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살아 숨 쉬는 고대의 허파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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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8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고대의 허파

문화 칼럼니스트 정준호가 전하는 이탈리아 여행기 두 번째, 베로나와 <아이다>.

위쪽 산피에트로성에서 내려다본 베로나의 로마 원형극장.
아래왼쪽 만토바의 팔라초 테 내 거인의 방 천장화.
아래오른쪽 라다메스 장군 역할을 맡은 한국인 테너 이용훈. Fondazione Arena di Verona

만토바의 자부심
베로나의 이틀째 아침, 나는 가까운 만토바로 향했다. 만토바는 작지만 자랑거리가 많다. <아이네이스>를 쓴 로마 시인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트로이가 멸망한 뒤 유민을 이끌고 탈출한 아이네이스가 카르타고를 떠나 이탈리아에 도착해 건국하는 이야기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와 더불어 3대 서사시로 꼽히는 이 고전의 작가는 <신곡>에서 단테를 안내하는 길잡이로 등장한다. 르네상스 다성 음악을 마감하고 바로크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곡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만토바 영주 밑에서 일할 때 오페라 <오르페오>를 썼다. 오페라 장르의 첫 모습인 이 곡은 1609년 만토바 궁정에서 초연되었다. 서곡의 휘황한 팡파르는 언제 들어도 거의 주술적이다. 이후 몬테베르디는 만토바를 떠나 베네치아로 갔지만, 거꾸로 베네치아의 안토니오 비발디는 만토바 합스부르크 총독에게 기막힌 프로젝트를 의뢰받는다. 네 계절의 변화를 담은 협주곡이 이때 탄생한다. <오르페오>와 <사계>라면 거의 바로크시대 전체를 지탱할 만한 영감의 산물이다. 만토바의 초석을 다진 것은 군주 프란체스코 곤차가와 그의 아내 이사벨라 데스테로, 르네상스 예술의 중요한 후원자였다.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는 부부의 초청으로 만토바에 온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그가 이사벨라를 위해 그린 스투디올로 그림은 현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만토바 궁전 내 ‘신부의 방’에 그린 프레스코화까지는 프랑스가 떼어가지 못했지만. 내가 오랫동안 보아온 <이탈리아 궁정의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책 표지 그림도 바로 이 작품의 일부다. 한편 1500년에 태어난 페데리코 2세는 라파엘로의 제자 줄리오 로마노를 만토바로 초대한다. 궁전 내 ‘트로이아 방’에 그린 그의 벽화에는 만토바를 북부의 로마로 만들고자 했던 의뢰인의 포부가 담겨 있다. 또 로마노가 설계한 팔라초 테(Palazzo Te)는 수많은 유럽 궁전의 모델임을 뽐낸다. 샹보르와 슈농소, 퐁텐블로, 햄프턴 코트 따위다. 심지어 만토바의 영주는 가상의 세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인공이 그렇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라고 노래하는 영주의 광대가 리골레토이며, 만토바 관광 안내소가 ‘리골레토의 집’에 자리한다.

