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대중음악이었던 클래식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FEATURE
  • 2022-06-09

그 시절, 대중음악이었던 클래식

더는 어색한 일이 아닌 K-팝과 클래식의 만남.

SM 클래식스의 ‘Make a Wish(Birthday Song)’ 뮤직비디오 중.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포디엄에 선 존 윌리엄스는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와 함께 해리포터 OST ‘Hedwig’s Theme’를 연주했다.
한국 드라마 OST를 편곡한 도이치 그라모폰의 앨범 (2021).
SM과 서울시향이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발표한 레드벨벳의 ‘빨간 맛’.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가수 권진아의 합동 공연 <커튼콜>(2021).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을 기점으로 클래식 음악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들이 늘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도이치 그라모폰이 제작한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실황 앨범은 발매 일주일 만에 초도 물량 5만 장이 모두 판매돼 클래식계 사람들과 애호가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 클래식 음반의 초도 물량은 1000~2000장 수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발매 당일에는 ‘오픈런’이 펼쳐지기도 했다. 아이돌 가수의 음반 발매나 세계적 뮤지션이 내한했을 때 볼 수 있는 모습이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펼쳐지다니, 묘하다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최근 몇 년간 클래식 음악은 우리에게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문지영(피아노), 임지영(바이올린), 황수미(소프라노) 등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유도 있지만, K-팝과의 협업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협업이 활발해진 시점을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신화의 ‘T.O.P.’, H.O.T의 ‘아이야!’,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 등이 등장한 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노래가 나온 1990년대에는 힙합 장르에서 샘플링이 유행하던 시절로, 대중가요에 클래식을 활용하는 건 익숙한 풍경이었다. 시간을 건너뛰어 21세기 아이돌로는 ‘Feel My Rhythm’의 레드벨벳, ‘Fantasy’의 빅스, ‘오랜 날 오랜 밤’의 악뮤 등이 있다. 이처럼 그동안 K-팝에서 대중음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전음악의 한 부분을 가져와 노래의 포인트로 만든 예는 수없이 많았다. 길거리에서 언젠가 한 번쯤 들어본 리듬이 귓가에 울린다고 가정해보자. 우리의 예민한 청각은 익숙한 선율에 즉각 반응하고, 음악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터. 일종의 선점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요즘은 클래식과 K-팝의 만남이 필연 같기도 하다. 그 중심에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이 있다. 2020년 SM과 서울시향은 장르 간 협업을 위한 MOU를 체결했는데, 이는 K-팝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처음 손잡은 일이었다. 이후 SM은 ‘SM 클래식스’라는 레이블을 설립한 뒤 서울시향과 함께 레드벨벳의 ‘빨간 맛’과 샤이니 종현의 ‘하루의 끝’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발표했다. 유튜브에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초기에는 클래식이 상업적으로 변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SM과 서울시향의 협연으로 클래식이 더는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코로나19로 힘든 일상에 위안을 받았다’는 긍정적 평가가 잇따랐다. 이러한 호평 덕분인지, SM은 지난 2월 서울시향과 두 번째 MOU를 맺으며 클래식과 K-팝을 융합한 공연·교육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향은 “클래식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클래식 문턱을 낮춰 MZ세대가 자주 공연장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설명했다.
SM과 서울시향만 두 장르의 결합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가수 권진아가 롯데콘서트홀에서 합동 공연을 했다. 공연에서 두 사람은 첫 곡으로 프란츠 리스트의 ‘Consolation No.3’에서 영감을 받은 선우예권이 드라마 [멜로가 체질> OST에 실린 권진아의 노래 ‘위로’를 편곡한 결과물을 선보였는데, 팬데믹 시기 우리를 포근히 감싸는 듯한 느낌에 관객들은 따스한 박수를 보냈다. 비슷한 시기, 도이치 그라모폰은 한국 드라마 OST를 편곡한 음반 [Shades of Love]를 발매했다. 앨범에는 대니얼 호프(바이올린),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등이 참여해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태양의 후예] 등 드라마 OST를 연주했다. 드라마 애청자에겐 다소 밋밋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Shades of Love]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봄아트프로젝트 윤보미 대표와 필립 윤트(플루트)는 “드라마 주제곡을 클래식 악기로 편곡해 예술성을 높이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무대를 넓혀 K-클래식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클래식과 K-팝 교집합의 끝판왕 포레스텔라도 있다. 이들은 공연과 방송을 넘나들며 클래식 사중창을 기반으로 한 한국적 음악을 선보이는 그룹으로, 콘서트를 개최할 때마다 전 좌석이 매진되는 등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해외에서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협연이 어색한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있다. 두 오케스트라는 2020년과 2021년 [스타워즈], [죠스], [해리 포터] 등 영화 OST를 작곡한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를 지휘자로 초청해 ‘클래식계의 격세지감’이라는 평을 받은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두 오케스트라의 포디엄에는 최고 클래식 지휘자만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턱을 낮춰 개방과 소통을 선택한 이들의 행보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참! 이미 우리에겐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변신한 개그맨(김현철)이란 전례가 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어렵게 구분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한때는 동시대 음악이던 모차르트·베토벤·하이든의 곡은 낭만주의 때 재해석되어 클래식으로 일컬어졌고, 클래식 인기에 대항해 나온 그 언젠가의 음악 역시 시간이 흐른 뒤에는 클래식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은 이제는 다양하게 편곡될 만큼 클래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뜻이다. 누가 아는가. 오늘날 클래식을 만난 K-팝이 먼 훗날 가치 있는 클래식이 될지. 아니, 지금으로서는 될 것이라 믿는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