장에 장을 보러 가거나 시내 구경 한번 하려면 10km 정도를 돌아서 가야 한 것이다. 버스조차 제대로 다니지 않던 시절 아바이마을 사람들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직접 시내를 왕복할 수 있는 작은 배를 만들었다. 그것이 갯배의 시작이다. 여기서 ‘갯’이란 바닷물이 드나드는 모래톱이나 주변의 땅을 가리킨다. 갯배란 바닷물이 드나드는 어귀 양쪽을 왕래하는 배를 의미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일제강점기부터 사람이나 마차를 실은 갯배가 왕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속초 갯배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 한국전쟁 시기다. 1952년 4월 당시 속초 주둔 1군단에서 김영학이라는 사람을 고용해 갯배를 운항했다는 기록도 있다. 갯배에는 10명 남짓한 사람이나 손수레, 자전거까지 실었다고 한다. 전쟁 당시 해안가에 군수물자를 이송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바닷길을 달리기 시작한 갯배는 70년 넘게 속초 아바이마을 사람들의 발이 되었다. 갯배를 타려면 1인당 500원 정도의 요금을 내야 한다. 속초 시민은 무료다. 시속 2~3km 정도나 될까. 땅이라면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른 속도다.
갯배의 구조는 단순해서 배 위에 놓인 와이어와 물에 떠 있는 선체가 전부다. 모터는 고사하고 저을 노조차 없다. 배를 움직이려면 양쪽 어귀에 연결한 와이어를 쇠갈고리 같은 도구로 끌어당겨야 한다. 갯배에 탄 이들 중 장정이 많으면 속도도 빠르고 나머지 승객은 구경꾼이 된다. 반대로 여자나 아이들만 탄 경우에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요금을 낸 승객이 배를 끌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편리하고 빠른 것만 찾는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아바이마을을 왕복하는 갯배는 속초의 대표 관광 상품이 되었다. 속초시의 집계에 따르면 해마다 100만 명이 갯배를 이용한다.
사람들은 왜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갯배를 타는 걸까? 그 답은 갯배 자체에 있다. 배에 오르면 익숙한 속도 감각이 순식간에 정지되는 느낌이 든다. 빠른 것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느림에 대한 갈망이 존재한다. 주위 어선에서 풍기는 비릿한 생선 냄새부터 얼굴을 스치는 소금기 머금은 바람 내음까지 코끝을 맴돈다. 오래된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라도 듣게 되면 실향민의 한숨 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또 갯배를 타면 인생의 작은 진리도 깨칠 수 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고자 하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줄을 당겨야 한다. 힘을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욕심만 가지고 될 일도 아니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힘을 모아야 더 빨리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 수고스러움을 고스란히 몸으로 체험하는 것 자체가 갯배의 매력이다.
갯배는 우리가 잊고 살아온 소중한 추억과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오랜 세월 풍파를 이기며 지금까지 갯배가 살아남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을 간직한 갯배가 오래도록 운항하길 바라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글·사진. 김덕영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작가. 최근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선보였다.






Fashion | 파워 우먼의 진주 목걸이
유럽중앙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60대의 파워풀한 어드밴스드 스타일(advanced style)을 보여준다. 능력과 패션 센스를 겸비한 전설적 스타일 아이콘이다.



유럽중앙은행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의 우아한 주얼리 스타일링.

