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창문의 멋 그리고 지혜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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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30

와인 창문의 멋 그리고 지혜

피렌체가 잉태한 또 하나의 발명품, 부케테(buchette, 와인 창문)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전한다.

피렌체 시내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와인 창문. 르네상스 시대 스타일의 장식과 함께 ‘와인 판매’라는 명판까지 새겨져 있다. 보존 상태가 거의 완벽한 희귀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희미하게나마 끝이 보이는 것 같아 위안이 되지만, 팬데믹의 여파는 전 세계인을 떨게 할 만큼 어마어마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2년간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 피렌체로 지난 3월 출장을 다녀왔다. 팬데믹 초기인 2020년 5월 어느 날, 심각한 봉쇄 조치에 들어간 피렌체. 상점 얘기가 한동안 끊겼던 지역 신문 기사란에 갑자기 가게 하나가 등장했다.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한숨만 쉬던 그 무렵, 젤라토 인기 상점 ‘비볼리’가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팬데믹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1930년부터 젤라토를 만들어 파는 이곳의 3세대 주인 실바나 비볼리는 외벽에 달린 작은 창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가로 20cm, 세로 30cm 남짓한 그 작은 창을 열었을 때, 신선한 공기뿐 아니라 많은 이의 갈채와 환호가 터져 나왔어요. 우울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죠.” 그녀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판매 재개를 알리고, 궁금한 사항은 왓츠앱을 이용해 바로 답해주었다. 손님과 대면하지 않아도 젤라토와 커피를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창문이 바로 유서 깊은 ‘와인 창문’이다. 바깥에서 나무 문을 두드리면 문이 열리고, 창문을 통해 주문과 계산을 하면 젤라토나 커피 혹은 달달한 빵과 함께 영수증이 나온다. ‘부케테’라 불리는 이 와인 창문은 최근에 만든 것이 아니다. 이미 르네상스 시대인 400여 년 전부터 저택 외벽에 설치되어 있었다. 피렌체 중심부에만 150여 개의 와인 창문이 있다.
부케테델비노협회(www.buchettedelvino.org)를 이끄는 회장 마테오 팔리아를 만났다. 그는 도심에 있던 와인 창문을 하나하나 찾아내 건물주를 만나 창문 설치 내력 등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의논한 후 협회 명패를 붙인다고 했다. “지난 수백 년간 많은 와인 창문이 훼손되거나 막혔지만, 우리는 이 유산을 잘 보존해 후세에 남기려 합니다. 혹자는 부케테를 와인 도어라고 하는데, 틀린 말입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작은 문이거든요. 17세기에는 ‘구멍’으로 불렸지만, 우리는 공식적으로 와인 창문으로 통일했어요.”
그는 와인 창문이 피렌체에서 유독 많이 발견된 것에 대해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수십 년간 출판업계에 몸담았다가 은퇴한 터라 역사적 문헌 연구에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지닌 그의 말에 따르면, 와인 창문은 토스카나의 다른 도시에서도 발견되지만 대부분 피렌체에 있다고 한다. 일반 주택이 아닌 팔라초(저택)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피렌체의 중심부, 르네상스 그리고 저택. 이런 단어를 합치면 어렵지 않게 메디치, 귀족, 부자 등으로 연결된다. 당시 와인 창문은 보건 위생 문제로 설치한 것이 아니다. “저택 정문에 평민이 줄 서서 와인을 사는 풍경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저택 소유주가 자신의 집 앞에 평민이 오는 걸 내켜 하지 않았죠. 또 정문을 통해 수시로 마차가 드나들었기에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요. 처음엔 불편을 무릅쓰고 돈벌이를 했겠지만, 점차 자신의 집 앞이 사람들로 붐비는 게 못마땅했을 겁니다. 그래서 막을 방법을 강구하다 대로변 외벽에 와인 창문을 설치하면 이런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와인 창문이 정확히 언제부터, 어느 저택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문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피렌체공화국이 운명을 다하고 메디치가의 코지모 1세(Cosimo I de’ Medici)가 토스카나 대공국 시대를 열 무렵, 그 사이가 아닐까 추정한다. 피렌체공화국 체제가 몰락하면서 16세기 초 피렌체는 북유럽 상인과의 경쟁 격화, 전쟁 빈발, 흑사병 등으로 정치적 불안이 극에 달했다. 그때 코지모 1세는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당근책’을 내놓았다. 귀족이나 상인이 자신들의 토지 소산인 와인을 직접 시민에게 판매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피렌체 시내로 들어오는 와인에 매긴 높은 세금은 재정에 큰 보탬이 되었는데, 저택에서 직접 판매하면 면제해주었다고 한다. 와인 직판 허용이 귀족과 부자에게는 큰 돈벌이 수단이었던 셈이다. 생산자와 판매자를 직접 연결하니 중간 도매상이 필요 없어 거래가 더 잘되었기 때문이다. 또 피렌체 사람들은 물 대신 와인을 마셔야 했으므로 와인 직판과 가격 인하는 더 큰 수요를 불러일으켰다.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안티노리·프레스코발디·리카소리 등 여러 팔라초의 와인을 비교할 수 있었고, 더 좋은 품질과 합리적 가격대의 팔라초 와인을 선호했다. 이로 인해 각 팔라초에서는 고품질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팔리아 회장은 “안티노리 후작 패밀리는 14세기부터 안티노리 팔라초에 거주하며 가업인 와인 양조를 이어온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우리 부케테 1호 멤버가 되었죠”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물론 안티노리 팔라초에도 와인 창문이 하나 달려 있다.





