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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15

고전과 현대가 만날 때

지방시의 소장품에서는 그의 패션 디자인과 일맥상통하는 품위를 엿볼 수 있다.

위쪽 피에르 베르지앙, ‘오루에르 호텔의 초록 거실’, 2021(비경매품).
아래왼쪽 오루에르 호텔. ⓒFrancois Halard
아래오른쪽 오루에르 호텔의 거실. ⓒFrancois Halard

얼마 전 크리스티는 전설적 패션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가 소장하던 예술 작품과 장식품 경매를 6월에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시대별 조각과 회화 작품을 포함해 프랑스와 유럽의 예술 작품 및 가구 1200점이 경매에 나올 예정. 모두 지방시의 세심한 손길을 거쳐 선별된 것으로, 201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두 곳, 오루에르 호텔(Hotel d’Orrouer)과 프랑스 외르에루아르주에 있는 종셰 성(Chateau Jonchet)에 소장되어 있었다. 수십 년간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소장품도 있어 많은 컬렉터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경매는 3월부터 미국 팜비치, 뉴욕, LA를 시작으로 월드 투어를 진행하고, 5월 하순 홍콩에 도착했다가 6월 파리로 돌아가는 일정으로 계획되어 있다. 6월 중순 파리 경매 현장에서, 그리고 6월 8일부터 23일까지 온라인을 통해서도 경매를 지켜볼 수 있다. 지방시와 크리스티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크리스티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책임자 조지나 힐턴(Georgina Hilton)은 “1993년부터 지방시가 우리에게 18세기 초 가구 경매를 의뢰한 이후 계속 협력해왔다. 모나코에서는 이정표적 의미가 있는 경매를 개최한 바 있다”라고 밝혔다.
지방시는 오트 쿠튀르와 패션 분야의 전설적 디자이너 가운데 한 사람이자 우아한 프렌치 스타일의 상징이었다. 그의 디자인과 예술적 취향, 배치 구도는 서로 맥이 닿아 있다. 고전적 정취와 18세기 미학에 대한 그의 강한 애착을 보여주는 저택은 모더니즘 작품을 품고 있어 양자 간 유기적 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예술적 구상을 느끼게 한다. “패션은 변화하지만 18세기 미학의 탁월함은 깊고 영원하다. 그런데 가구는 동시대의 것만으로 채울 수 없다. 모더니즘 가구를 고전적 분위기의 실내에 배치해 신선한 느낌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언젠가 그가 한 말이다.





위베르 드 지방시. ⓒVictor Skrebneski

정신성을 추구하다
예를 들면 파리 그르넬 거리에 있는 지방시의 저택 거실에는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작품 ‘걷는 여인’이 자리하고 있다. 이 청동 조각 작품은 지방시의 거래처이자 가까운 친구였던 유명 컬렉터 버니 멜런(Bunny Mellon)이 그에게 선물한 것이다. ‘걷는 여인’은 ‘자코메티가 구상한 첫 번째 걷는 사람’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조만간 크리스티 경매에 나올 이 작품은 피오리니(Fiorini) 주물 공장에서 1955년에 주조한 최초의 작품 중 하나로, 자코메티의 예술적 단계가 한층 성숙해지던 중요한 시기에 탄생한 것이기도 하다.
종셰 성의 큰 홀에 있던 새 모형 석고 조각상 역시 자코메티의 초현실주의 시기 작품으로, 1937년 인테리어 디자이너 장미셸 프랑크(Jean-Michel Frank)를 위해 만들었다. 대다수 예술가에게 석고는 조각 작품을 제작하는 초기 단계에 사용하는 소재지만, 석고의 정갈한 흰색과 광택을 유난히 좋아한 자코메티는 석고로 작품을 완성했다. 자코메티의 초현실주의 시기 작품을 알아본 지방시의 남다른 안목을 엿볼 수 있다.
지방시는 자코메티의 동생 디에고 자코메티(Diego Giacometti)의 작품도 여럿 소장했다. 그와 디에고는 20년 가까이 우정을 쌓아온 친구였다. 디에고는 1970년대 초반부터 지방시의 저택 종셰 성의 가구 디자인을 전담했다. 이번 경매에 나오는 소장품에는 디에고가 디자인한 테이블과 장식품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정문 장식용으로 디자인한 도어 링도 있다.
자코메티 형제의 작품 외에도 호안 미로(Joan Miro),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등 20세기 유명 예술가의 작품도 오랫동안 지방시의 거실을 장식해왔다. 지방시는 인생의 동반자였던 필리프 베네(Philippe Venet)와 취향이 잘 맞았는데, 호안 미로의 1968년 작 ‘철새가 지나가는 길’을 비롯해 베네의 소장품도 경매에 나올 예정이다. ‘철새가 지나가는 길’은 과장되고 대담한 예술가의 손놀림에서 탄생한 푸른색, 하나의 흰 점과 한 줄의 검은 선으로 순수하고 숭고한 정신세계를 향한 동경을 묘사한 대형 캔버스화다. 그림이 완성된 직후 버니 멜런을 통해 구입했는데, 그 후 지방시와 베네 두 사람의 거처를 한결같이 지켜왔다. 지방시는 말년에 자신의 침실에 이 그림을 걸어두기도 했다. 이러한 모더니즘 스타일의 작품은 지방시의 심미적 취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끊임없이 형이상학적인 것을 추구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위쪽 프랑수아 자비에르 랄란, ‘정원의 새’, 2001.
아래쪽 종셰 성.
오른쪽 알베르토 자코메티,‘걷는 여인’.