정계와 재계를 넘나들며 ‘최초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싹쓸이하고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프랑스 출신인 그녀는 미국 국제 로펌 베이커매켄지(Baker McKenzie)에서 변호사로 활동했고, 임원을 거쳐 최초의 여성 회장이 됐다. 탄탄한 경력을 토대로 2011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최초의 여성 총재로 선출됐고, 2019년에는 역시 유럽중앙은행(ECB) 최초의 여성 총재가 되었다. 그녀는 이토록 놀라운 커리어의 주인공인 동시에 두 아들의 엄마다.
이 모든 것을 과연 어떻게 해냈을까? 그녀는 “여성이라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절대 남성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라고 조언한다. 숱한 차별과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당당히 능력을 뽐내고 야망을 숨기지 않는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여성이자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이다.
그녀의 능력만큼이나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패션이다. 희끗한 쇼트 헤어를 휘날리며 6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자신에게 꼭 맞는 세련된 패션을 선보이는 그녀는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오히려 매력 포인트로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은발 헤어는 올드하지 않고 패셔너블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으니 멋쟁이 파워 우먼답다.
메이크업 역시 마찬가지. 늘어나는 주름살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는다.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샤넬 슈트나 에르메스 켈리 백 등을 걸치지 않아도 우아해 보인다. 화려한 주얼리도 거리낌 없이 착용하는데 그것이 또 은발 헤어와 조화를 이룬다. 심플하고 작은 액세서리를 감각적으로 여러 개 착용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이름을 들으면 볼드한 주얼리가 떠오를 만큼 정말 잘 어울린다. 볼드한 그린 에메랄드 목걸이 하나를 포인트로 두르기도 하고, 헤어와 컬러를 맞춘 진주 목걸이를 즐겨 착용하는 모습도 멋지다.
다소 포멀한 옷차림에는 화이트 진주 목걸이를, 그리고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색과 어울리는 흑진주 목걸이를 모노톤 의상에 매치하기도 한다. 가끔은 목걸이와 브로치를 함께 착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과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옷차림부터 시작해 전체적으로 같은 톤으로 매치하기 때문이다. 캐주얼한 옷차림에는 볼드한 뱅글을 더해 에지 있는 시크한 스타일을 완성한다. 적절한 강약 조절로 조화를 이루는 탁월한 패션 센스를 보여주는 것이다.
간혹 사치스러워 보인다는 비판을 의식할 법도 한데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럭셔리한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도 특유의 자신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스타일링 전문가는 대부분 화려한 스카프를 두를 경우 주얼리는 자제하라고 조언하지만, 감각지수가 한 단계 높은 그녀는 그 또한 개의치 않는다. 그녀는 언제나 대담하고 볼드한 주얼리를 매치한다. 미국 대통령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감안할 때, 그녀의 주얼리에는 남성의 시계가 상징하는 카리스마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의상은 주로 차분하고 심플한 모노톤 치마 정장을 선택한다. 진주 목걸이 같은 클래식 아이템을 즐겨 착용해도 고루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한 줄의 진주 목걸이가 아니라 보통 세 줄로 레이어링한 볼드한 목걸이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길게 늘어뜨린 스타일도 선보인다. 이런 스타일링은 더욱 스타일리시한 세련미를 돋보이게 한다. 스카프와 함께 매치할 때는 주얼리와 충돌하지 않도록 한 줄의 진주 목걸이로 절제한다.
스카프를 두르지 않을 때 등장하는 그녀의 패션 아이템은 브로치다. 사실 브로치는 올드하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녀가 연출하면 다르다. 주로 귀고리, 목걸이와 함께 매치하는데 컬러의 조화에 신경 쓴다. 평소 주얼리와 비슷한 톤의 블랙이나 화이트, 그레이 같은 심플한 컬러의 슈트를 즐겨 입기에 튀지 않고 시크하다.
여성은 보통 나이 들수록 헤어와 메이크업에 힘을 주고 화려한 원색의 옷차림을 해야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헤어와 메이크업에선 힘을 빼고, 의상은 소재가 고급스러우면서 디자인이나 컬러는 최대한 심플한 것을 고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녀처럼 한두 개의 화려하고 볼드한 주얼리를 포인트로 활용하면 어떨까? 그녀의 모습에 특히 젊은 여성들이 열광하는 것은 능력이 뛰어난 알파 우먼이 패션 센스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스타일 자체를 나만의 ‘유니크 셀링 포인트(unique selling point)’로 부각시키는 그녀가 이 시대의 진정한 파워 우먼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글. 장은정 플랜제이(Plan J)를 운영하는 스타일 컨설턴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황재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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