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리서에 담긴 새로운 영감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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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01

고조리서에 담긴 새로운 영감

조선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음식을 기록한 고조리서는 지금 시대에 맞게 변형할 수 있는 새로운 영감으로 가득하다. 기록을 토대로 우리 식문화의 재현과 해석을 오가며, 새것을 익히는 온고지신 정신을 전한다.

함경도 해주 온반
여름철 체력 보강을 위해 흑미와 백봉오계를 사용한 블랙 푸드 컨셉의 보양식. 온반이 처음 등장한 <계미서>(1554)와 일제강점기 한국 요리를 보전하기 위해 쓴 <조선료리>(1970)의 기록을 접목했다. 김치나 전, 두부 같은 웃기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기호에 맞게 찬으로 먹을 수 있도록 생략했다. 특히 <계미서>에서는 온반을 ‘밥에 따뜻한 육수를 붓고 꿩고기, 가늘게 채 썬 무청김치, 다시마전, 두부, 잣 등을 올려 먹는 국밥’이라 소개하는데, 500년 전과 지금의 구성에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눈앞의 온반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묵직한 존재감의 거믄목기 합은 김전욱 작가 작품으로 HAUS.YOON, 거친 흙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면기는 1250˚C, 한자가 적힌 책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색으로 차린 다과상
조선시대 어의를 지낸 이시필이 쓴 종합 정보서 <소문사설>(1720년경) 중 조리에 관한 ‘식치방’ 편은 임금에게 올린 호사스러운 음식을 다루고 있다. 더덕 껍질을 벗겨 넓게 편 뒤 쓴맛을 빼고 찹쌀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진 사삼병과 여린 쑥에 찹쌀가루를 묻혀 튀긴 애병이 그 예다. 이에 한식의 특징인 오색오미를 살리기 위해 금귤 과편, 흑임자 다식, 산딸기 정과와 함께 한 차례 삶은 통보리에 전분을 묻혀 삶기를 서너 번 반복한 뒤 통통하고 투명한 옷을 입은 보리를 금귤청으로 만든 꿀물에 띄운, 감칠맛 나는 보리수단을 곁들였다.

빈티지 연적과 벼루는 모두 대흥당 필방, 청록빛 디저트 플레이트는 1250˚C, 오묘한 빛깔의 은칠 사발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세 가지 제철 만두
<임원십육지>(1835년경) 등의 기록에 남아 있는 여름 만두의 특징은 익힌 소를 넣어 만두를 빚었다는 것. 음식이 쉬이 상하지 않게 하려는 조상의 지혜였을 것이다. 투구 모양 하어순두는 투명한 라이스페이퍼를 만두피로 활용해 익힌 담양 분죽 죽순, 태안 자연산 대하, 제주 햇고사리가 들어간 소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비치는 것이 특징이다. 작자 미상의 한글 조리서 <주식방문>(1847년 또는 1907년 추정)에 등장하는 편수는 마무리 단계에서 장국에 삶는 대신 먼저 김이 오른 찜통에 찐 뒤 차가운 양지 육수를 만두 위에 부어 냉만둣국으로 변형한 것. 냉만둣국이지만 금방 찐 만두가 야들야들하며, 밀가루로 만든 피와 소고기·표고버섯·숙주 등 만두소를 얼음 육수와 곁들이면 차가운 냉면과 다른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1670년경) 속 동아 느르미는 동아의 맛과 향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상의 표고버섯·참버섯 등을 제외했으며, 닭 가슴살을 곱게 다져 넣어 식감이 부드럽다.  

그레이시 플레이트는 IAAC CRAFTS, 빗살이 새겨진 긴 플레이트와 검은색 굽 접시는 모두 1250˚C, 드로잉한 듯한 플레이트는 Ali Tomlin 작품으로 FINORK, 세밀하게 조각한 문진은 대흥당 필방.





