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에 만난 문화계 핫 이슈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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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8

선선한 가을에 만난 문화계 핫 이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스산한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보내온 책, 전시, 영화, 패션 이야기.

사샤 세이건의 책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표지.

어느 오후 책방에 들렀다가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존재’니 ‘인생’이니 하는 어휘가 공허해 보였다. 그러나 몇 장을 넘기던 나는 이 책을 샀다. 이 유려한 에세이를 천천히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우리가 겪는 인생의 과정을 하나하나 사색한 글이다.
사샤 세이건은 왜 이런 방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을까? 그것은 자신이 느낀 인생의 경이로움을 나누기 위해서다. 공허한 인생 철학이나 조언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저자가 들려주는 것은 지구라는 고독한 행성에서 사람들이 다채로운 방식으로 삶을 이어온 이야기다. 무한한 시간과 우주적 공간을 함께 언급하기에 그 이야기는 새로운 빛을 띤다. 읽다 보면 우리의 인생이 너무 좁고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시야가 좁아진 탓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그 끝을 몰라도 인생은 여전히 경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준다.
저자는 각종 기념일이나 생일, 결혼 같은 평범한 의례를 거쳐온 사적인 기억을 이야기하며 다양한 문화권의 방식을 동등하게 들려준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를 읽다 보면, 절대적인 것이 주던 갑갑함이 부드럽게 풀린다. 그러면서 문화의 ‘차이’가 혼돈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활용할 수 있는 풍성한 메뉴처럼 느껴진다.
절대성을 부정하되 좋아하는 것은 거리낌 없이 말하는 저자의 태도는 유대인이지만 정통파는 아닌 집안의 내력과도 연관이 있다. 전통과 신앙을 지키며 이민까지 감행했지만 아들이 신앙을 잃었다고 고백했을 때, “믿지 않으면서 믿는 척하는 것만이 죄다”라는 답을 들려준 증조부의 일화는 감동적이다. 그런 개방성은 혼돈과 냉소가 아니라 비판 정신과 호기심, 불가지론이 결합된 세이건 가문의 지혜로 꽃을 피웠다.
사샤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쓴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딸이다. 우주인에게 보낼 디스크를 기획하고, 지구에 ‘창백한 푸른 별’이라는 별명을 붙인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 책의 스케일은 작은 편인지 모른다. 그러나 광활한 이야기를 쉽고 섬세하게 엮어내는 재능은 아버지 못지않다. 또 작가이자 TV 쇼 제작자로서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을 집필하기도 한 어머니 앤 드루앤의 가르침과 이야기도 담겨 있다. 자연히 교육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샤 세이건은 아버지와 같은 과학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마라”라는 근본적 가르침은 잘 소화해 뿌리를 내렸다. 어린아이의 사소한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하고 함께 답을 찾아준 부모의 태도는 탐구의 즐거움과 열린 시각이라는 형태로 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이 책이 전해주는 것 중 하나는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이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저자는 자신 역시 모든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해치는 일만 아니라면,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을 막을 이유는 없다고 깔끔히 정리한다.
나는 이 책에 담긴 다양한 삶의 모습에서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대답을 떠올렸다. 빠르게 변하는 가족 형태에 대한 의견을 구하자 그는 그저 자신이 평생 봐온 여러 부족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견이나 이론보다 희망과 영감을 주었다. 사샤 세이건 역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존재에 대한 더 많은 앎이며, 그 끝이 비록 미지일지라도 삶의 경이로움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 김목인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영미 문학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라운드시소 명동에서 만날 수 있는 미디어 아트 전시 <블루 룸>.

출발과 도착을 알리며 떠나고 돌아오는 분주한 여행자를 묵묵히 담아내던 그리운 터미널의 풍경.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행복감에 즐거웠다. 파리, 도쿄, 뉴욕, 이스탄불, 카이로, 리스본…. 전광판에 점멸하던 멋진 도시의 활자는 굳어 있던 일상을 깨우며 처져 있던 어깨를 다독거리곤 했다.
