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시작된 아트 신의 영향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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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9

대구에서 시작된 아트 신의 영향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한 남춘모 작가가 보고 겪은 대구 아트신의 모습.

남춘모 작가.

작업실이 정말 좋습니다. 대구 근교라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고요.
20년 정도 청도군의 폐교를 개조한 작업실로 출퇴근했습니다. 대구에서 왕복 2시간 거리라 작업하는 데 불편함이 있었는데, 3년 전쯤 원하던 자리에 작업실을 꾸리게 됐습니다. 리프트를 설치해 작품 운송 중 파손 위험을 줄였고, 합성수지를 이용하는 부조회화의 특성상 환기가 필수라 야외에서 작업할 공간도 따로 만들었어요. 폐교 작업실도 함께 사용 중인데, 주로 설치 작품을 제작할 때 활용합니다.
독일과 대구를 오가며 작업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해외 스케줄에 맞춰 출국합니다. 독일 쾰른에 작업실도 있고요.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많은 게 바뀌었죠. 상당수 전시가 연기되거나 취소됐어요. 작년 9월엔 역사가 깊은 파리 세송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렸는데 직접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당분간 대구에서 작업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작업 환경이나 여건도 작품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제 작업은 상당 부분 외부에서 이루어지는데, 쾰른은 날씨도 좋지 않고 여건상 야외 작업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유럽에 있을 때는 페인팅이나 스케치 작업을 주로 했죠. 시간을 되돌려보면, 부조회화도 작업 환경이 바뀌면서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초기엔 선에 입체적인 공간을 불어 넣으려 페인팅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이 많았어요. 마침 1990년대에 리안갤러리의 전신인 시공갤러리가 만든 폐교 작업실에서 작업하게 됐고, 널찍한 운동장을 사용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죠.
대구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셨습니다. 기억 속 과거 대구 아트 신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1980년대 대학교 4학년 때 실기실에 외부인이 들어와 작품에 대해 이것저것 묻던 기억이 나네요. 알고 보니 수화랑의 디렉터 황현욱 선생님이었어요. 젊은 세대 그룹전에 초대하기 위해서였죠. 그 전시를 준비하며 선후배 작가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했습니다. 누구든 처음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중요한데, 저에겐 황현욱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 큰 행운이었죠. 황현욱 선생님은 1988년 서울에 인공갤러리를 출범해 파란을 일으키신 분이기도 해요. 1990년대엔 시공갤러리와 갤러리신라 등 대구에 중요한 갤러리들이 출현했습니다. 당시엔 작품을 판매하는 개념이 지금처럼 자리 잡지 않아서 갤러리가 미술관 같은 역할을 했어요. 갤러리 전시에서 초대 작가의 작품 앞에 모여 치열하게 토론하곤 했죠. 서울이나 부산과 달리 대구는 분지라 어디를 가도 결국 시내 중앙부로 모일 수밖에 없거든요. 작가들이 서로 장작더미가 되어 불을 활활 태우던 풍토가 대구 미술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적의 작업 요건을 갖춘 남춘모 작가의 작업실.





부조회화의 기본 재료는 작업실 야외 공간에서 만든다.

과거 대구는 국내 제일의 섬유 도시였습니다. 그런 만큼 부조회화의 기본 재료로 천을 활용하신 것도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니던 대학에서 10분 거리에 섬유 제품이 많은 서문시장이 있었어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창 시절엔 시장에 쌓아놓은 불량 천을 작업에 활용하곤 했죠. 시장을 누비며 매일 쏟아져 나오는 알록달록한 천을 보면서 유행을 짐작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꽃무늬나 땡땡이 패턴 같은 키치적 요소가 있는 천을 초기 몇몇 작품에 활용하기도 했어요.
작가님의 부조회화 근작에서는 곡선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치 밭고랑처럼요.
저는 산골 마을인 영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고랑이 뚜렷한 비탈진 밭을 보며 자랐죠. 밭고랑마다 검은 비닐 덮개가 쌓여 있었는데, 줄무늬의 고랑과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비닐의 형태와 그 느낌이 뇌리에 남았습니다. 작업을 이렇게 한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추억을 꺼내 보게 되네요.
한데 지난겨울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열린 개인전에선 회화 작품이 눈에 띄었습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모든 상황이 멈추면서 제겐 오랜 숙제와 같던 회화 작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부조회화 이전에 회화 작업을 했고, 최근 선보인 작품은 초기작을 재해석해 발전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작업과 부조회화는 서로 먼 곳에 있지 않아요. 제 손에서 완성되는 입체와 설치, 드로잉 작품은 모두 동일한 주제 아래 서로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재료나 프로세스의 차이가 있을 뿐,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올여름 독일에서 조각가와 사진가와 함께하는 전시가 하나 열릴 예정인데, 직접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작품만 보내는 형식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전시가 있든 없든 작업은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고요. 회화 작업을 좀 더 확장하고 싶은데, 시간을 두고 생각 중입니다. 모처럼 시간이 난 만큼 과거에 고민하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에디터 황재웅(jewoong@noblesse.com)
사진 JK(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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