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서브컬처의 향유자, 나라 요시토모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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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9

일본 서브컬처의 향유자, 나라 요시토모

악동과 똑 닮은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 속 주인공의 눈빛을 유즈 뮤지엄에서 만나는 시간.

<Yoshitomo Nara>, installation view at Yuz Museum, 2022

‘동양의 파리’는 상하이의 오래된 애칭이다. 중국에서는 동서양 문화가 섞인 ‘동양의 파리’ 시대를 현재의 상하이와 구별하기 위해 ‘올드 상하이’라고 부른다. 200여 년 동안 중국의 경제, 무역, 금융을 이끈 상하이는 푸둥강 변에 위치한 와이탄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고 있다.
상하이시 정부와 쉬후이 지역 정부는 WBCC(West Bund Cultural Corridor)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미술계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웨스트번드 강변은 20세기 내내 바지선에서 석탄을 하역하는 부두가 있던 곳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전략은 ‘예술과 문화’를 통한 개발로 롱 뮤지엄, 유즈 뮤지엄, 스타트 뮤지엄, 탱크 상하이로 이어지는 예술구역(WBCC)을 통해 중국 현대미술 신(scene)을 형성하는 것이다.





Wicked Looking, 2012. Collection of the artist

최근 유즈 뮤지엄 설립자 부디 텍(Budi Tek)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전 세계 미술계의 시선이 다시 한번 상하이 웨스트번드로 향했다.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기업가 텍은 <Art & Auction> 잡지가 선정한 ‘2014년 세계 최고 미술품 수집가 10인’에 이름을 올릴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유즈 뮤지엄은 9000m2 규모로 항공기 제조 공장의 오래된 격납고를 개조한 곳이다. 그동안 카우스, 알베르토 자코메티, 앤디 워홀 등 국제적 예술가의 전시를 선보였고 현재 일본 작가 나라 요시토모(1959~)의 개인전 <Yoshitomo Nara>(3월 5일~9월 4일)를 개최 중이다. 중국 본토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일 뿐 아니라 첫 번째 국제 회고전이기도 하다. 이는 유즈 뮤지엄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이 작가이자 큐레이터인 요시타케 미카와 협력한 전시로 회화, 조각, 도자기, 설치 작품 외에 직접 컬렉션한 음반 100장, 미발표작 드로잉 700여 점도 선보인다. 이 전시는 1984년부터 2021년까지 작품을 망라해 그의 어린 시절 추억과 음악, 문학, 독일에서 유학한 시기(1988~2000), 아시아와 사할린까지 이어지는 정체성에 관한 탐구, 유럽과 일본의 현대미술 등 다양한 토양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라 요시토모는 무라카미 다카시, 아이다 마코토 등 2000년대 일본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현대미술가로 꼽힌다. 특히 만화, 동화 삽화 등 아동 미술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다만 자연스러운 붓 터치와 색감으로 회화적 특징을 살린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다카시나 여타 만가와 아니메의 영향을 받은 작가와는 구분된다. 그가 그리는 소녀는 그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 즉 ‘캬라(캐릭터)’가 되었다.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흔히 보이는, 베이비 스키마(baby schema)로 대변되는 보호 본능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그리는 소녀는 단순하게 ‘가와이이’(귀엽다)로 대변되는 헬로키티나 마이멜로디, 키키라라 같은 전형적 캐릭터는 아니다. 2등신의 프로토타입으로 캐릭터의 전형성을 따르지만 불안정하고 어딘가 악마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Yoshitomo Nara>, opening scene at Yuz Museum, 2022. Photo by Wang Qing

나라 요시토모의 중성적 소녀 이미지는 한쪽 눈을 가리고 있거나 붕대를 감고 등장하기도 한다. 불난 집을 바라보거나, 반달을 따려는 포즈를 취하거나, 만사 귀찮아 누워 있거나, 칼이나 못, 방망이, 담배를 들고 있다. 유즈 뮤지엄 외벽에 걸린 포스터 속 소녀는 눈을 감고 있다. 그동안 일본 서브컬처에 등장한 소녀는 대체로 ‘가와이이계’였다.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녀는 불만에 차 있으며, 반항적이다. 섬뜩한 폭력적 요소를 갖춰 무섭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한데 이런 반사회적 요소는 일본 근대의 역사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전시는 특히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음악의 프리즘을 통해 들어간다. 그의 깊은 내면은 시각, 텍스트를 결합한 우화적 그림에서 최근의 초상화로 진화했다.
그림 속 소녀의 붕대를 감거나 눈을 감는 행위는 사회 ‘약자’의 포지션에 속한다. 이런 약자성을 강조한 이미지 외에 개와 같은 동물 드로잉과 함께 록 음악의 가사를 씀으로써 ‘반항심’과 ‘불만’이 내재된 내면을 숨긴다. 나라 요시토모는 펑크록의 특징이기도 한 고딕(gothic) 취향이라 할 수 있다. 고딕은 로커의 검은 의상처럼 해골과 죽음, 칼 등이 등장하는 등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그는 특히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서브컬처 만화를 대표한 잡지 <가로>와 펑크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가로> 계열의 만화는 주로 전쟁이나 소외, 블랙유머, 잔혹극을 다룬다. 그도 <가로>에서 활동한 작가들처럼 매우 과장된 표현, 왜곡되고 간략한 선을 활용한 표현 방식을 채택했다.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은 2011년 3월 도호쿠 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 사고 이후 극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스튜디오에서 북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 이후 도자기 작업, 고르지 않은 표면에 손의 촉각을 반영한 청동 조각 작업과 함께 녹색 드레스를 입고 거의 보이지 않는 물웅덩이에 반쯤 잠긴 채 눈을 감은 엄숙한 소녀의 초상화를 그렸다. 또 3·11 도호쿠 지진과 쓰나미 이후에는 분홍색 벚꽃을 배경으로 프리즘 같은 눈물방울과 함께 뷰어를 똑바로 응시하는 이마가 높고 눈이 큰 소녀의 초상화를 그렸다. 작가는 ‘죽음의 가면’이 연상되는 눈을 감은 몽환적 표정의 소녀를 통해 마치 수천 명의 유령을 불러내는 듯하다.





Harmless Kitty, 1994,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Tokyo. © Yoshitomo Nara

작가는 순수미술 외에도 뮤지션의 CD 재킷 디자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연재소설 <데이지의 인생>(2000)과 <아르헨티나 할머니>(2002) 삽화 작업은 물론 록 음악 연주자, 일본 지방의 토속 문화를 찾는 프로젝트와 소외된 지역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지역 방송국 DJ로도 활동했다.
특히 이번 전시 도록 한정판에는 14개의 소책자를 포함한 클램셸 케이스와 미국 인디록 밴드 요 라 텡고(Yo La Tengo)의 오리지널 음악과 커버, 작가가 선택한 1960년대와 1970년대 노래 LP가 함께 들어 있다. 작가를 둘러싼 두터운 팬덤은 그 자신이 비주류, 서브컬처의 향유자이자 행동가였기에 가능했다.
유즈 뮤지엄이 위치한 웨스트번드는 WBCC의 인프라 개발과 함께 미술품 보관과 거래에 용이한 자유항구, 면세 지역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2014년에 문을 연 웨스트번드 파인 아트 웨어하우스(West Bund Fine Art Warehouses)에는 이미 롱 뮤지엄, 유즈 뮤지엄, 소더비를 포함한 30여 개 예술 기관의 작품이 보관되어 있다. 웨스트번드는 올드 상하이로 명명된 시대를 더욱 매력적으로 재소환하고 있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천수림(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유즈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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