상추쌈 한상차림
푸성귀에 밥을 싸 먹는 쌈 문화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식문화 중 하나다. 총 800여 종의 전통 음식과 함께 서양, 일본, 중국 조리법이 포함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에서는 상추쌈 차림과 먹는 방법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상추를 뒤집어 매끄러운 안쪽을 손바닥에 얹는 것부터 시작해 밥과 찬을 올려 마지막은 반드시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싸 먹고, 찬 성질의 쌈을 먹은 후에는 계지차로 마무리한다는 다소 절도 있는 과정이 적혀 있다. 여기서는 상추 외 쑥갓, 실파, 깻잎, 참나물 등 제철 잎채소에 약고추장, 민어감정, 장똑도기, 절미된장조치, 보리새우볶음, 참기름 등 쌈장 개념의 여섯 가지 찬을 내는 것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에 흰 쌀밥 대신 비빔밥을 곁들여도 좋다.

은하수 같은 패턴이 담긴 뚜껑 겸 접시와 밥그릇, 나팔 접시 모두 윤상현 작가 작품으로 ILSANGYEOBACK.





담양 토종 분죽을 사용한 죽순채
“죽순을 물에 담갔다 쇠고기나 꿩고기 같은 것을 다져 넣은 뒤 표고버섯, 석이버섯을 넣는다. 여기에 갖은양념을 한 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밀가루를 조금 넣어 볶는다. 먼 곳에서 절여 온 죽순은 며칠 물을 갈아가며 짠맛을 우려낸 뒤에 쓴다.” <규합총서>(19세기 초)에 적힌 죽순나물 조리법을 해석한 내용이다. 이에 착안해 5월 중순부터 6월까지 수확하는 담양의 분죽 죽순을 쌀뜨물로 삶은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양념한 한우 등심, 표고버섯과 함께 볶고 한재 돌미나리, 숙주를 넣어 아삭함을 살렸다. 초여름의 향긋함과 어우러지도록 감식초와 홍시즙을 양념으로 곁들였다.

빈티지 붓은 모두 대흥당 필방, 투각 필통과 백토의 담백함이 살아 있는 사각두부 연적 모두 이영호 작가 작품으로 규반 소장품, 사군자와 모란 무늬의 문양 한지로 제작한 테이블 매트는 TWL SHOP, 이예원 작가의 청자 볼은 HAUS.YOON, 두툼한 붓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세 종류의 율무죽
<식료찬요>(1460)는 조선 전기 의관 전순의가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식의서이자 가장 오래된 식이요법 책이다.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을 통해 간단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적혀 있다. 의이 또는 응이는 일종의 율무죽으로, <식료찬요>에서는 장과 위장을 이롭게 하기 위해 물에 율무 가루를 넣고 삶은 죽을 공복에 섭취할 것을 권한다. 율무를 팬에 볶아 곱게 간 뒤 물을 부어 쑨 의이에 제철 재료인 삶은 완두 앙금과 오미자청을 넣어 각각 끓였다. 주재료인 율무의 담백한 맛에 완두의 풋내 나는 고소함, 오미자의 상큼달달함이 초여름 입맛을 북돋운다.

소사나무 분재는 CHAT TELE, 유려한 곡선의 유리 화병은 김동완 작가 작품으로 JANGSAENGHO, 단아한 검은색 볼은 JEONG JEEWON 작가 작품, 불투명한 유리 다완은 이지은 작가 작품으로 SOLUNA LIVING, 오침안정법으로 제작한 전통 책은 지희승 작가 작품으로 HANJILIFE, 붓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교하게 조각한 먹은 대흥당 필방, 조성희 작가의 깊은 볼은 JANGSAENGHO.



 Special Thanks to  김지영 셰프
철저한 고증을 거친 고조리서의 기록을 토대로 의학, 인문학, 역사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 식문화에 접근해나가는 김지영 셰프. 그가 이끄는 한식 다이닝 ‘규반’은 궁중 음식과 반가의 식문화가 깃든 건강한 계절 음식을 선보이며, 한국 식문화의 전통과 의미를 되새긴다.

 

에디터 손지수(프리랜서)
사진 임태준
요리 김지영(규반)
푸드 스타일링 이승희(스타일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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