왼쪽 클라우디오 브라보, ‘술의 신 바쿠스’,1997. ⓒFrancois Halard
오른쪽 종셰 성의 거실. ⓒFrancois Halard





왼쪽 피에르 베르지앙이 2021년 지방시 작업실을 그린 수채화 작품(비경매품). ⓒJuan Cruz Ibanez
오른쪽 파블로 피카소, ‘긴 창을 든 목신’.

현대와 고전의 조화
지방시는 18세기 우아한 품격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수아 지라르동(Francois Girardon)이 18세기 초반 제작한 청동상 ‘술의 신 바쿠스’는 18세기의 품격을 되살리고자 한 예술가의 꿈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우아하고 고전적인 청동상은 늘 지방시의 곁을 지키며 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조각상 외에도 그의 가구 소장품 중에는 고전 시대의 정교한 작품이 많다. 대표적으로 마르탱기욤 비에네(Martin-Guillaume Biennais)의 서명이 들어 있는 화려한 제국 시대 조각이 새겨진 청동 테이블, 조제프 바움하에르(Joseph Baumhauer)가 제작한 루이 16세 후기의 흑단(黑檀) 테이블, 다피트 뢴트겐(David Roentgen)이 18세기 말 제작한 계단과 기계 장치가 달린 대형 책상, 신고전주의 시대 목공 예술의 거장 조르주 자코브(Georges Jacob)가 슈아죌 공작(Duc de Choiseul)의 샹틀루 성에 맞춰 제작한 의자 세트가 있다. 단아한 선과 아담한 장식이 균형미를 이루는 가구들은 깔끔하게 이어지는 선과 실루엣을 추구한 지방시의 취향과 맞아떨어진다.
클래식한 가구와 모더니즘 예술 작품이 어떻게 한 공간에서 조화로운 공존을 이룰까? 이는 지방시의 독보적 믹스 매치 스타일을 시험한 것이었다. 그르넬가(街) 대저택의 첫 번째 거실에는 파블로 피카소가 1947년에 검은색 분필로 그린 대형 드로잉 작품 ‘긴 창을 든 목신(牧神)’이 걸려 있다. 그 아래에는 메종 메이외르(Maison Meilleur)가 만든 프랑스 총재 정부의 탁자가 있고, 옆으로는 루이 15세 시기에 만든 왕비풍(風)의 정교한 팔걸이 의자가 자리하고 있다. 의자의 삼색 가죽과 스웨이드로 장식한 테두리는 지방시 브랜드의 장갑 장인이 제작했다. 피카소의 그림은 그가 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으로, 그의 드로잉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자체가 클래식한 소재와 모더니즘 예술 사상의 조화로 탄생한 작품이기에 클래식한 가구 사이에 놓여 있어도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클라우디오 브라보(Claudio Bravo)의 초사실주의 회화 작품 ‘술의 신 바쿠스’(1997)와 ‘태양의 신 아폴로’(1998) 두 작품도 모더니즘과 클래식의 만남을 보여준다. 두 작품은 지방시 저택의 거실 한편에 서로 마주보며 걸려 있는데, 작품을 대칭 구도로 배치한 것은 지방시가 자신의 대저택에 적용한 주된 인테리어 구도였다. 지방시는 또한 이 작품들을 통해 옷감에 경의를 표하고자 했는데, 이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컬렉터라는 그의 이중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크리스티 고전주의 예술 명장 부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책임자 조지나 힐턴(Georgina Hilton) 인터뷰

지방시의 예술 작품 컬렉션 취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방시의 컬렉션에는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그의 독특한 취향이 묻어난다. 그는 시류를 좇기보다는 주변 사물과 인물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러 해 동안 그는 버니 멜런 같은 컬렉터와 우정을 나누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는 작품을 놓을 자리를 정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마치 교향곡에서 여러 악기 소리가 서로 어우러지며 울려 퍼지듯, 모든 작품이 자신만의 자리에 놓여 있다.

예술 작품 컬렉션에서 지방시만의 남다른 특징이 있다면? 지방시는 열렬한 핸드메이드 예찬론자였다. 디에고 자코메티가 제작한 도어 링처럼 그의 집과 소장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대작보다는 작품 속 세심하게 구현된 미학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여러 부분에서 절제를 추구했는데, 어쩌면 이것이 우아함을 추구하는 그만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지방시의 소장품 중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그의 의자에 대한 애정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소장한 의자와 조각 작품은 모두 탁월한 예술성을 보여준다. 패션에서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옷이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했다. 거주의 영역에서 그는 의자와 의자에 앉는 사람도 마찬가지 관계에 있다고 여겼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인터뷰·글 쉬원
기획 허민
사진 제공 크리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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