“직항편으로 아오모리에 도착하면 첫날엔 산책하듯 쏘다니고 다음날 아침엔 도와다의 미술관으로, 그리고 다시 오타와라의 갤러리로, 중간중간 몇 개의 소도시를 거친 후 신칸센을 타고 도쿄까지 가는 거야.” 짬짬이 구글 맵을 켜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열도의 북부에서 도쿄까지 가는 일주일 투어 루트를 짜던 동료도 지난주부터는 이것도 못할 짓이라고 툴툴대며 “빌어먹을 코로나”를 입에 달고 산다. 유튜브로 티베트의 포탈라궁,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뉴욕 타임스스퀘어 라이브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따분하고, 클릭 한 번이면 세계 곳곳이 큰 화면에 펼쳐지는데 공허함은 점점 커져가는 비현실적 상황이다. 바라보기만 하는 영상의 한계는 차라리 공항터미널의 전광판 활자만도 못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블루 룸>이라는 짧지만 강렬한 전시 홍보 영상을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것이 그즈음이다. 지구 밖 우주 공간을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마저 시들해진 그때, 우주 공간보다 더 선명하고 비현실적인 파란빛 섬네일이 좋았다. 노트북을 열어 적당한 항공편을 할인가로 잡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괜찮아 보이는 숙소를 고르고, 이른 아침 터미널의 전광판을 지나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붕 날아오르던, 그렇게 땅과 우주의 중간쯤 짙은 푸른빛의 거대한 허공을 떠다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떤 장소에 나를 내려놓던 그 시간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여행’이라 부르던 그 시간 말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블루 룸> 할인가를 알아보고, 적당한 관람 날짜와 시간을 예약했다. <블루 룸>은 여행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공간의 기본 세팅은 영상과 음향이 지배하는 동적 공간이지만, 관람자의 기분과 태도에 따라 언제든 정적인 환경 속으로 스스로 침잠할 수 있다.
여행자의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면 영상과 음향의 과포화 상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낯선 환경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객관화되는 느낌을 더 선명하게 경험할지 모른다. 타자의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여행지의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관조하다가 나의 일상과 존재를 낯설게 각성하던 그 기억이 어렴풋이 소환되었다.
<블루 룸>은 대략 300평, 높이 6m에 이르는 큰 방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각자의 작은 방에서 더 작은 스마트폰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시간이 대부분일 우리에겐 확실히 어떤 각성의 시간을 선물할지 모를 특별한 사이즈다. 8개의 챕터로 펼쳐지는 영상은 만질 수는 없지만 촉감에 움찔하기도 하고, 기분 좋은 착시를 즐기게 해주는 색의 향연이다. 전시를 먼저 본 입장에서 조언한다면 각 챕터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즐겨야 할지 따위는 잠시 접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너무 많은 정보를 알아버린 이의 시시한 여행 같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할 수 있다면 상상력을 모아 <블루 룸>의 공간을 4차원으로 약간 비틀어놓은 현실 세계, 인터스텔라의 세계라고 잠시만 마음을 먹어보자. 낯선 워프에 들어온 우리에게 <블루 룸>은 대해를 가로지르는 밤 비행기에서 봤을 법한 완전하고 짙은 푸른 허공으로 환영 인사를 해줄 것이다. 현란한 색감과 그루브한 음향, 반복되는 착시, 들썩이게도 하고 바닥으로 끌어내리기도 하는 감정의 흔들림을 느끼며 이런 감각적 환경에 둘러싸여본 적이 언제인지 새삼 아득해졌다. 그리고 점점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 있는 나를 타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오래전 그 여행에서 경험한 것처럼.
집에 와서 내 방을 조용히 둘러보았다. 늦은 오후의 볕 그림자가 창턱에 내려앉은 뽀얀 먼지에 반사되어 금가루처럼 반짝거렸다. 뭔가를 본다는 것은 그걸 느낀다는 것이다. 보는 각도가 바뀌면 일상의 뻔한 공간도 낯선 여행의 공간이 된다. 작가 김영하는 저서 <여행의 이유>에서 말했다.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어버리려 떠나는 것이라고.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거나 잠시 잊어버리고 싶은 이라면 50분의 <블루 룸> 여행이 괜찮은 시간일 듯싶다. 오랜만에 좁은 방과 스마트폰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시작될 것이다.
