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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2

'베니스 비엔날레' 여성, 힘

올해로 제57회를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여성의 힘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새 역사를 썼다.

코시마 본 보닌의 작품 설치 전경.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Marco Cappelletti

베니스 비엔날레도 코로나19 사태를 비켜가진 못했다. 1895년부터 시작한 기나긴 역사의 기록에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를 제외하고는 2년마다 꾸준히 개최한 베니스 비엔날레가 예정된 2021년에 열리지 못하고 끝내 1년을 연기한 것. 올해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환경 위기 등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지난 4월 개막한 이후 모든 이슈를 잠재우고도 남을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전례 없이 여성 작가의 활약이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올해 비엔날레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뉴욕 ‘하이 라인 아트(High Line Art)’ 감독 겸 수석 큐레이터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가 총감독을 맡았다. 2017년 이탈리아 국가관 예술감독을 맡기도 한 세실리아 알레마니는 이번 비엔날레에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라는 시적인 제목을 붙였다. ‘꿈의 우유’는 영국 출신 초현실주의 여성 예술가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의 그림 동화 제목에서 따왔다. 책 <꿈의 우유>는 어린 시절 아일랜드 출신 유모에게 환상적인 민속 우화를 들으며 자란 작가가 세상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아이들이 현실과 다른 독특한 모습의 동물 같은 다양한 존재를 통해 상상력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알레마니 총감독은 이런 서정적 제목 아래 “행성과 자연, 다른 종과의 또 다른 관계를 기념하고자 인간 중심적 면모를 재고하고, 서구적인 보통 백인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위쪽 국가관 부문 황금사자상 수상 작가이자 영국관을 대표한 소니아 보이스의 작업. 퍼포머 재키 댕크워스(Jacqui Dankworth)와 소피아 예른베리(Sofia Jernberg)의 모습을 담았다. Courtesy of Cristiano Corte - British Council
아래쪽 본전시 부문 황금사자상 수상 작가 시몬 리의 ‘Last Garment’(2022). Courtesy of the Artist and Matthew Marks Gallery © Simone Leigh @Photo by Timothy Schenck

이번 비엔날레는 영적인 것과 신화에 관한 관심, 환경, 여성 예술가 등 많은 논쟁거리를 낳았다. 이 중에서도 많은 매체가 앞다퉈 보도했듯, 올해 비엔날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여성’이다. 알레마니 총감독이 “최초의 이탈리아 여성 총감독에게 주어진 책임과 기회의 막중함을 깨달으며, 예술가의 비전과 사회를 반영하는 특별한 전시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듯, 이탈리아 여성으로서 최초로 총감독직을 맡았고, 본전시가 펼쳐지는 아르세날레에 남성보다 더 많은 여성 예술가가 참여한 것은 베니스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본전시에는 총 58개국에서 온 작가 213명이 참여해 역대 최다 참여자 수를 기록했는데 특히 이 중 여성 작가가 192명으로, 남성 작가는 21명에 불과할 정도로 성비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여성 작가 중에는 한국인으로서 ‘Endless House: Holds and Drips’를 출품한 설치 작가 정금형과 ‘Toy Prototype’ 설치 작품을 선보인 이미래의 이름도 포함됐다.
한편 베니스 비엔날레의 자르디니에는 전쟁으로 러시아 예술가가 불참하면서 총 78개 국가관이 개관했다. 선정 과정 문제로 잠시 삐걱거린 한국관은 오명을 벗고 광주비엔날레,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등을 거친 이영철 계원예술대학교 교수가 커미셔너를 맡았다. 올해 한국관 작가로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전자음악 작곡가인 김윤철이 ‘Gyre’라는 제목으로 현장 드로잉과 설치 작품으로 참여한다. 김윤철 작가가 오랜 기간 천착한 주제인 ‘Gyre’는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시 ‘The Second Coming’에 등장하는 나선형의 순환 개념이다. 인간과 비인간(기계), 물질, 입자가 하나를 이루며 교감하는 과학에 가까운 작품으로 베니스를 찾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위쪽 소피아 알-마리아의 영상 설치 ‘Tiger Strike Red’(2022). 2022 베니스 비엔날레와 V&A의 컬래버레이션이다.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Andrea Avezzù
아래쪽 라트비아 국가관을 대표한 스쿠야 브라덴(Skuja Braden)의 ‘Selling Water by the River’.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Andrea Avezzù

