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와인을 탐하는 이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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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4

부르고뉴 와인을 탐하는 이유

크리스탈와인그룹 이준혁 대표가 풀어놓은 생생하고 흥미로운 부르고뉴 와인 이야기.

부르고뉴 그랑 크뤼 레드 와인 샹베르탱 클로 드 베즈(Chambertin-Clos de Beze)의 포도밭.

부르고뉴(Bourgogne) 와인은 까다롭고 섬세하다 보르도 와인은 주로 카베르네 소비뇽을 베이스로 하지만, 최상의 상태가 아닐 땐 메를로, 프티 베르도, 카베르네 프랑, 말베크 등의 품종과 함께 블렌딩함으로써 맛과 향을 끌어올릴 수 있다. 까다롭게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반면,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는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포도 상태가 금세 나빠진다. 기후에 따라 편차가 심한 만큼 관리는 물론 재배하기도 까다롭다. 영어식으로 버건디(Burgundy)라 일컫는 부르고뉴는 주로 피노 누아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포도의 관리가 더 중요하다. 더구나 부르고뉴 지역은 봄에도 서리가 내린다. 4월경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싹눈이 얼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 해에는 자연히 생산량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부르고뉴의 북쪽에 위치한 샤도네이 생산지 샤블리(Chablis)에서 2016~2017년 즈음 실제로 이러한 날씨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2016년에는 수확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갑자기 우박이 내려 포도가 다 떨어지며 초토화되었고, 2017년에는 서리로 인한 피해를 입은 것. 4월에 비가 계속 내리거나 서리가 심하면 포도밭에 헬기를 띄워 습기를 날리는 작업도 한다. 혹은 곳곳에 불을 피워 따뜻한 열기를 유지한다. 성공적 빈티지 생산을 위해서는 7~8월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그렇게 봄의 추운 날씨를 이겨낸 후에도 여름에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면 물기를 과도하게 머금은 포도의 당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르고뉴 지역은 2015·2019·2020년 햇빛이 잘 드는 더운 날씨가 이어진 덕에 좋은 빈티지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더워도 문제가 된다. 최근 갈수록 이상 기후라고 할 만큼 날씨가 점차 더워지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올해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에서 포도밭에 자연현상이 아닌 인위적으로 물을 주면 안 되는 AOC의 규칙을 풀고 예외적으로 허가를 내릴 정도로 뜨거운 날씨가 이어졌다.
와인메이커가 중요하다 어떤 마을에서 어떤 해 생산한 와인인지, 즉 포도밭과 빈티지에 따라 품질이 좌우되는 게 기본이지만 부르고뉴 와인은 무엇보다 생산자가 중요하다. 부르고뉴의 양조장 단위는 도멘(Domain) 또는 네고시앙(Negociant)으로 분류한다. 보르도의 샤토와 달리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가 대부분이고, 그런 만큼 어떤 와인메이커가 만드느냐에 따라 환경과 기후 조건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좋지 않은 빈티지라도 솜씨 좋게 만들어내기 때문에 진정한 부르고뉴 와인 애호가는 가격적으로 더 접근할 수 있는 좋지 않은 빈티지를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부르고뉴 와인의 등급은 최상급 순으로 그랑 크뤼, 프르미에 크뤼, 빌라주 그리고 마을 단위 등급인 레지오날 와인으로 나뉜다. 빌라주와 레지오날 등급이 전체 부르고뉴 와인의 70~80% 정도를 차지한다. 국내에선 그랑 크뤼 또는 프르미에 크뤼만 찾거나 하위 등급을 폄하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와인메이커가 만들었는지에 따라 맛과 품질이 좌우되면서 오히려 빌라주와 레지오날 등급에서 더 비싼 와인이 생산되기도 한다. 일례로 본로마네 마을의 도멘 비조(Domain Bizot) 와인메이커인 장 이브 비조(Jean-Yves Bizot)가 만든 르 샤피트르(Le Chapitre)는 레지오날 등급에서 생산한 와인인데도 웬만한 그랑 크뤼급 와인 열 병보다 비싸다. 와이너리 이름만 알려진 보르도와 달리 부르고뉴 와인은 도멘 비조처럼 생산자 이름과 와이너리 이름이 동일한 경우가 많다. 그만큼 와인메이커의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이러한 부분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로 도멘 르루아(Domain Leroy)를 들 수 있다. 이곳의 와인메이커는 ‘랄루 비즈 르루아(Lalou Bize Leroy)’로, “부르고뉴의 위대한 부인”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는 인물이다. 90세가 넘은 와인메이커인 그녀는 2004년 이후 1년에 한 달만 부르고뉴에 머물고 나머지 기간에는 대부분 여행을 떠나 휴식을 취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만든 와인은 최근 3년 사이 가격이 10배 정도나 올랐다. 생산량은 줄어들었지만 구매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가문의 생산자인 리샤 세갱(Richard Seguin)의 즈브레 샹베르탱(Gevrey Chambertin).
부르고뉴의 젊은 와인메이커 샤를 라쇼(Charles Lachaux)의 와인 중 유일한 화이트 와인인 샤를 라쇼 알리고떼.
도멘 비조 부르고뉴 샤피트르.