글. 최준석 건축사사무소 나우랩(NAAU LAB)을 운영한다. 얼마 전 에세이 <집의 귓속말>을 발간했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의 한 장면.

“미래의 우리는 현재의 우리가 반복하는 그것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습관에 관한 격언 중 이보다 명쾌하고 실천적인 말도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인생의 성공이란 하루하루의 작은 실천, 즉 습관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루틴’이라 표현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멈춰 선 요즘, 세상에서 뭔가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싶다. 사실 풍요의 시대를 경험한 요즘 세대에게 자신의 현재를 뛰어넘는 야생성은 실종된 지 오래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지만, 막상 그 뭔가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전염병이 돌기 전부터 정체된 의식의 전염병은 무섭게 세상 곳곳으로 퍼진 상태였다.
그런 점에서 우린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일상의 루틴을 되돌아보고 그 안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거창한 생각보다 작은 일상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공교롭게도 성공한 사람 대다수는 일상의 루틴을 통해 위대한 결실을 얻었다. 일상의 반복되는 루틴을 잘 실천해 늦은 나이에 명예를 얻은 버트 먼로(Bert Munro)라는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가 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 뉴질랜드의 한적한 마을에서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이 노인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다. 그것은 아끼는 ‘인디언 스카우트’라는 오토바이를 몰고 속도 무제한 경주 대회에 참가하는 것. 그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직접 개조하기 시작했다.
낡은 오토바이로 세계 최고의 스피드광이 모이는 경주에 나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실제로 1920년 생산된 오토바이의 최고속도는 시속 80km밖에 안 됐다. 하지만 그에겐 오토바이의 작은 부품까지 일일이 만들고 정비하는 일상이 있었다. 쇳물을 녹여 엔진 실린더를 만들고, 각종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몇 달의 노력 끝에 완전히 새롭게 변신한 오토바이 한 대가 탄생했다. 그간 실패해 폐기한 오토바이 부품에는 ‘속도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1967년 숱한 좌절과 실패의 시간을 극복하고 그는 오토바이와 함께 미국 유타주 소금 사막 경기장으로 향했다. 비행기 탈 돈이 없어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고, 집을 저당 잡혀 빌린 돈과 동네 주민들이 모아준 성금을 아껴가며 여행을 계속했다. 목적지를 향한 여정 자체가 그에겐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목적이 있는 삶이란 게 그렇다. 누구나 어려운 시기를 살아간다. 나이가 들수록 희망의 푯대는 점점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목표가 분명한 사람에겐 아무리 힘들고 먼 곳이라도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버트 먼로에게는 그것이 평생의 꿈이었다. 그렇게 그는 남은 생을 건 도전을 시작했다.
경주 당일, 그의 오토바이가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모두 놀렸다. “과연 저런 걸로 경주에 참가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의 오토바이는 무려 시속 331km로 소금 사막을 질주했다. 1000cc 이하 오토바이로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전설의 기록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선택의 갈랫길에서 ‘결정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어쩌면 선택지가 너무 많아 고르기 쉽지 않은 건 아닐는지.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기 전에 일상의 고민거리부터 줄여보는 게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뭐가 됐든 선택은 각자의 몫. 이 순간에도 일상의 루틴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작가. 최근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선보였다.