다시 여성 작가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베니스 비엔날레가 올해 가장 뛰어난 작가에게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의 영예도 영국의 흑인 여성 작가 소니아 보이스(Sonia Boyce)와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 시몬 리(Simone Leigh)에게 돌아갔다. 평생공로상도 독일의 카타리나 프리슈(Katharina Fritsch)와 칠레의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두 여성 작가가 공동 수상하면서 비엔날레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국가관 부문의 황금사자상을 받은 소니아 보이스는 영국 국가관을 채운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이기도 하다. 작가는 영국 음악사에서 결코 주류로 인정받지 못한 여성 뮤지션을 다룬 ‘Feeling Her Way’ 등을 출품했다. 흑인 여성 뮤지션의 음악을 주제로 비디오, 바이닐, CD, 포스터, 티켓 등의 콜라주 작업과 음악, 조각 등을 결합한 사운드 설치 작품을 선보인 영국관은 올해 많은 매체가 주목해야 할 전시로 뽑기도 했다.
본전시 부문의 황금사자상 수상자 시몬 리도 미국 국가관 대표 작가로 선정된 최초의 흑인 여성으로, 흑인 여성의 디아스포라적 삶과 잃어버린 역사를 담은 대형 조각을 선보였다. 길이 5m에 달하는 흑인 소녀의 청동 토르소 ‘Brick House’는 관람객에게 단번에 각인됐다. 그뿐 아니라 검은 액체로 가득한 공간에서 허리를 굽힌 채 일에 몰두하고 있는 흑인 여성은 역사에서 소외된 흑인과 여성이라는 존재를 되새겼다. 카타리나 프리슈는 스스로 ‘입체적 그림’이라고 부르는 대담한 색조의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알레마니 총감독이 “현대미술, 특히 조각 분야에서 카타리나 프리슈의 공헌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밝혔을 정도다. 동물 같은 피사체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어마어마한 크기로 확대해 선명한 단색으로 코팅한 초현실적 피스가 작가의 시그너처인데, 이번에도 대형 코끼리를 설치해 눈길을 끈다.





올해 평생공로상을 받은 작가 카타리나 프리슈의 ‘Elephant’(1987).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Roberto Marossi
코소보 국가관을 장식한 야쿠프 페리 (Jakup Ferri)의 ‘The Monumentality of the Everyday’.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Photo by Andrea Avezzù


또 다른 수상자 세실리아 비쿠냐는 지난해 열린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하며 한국 관람객의 기억에 자리했고, 올가을에 열리는 런던 테이트 모던 ‘현대 커미션’ 작가로 선정되는 등 명성을 떨치는 작가다. 생태계·공동체·사회정의 등 이슈를 주제로 돌이나 나무, 조개껍데기 같은 자연 재료와 전통 직조 기술을 더한 작품을 선보인다.
지금껏 베니스 비엔날레가 이렇게 많은 여성의 손을 들어준 적은 없다. 세실리아 알레마니 총감독은 <가디언(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동안 많은 여성 작가와 일했고, 내 생각에 현시점에서 가장 재능 있는 예술가 중에는 분명 여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전시의 남녀 비율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그 점에 집착하고 그동안 미술계를 남성이 지배해왔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놀랍다”라며 일침을 가했다. 또 “(예술에서) 작가의 성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전히 문제가 되는 대목이다. 우리는 평등과 먼 세상에 살고 있다. 특히 예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반영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별을 거론하고 싶지 않고 페미니스트 쇼라고 주장하지도 않지만, 베니스 비엔날레가 그동안 불평등한 전시를 해왔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 역사를 반영하고, 역사의 일부가 누구인지, 역사에서 누가 배제됐는지 반성해야 한다”라며 또 다른 매체를 통해 밝힌 알레마니 총감독의 말은 생각할 거리를 낳는다.
예술의 역사에 남은 이름은 대부분 남성 작가다. 그동안 수많은 여성 예술가가 남성 중심 세계관 때문에 주류에 끼지 못하거나 역사에서 아예 지워졌다. 오랫동안 인고의 시간을 견딘 여성 미술가가 이제 무대의 중심에 섰다.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한 많은 여성 예술가도, 수상 작가도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주목받을 필요가 없는 뛰어난 작가들이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최초의 여성 중심 비엔날레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나아가 이번 비엔날레를 계기로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길 바란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사진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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