부르고뉴 와인이 비싼 이유 최근 2~3년 사이에 가격이 아주 많이 올랐다. “미쳤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날씨의 악조건으로 수확량이 적어진 탓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이전보다 부르고뉴 와인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한 덕분이다. 단순히 지금 당장 마시고 즐기기 위함이 아닌, 투자 목적으로 사는 이도 많아졌다. 셀러에서 보관만 잘하면 되고, 10~15년간 묵혀두었다 팔아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때문이다. 생산량은 한정된 반면, 찾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니 가격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라피트 로칠드와 무통 로칠드 같은 보르도 와인은 연간 생산량이 10만~20만 병 이상이다. 같은 그랑 크뤼급 부르고뉴 와인인 로마네 콩티는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4000병, 많아도 7000병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역시 그랑 크뤼급인 도멘 르루아의 르루아 뮈지니 와인은 1년에 600~900병 정도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그중 2005년 빈티지는 2008년 즈음만 해도 프랑스 현지에서 1300유로, 한화로 180만~200만 원 선으로 구매했는데, 지금은 1억 원을 웃돈다. 좋은 빈티지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다. 아무리 비싸도 금세 팔린다. 로마네 콩티의 경우 부르고뉴 현지 레스토랑에선 시장가보다 3분의 1 정도 낮은 가격이었지만, 지금은 일반 시장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크리스탈와인그룹에서 도멘 비조의 와인을 2013년 수입·판매하기 시작한 이후 2019년 빈티지를 내놓았을 땐 한 병이라도 구하고 싶다는 전화를 수십 통 받기도 했다. 특히 2016년 빈티지 이후에는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음에도 많은 애호가들이 도멘 비조의 와인을 구하기 위해 애쓸 정도로 최고의 실력으로 만든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부르고뉴 와인 즐기기 부르고뉴 와인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단계라면, 처음부터 꼭 값비싼 가격의 와인을 고를 필요는 없다. 부르고뉴의 일반 레드 와인, 부르고뉴 루주(Rouge) 중 저렴한 레지오날급 와인부터 천천히 맛볼 것을 권한다. 여러 경험을 쌓으며 입맛을 들인 후 점차 높은 등급으로 옮겨가는 것이 좋다. 단, 피노 누아를 마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섬세한 품종인 만큼 온도를 잘 지켜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상온에 두지 말고 마시기 1시간 전 냉장고나 셀러에 넣어 15~16℃ 정도로 약간 차갑게 유지해야 한다. 또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뿐 아니라 호주나 뉴질랜드, 미국산 피노 누아를 다양하게 즐겨보는 것도 좋다. 부르고뉴산은 빌라주 등급도 10만 원이 훌쩍 넘는 와인이 많지만, 신세계 피노 누아는 10만 원 미만 가격대에서도 꽤 수준 있는 와인을 고를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취향을 알고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사진 제공 크리스탈와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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