스페인 왕비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우리나라에서도 스페인 왕비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Letizia Ortiz Rocasolano)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 6월 스페인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펠리페 6세 국왕 내외와 만찬을 함께했다는 뉴스가 나온 이후부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세계 왕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패셔니스타로 꼽힐 만큼 언제나 세련된 패션 감각을 선보인다. 보통 왕실 하면 떠오르는 보수적인 포멀 웨어가 아니라, 모던과 클래식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세련된 룩으로 TPO에 맞는 스타일링을 즐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자국의 대중적 캐주얼 브랜드 ‘갭’이나 ‘제이크루’를 명품 브랜드 의상과 함께 적절히 매치해 입은 것처럼, 그녀 역시 하이엔드와 로엔드 브랜드를 넘나든다. 스페인의 대중적 패션 브랜드 ‘자라’나 ‘마시모두띠’ 의상을 마치 명품 브랜드 의상처럼 고급스럽게 연출하니 그녀의 그런 모습에 많은 여성이 열광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레티시아 왕비는 기자, 리포터, 앵커로도 활동한 경력을 자랑하는데, 2003년에는 스페인 공영방송 TVE 프라임 뉴스의 메인 앵커를 맡으면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2004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펠리페 왕세자와 결혼식을 올렸고, 2014년에 왕비가 되었다. 국민 앵커에서 스페인 왕비로 등극한 그녀는 현재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도 커리어우먼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자기 관리가 얼마나 철저한지 가늠할 수 있다. 1972년생인 그녀는 나이에 비해 동안으로 보이는 외모 덕을 보기도 하지만 중년 여성이 꿈꾸는 우아함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급스러운 세련미가 넘친다. 그렇다 보니 각종 매체에서는 그녀를 ‘유럽 왕실의 패션 아이콘’이라고 부른다. 결혼 이후 몇 년 동안은 앵커 시절처럼 모던한 ‘센 언니’ 룩도 많이 선보였는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 더 부드럽고 페미닌한 룩을 즐겨 입는다. 하지만 특유의 에지 있는 세련미와 시크함은 잃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함께한 국빈 만찬 자리에서는 날씬한 체형을 강조한 오리엔탈 무드의 플로럴 패턴 원피스를 입었다. 플로럴 패턴 원피스는 그녀가 즐겨 입는 패션 아이템.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단아한 스타일을 선택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자유로운 보헤미안 감성이 느껴지는 룩을 선보인다. 프랑스 브랜드 마제나 자라의 루스한 꽃무늬 원피스 같은 스타일 말이다.
블랙 앤 화이트의 모노톤 매치부터 부드러운 올 베이지 룩, 때로는 강렬한 올 레드 룩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의상의 디테일에 반전 포인트가 있다. 심플한 디자인의 밑단을 사선으로 처리하거나 슬리브리스 원피스의 한쪽 어깨에 타이처럼 늘어지는 디테일을 더하는 식이다. 의상 디테일뿐 아니라 스타일링에서도 반전을 즐긴다. 근래에는 빅토리아 베컴 브랜드의 흰색 바탕에 네이비 컬러 레오퍼드 프린트 원피스를 입었는데, 구두는 강렬한 레드 하이힐이었다.
공식 석상에서는 언제나 매끈한 하이힐을 신는데 의상과의 조화에 신경 쓴다. 그녀가 즐겨 신는 누드색 하이힐은 의외로 다양한 컬러의 의상과 잘 어울려 실용적이다. 그녀처럼 올 블랙 원피스에 매치하면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동시에 다리가 날씬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가끔은 심플한 의상에 뱀피 하이힐로 포인트를 주고, 강렬한 올 레드 룩에는 그녀의 시그너처 구두라 할 수 있는 누드색 하이힐을 신는다. 웨지힐 에스파드리유 샌들도 즐겨 신는다. 내추럴한 감성이 느껴져 휴양지 룩과는 최고의 궁합을 이룬다.
물론 다소 엄숙한 공식 석상은 예외다. 아담하고 날씬한 체형이라 그런지 볼드한 주얼리보다는 작은 사이즈의 액세서리를 가끔 착용하는데, 액세서리에 힘을 주기보다는 의상에 어울리는 구두와 클러치만으로 심플하게 연출한다. 그녀의 사진 몇 장만 봐도 전체적 스타일에 반전 포인트를 연출하는 멋쟁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클래식 위드 트위스트(classic with twist)’라는 말이 어울린다. 나이가 들수록 클래식한 스타일만 고집한다면 자칫 보수적이고 올드한 이미지로 기억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처럼 오히려 클래식에 소소한 반전 포인트를 더한다면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룩을 완성할 수 있다. 젊어 보이는 것은 물론, 오픈 마인드에 사고가 유연할 것이라는 인상까지 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글. 장은정 플랜제이(Plan J)를 운영하는 스타일 컨설턴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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