비볼리 가게의 외관.
비볼리의 와인 창문을 통해 젤라토를 건네고 있다.
드물게 오리지널 나무 여닫이문이 보존된 와인 창문.
피렌체 시내 저택의 외벽에 난 와인 창문. 주로 공사하기 수월한 창문 아래 설치되어 있다.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의 와인 창문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창문이 달린 나무 대문을 보수해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탓에 공식적으로 금색 테두리를 그려 넣어 표시해놓았다.
바바에(Babae) 레스토랑은 건물 외벽의 와인 창문으로 하우스와인을 판매했다.


와인 창문의 탄생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보건 위생적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약 한 세기가 지나 문헌에 등장한다. 당시 서지 학자 론디넬라가 1634년 펴낸 도서에는 1630~1633년 진행된 혹독한 흑사병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팔라초에서 와인 판매를 맡은 사람들은 플라스크(당시의 표준 와인병으로, 이 병으로만 판매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를 만짐으로써 혹시 역병이 옮을까 봐 나무 창문에 와인관 꼭지와 깔때기를 설치해두었다. 와인을 사려는 사람은 누구든 바깥에서 창문을 통해 와인을 받을 수 있었다.” 즉 사람들끼리 대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제도 감염을 방지할 목적으로 직접 받지 않고 구리 국자로 동전을 받은 다음 그대로 식초에 담갔다. 와인은 주로 플라스크 단위로 판매했다. 돈을 내고 와인이 든 플라스크를 집어 갈 수도 있었고, 플라스크를 직접 들고 오면 앞서 말한 꼭지와 깔때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와인을 채워주었다. 처음엔 1.2리터였다가 시대가 바뀌면서 1.5리터 용량으로 확대되었는데, 그러는 동안 와인 창문의 크기도 조금 커졌다. 와인 판매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400년 전 일상이라니, 정말 기발하고 놀랍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아닐 수 없다.
역병이 창궐한 17세기에 이토록 자세히 와인 창문의 기능을 서술했다는 것은 그만큼 와인 창문이 널리 활용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부케테델비노협회 관계자들이 2021년 12월에 출간한 도서 를 보면 시대가 변하면서 와인 창문이 점점 사라지고, 1966년 대홍수 이후 그 기능이 완전히 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버젓한 와인 숍이 도처에 문을 여는데, 굳이 구멍 같은 와인 창문으로 와인을 판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현대판 와인 창문은 비볼리에 그치지 않는다. 오리지널 와인 창문이지만, 와인을 팔진 않는다. 대신 와인 창문 고유의 목적을 잘 활용하는 피렌체의 식당으로 벨레 돈네, 일 라티니, 바바에, 스말토, 라 킨티나 등이 있다. 이들 식당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일 때 길거리 행인의 요청으로 하우스 와인이나 피자, 파스타, 심지어 맥주와 햄버거 등을 와인 창문으로 판매했다. 필자가 머물렀을 때는 방역 상황이 호전되어 와인 창문이 자주 활용되지 않았지만, 글라스 와인을 주문하는 대학생들을 여러 번 보았다. 와인 창문을 취재한 많은 언론 중 CNN 기사를 보면, 피렌체의 한 식당에서 만나 인터뷰한 노인이 와인 창문을 가리켜 ‘천국의 작은 문’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와인을 갈망했고, 와인 창문을 통해 와인이 빈번하게 판매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시민의 지혜를 보여주는 멋진 오브제인 와인 창문은 지금도 기능하고 있다. 2006년부터 해마다 한두 차례 여행했음에도 피렌체는 여전히 볼거리가 많다. 오래전부터 일상에서 와인을 가까이해왔다는 사실을 이 도시에서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고도 알 수 있다. 피렌체에서는 와인 관련 용품부터 유물·건축물 혹은 회화·조각 등 다방면에 스며든 와인의 숨결을, 또 와인의 역사성을 곳곳에서 만지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글·사진 조정용(키안티 클라시코 한국 명예대사, 올댓와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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