논란 속 베로나
짧지만 강렬한 만토바에서의 인상을 뒤로하고 베로나로 돌아갔다. 폐막 전날 공연작은 기대하던 베르디의 <아이다>였다. 100년 전인 1913년 조반니 체나텔로가 고향의 로마 유적에서 축제를 열기로 하고 무대에 올린 바로 그 작품이다. 특히 이번 <아이다>는 전통적 이집트 스타일의 연출이 아닌 스테파노 포다의 현대적 무대였다. 이날 여주인공은 마리아 호세 시리였다. 유럽 주요 무대에서 맹활약 중인 그녀는 2006년부터 베로나에 거주하며 축제의 여주인공 역할을 섭렵하는 중이다. 이미 같은 연출에 안나 네트렙코가 출연해 주목받았는데, 두 사람 모두 이 시대 최고 프리마돈나인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기도 하다. 베로나 축제로서 이번 무대는 일종의 시험대였다. 배경상 흑인인 아이다나 오텔로의 배역은 전통적으로 얼굴과 몸에 검은 칠을 해왔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는 뿌리 깊은 인종 비하라는 비판을 받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2015년부터 모든 공연에서 인종 분장을 폐지한다고 공표했다. 2019년 베로나에서 아이다를 맡은 성악가 가운데 한 사람인 미국의 백인 소프라노 타마라 윌슨은 두 번째 무대에서 화장을 옅게 바꿨고, 세 번째 무대에서는 자진 하차했다. 그때 기존의 전통대로 진행하던 흑인 분장을 하고 아이다가 된 사람이 바로 우루과이 출신 소프라노 마리아 호세 시리였다. 코로나19로 한 차례 쉬어간 베로나 축제가 다시 한번 <아이다>로 홍역을 치른 것은 작년의 일이다. 그 중심에는 안나 네트렙코가 있었다. 그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벌인 전쟁 당시 푸틴에 대한 비판을 요구받았는데,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은 탓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선 유럽 여러 나라는 그녀의 이런 태도를 문제 삼지 않고 계속 중용했다. 베로나에서도 그녀는 이미 흥행 보증 카드였다. 이미 한 차례 논란이 된 네트렙코는 베로나에서 아이다의 전통적 흑인 분장을 옹호했다. 그녀가 SNS에 올린 분장 사진은 다른 성악가를 자극했다. 미국 흑인 소프라노 앤젤 블루는 지난 몇 년 사이 무섭게 성장한 신예인데, 미국을 넘어 유럽의 초특급 무대가 앞다퉈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그런 블루가 네트렙코의 사진을 보고 베로나 축제에 유감을 표하며 예정된 <라 트라비아타> 출연을 취소했다. 많은 미국 가수가 이에 동조했음은 물론이다. 베로나 축제는 전통을 고수했을 뿐이며, 2023년부터 새로운 <아이다> 연출을 무대에 올릴 것이라며 논란의 확산을 피해갔다. 하지만 짧은 역사 속에 다인종 국가를 이룬 미국에서 인종 비하는 용납할 수 없는 적폐일 터. 어쩌면 미국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이를테면 로마제국 때부터) 이 문제를 다뤄온 유럽에서는 그 못지않게 전통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지가 존립을 좌우하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100년 역사를 이어온 베로나 축제는 그간 사방에서 도전과 맞서왔다. 록 밴드나 아이돌 그룹의 초대형 무대가 수만 군중을 끌어모으는 작금의 시대에도 베로나는 그 흔한 스피커나 대형 스크린 없이, 오로지 전통적 발성에 의존하는 성악가와 로마가 도시에 남긴 선물인 아레나의 경이로운 음향만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그에 반해 베를린 발트뷔네, 빈 쇤브룬 여름밤의 음악회,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같은 후발 야외무대는 시작부터 스피커를 쓰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가. 이런 베로나를 두고 성악가 분장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은 지엽적인 문제로 비칠지 모른다. 베로나의 <아이다>가 중요한 이유는 수천 년 전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전쟁 통에 침략자인 이집트 장군과 망국 에티오피아 공주가 나눈 사랑 이야기가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장이자 한복판에 고대의 허파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아닌가!





위쪽 줄리오 로마노가 설계한 만토바의 팔라초 테.
아래쪽 <아이다>공연 속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와 포로로 잡혀온 아이다. Fondazione Arena di Verona

오늘날의 베로나와 <아이다>
<아이다>를 연출한 스테파노 포다는 이미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 국립오페라와 작업한 스타 연출가다. 무거운 짐을 진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는 의상과 무대, 조명에서 모두 파격을 선보였다. 비유하자면, 포다의 무대는 영화 <듄>의 시각적 인상을 <아이다>와 결합했다고 할까. 그가 연출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관(冠)을 쓴 왕족과 민머리 제사장은 <듄> 같은 판타지물이 오히려 이집트 벽화를 참고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창(槍)을 든 군대나 온통 검은 옷으로 무대와 섞여 존재감이 희석된 노예는 오늘날 군중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날 가장 눈에 띈 것은 고전 연출에서 중앙을 장식할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자리에 선 손이었다. 인류가 유한한 존재인 한 벗어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손’을 형상화한 장치다. 그것은 인간을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권력이자 시스템, 운명이다. 포다는 이 손을 활용해 자신이 세속의 성당이라 믿는 극장의 공동체 제의적 역할을 충실히 재현했다.
평소 베로나 관객 상당수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온 오페라 팬들이다. 내가 앉은 프레스석에서도 온통 독일 말만 들렸다. 그 가운데 널리 알려진 저널리스트이자 영향력 있는 유튜버가 연출에 대해 소리 높여 불평했다. “이건 라스베이거스이지 오페라가 아니야!” 나는 그가 베로나의 영향력을 간과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전통에 대해 그 유튜버보다 더 많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베로나는 바그너의 성지인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나 모차르트의 고향에서 열리는 잘츠부르크 축제와 경쟁하는 동시에, 오늘날 록 밴드나 스크린 콘서트와 맞서야 하는 최전선에 있다. 그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열리며 동원하는 관객은 바이로이트나 잘츠부르크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번 베로나 축제에서도 많은 관객이 피라미드와 거대 신전의 무대를 기대하고 베로나에 왔을 테다. 이에 베로나는 손쉬운 볼거리가 아닌 새로운 도전으로 그들을 맞았다. 이참에 아이다도 블랙 페이스가 아닌 판타지 주인공처럼 분장했다. <아이다>가 별을 향해가는 단테의 여정과 같다고 말한 포다의 말처럼 ‘운명의 손’은 마지막으로 관객을 향해 위압적 파괴가 아닌 평화와 희망의 손짓을 했다.
앤젤 블루와 베로나는 과연 화해할까? <오르페오>와 <사계>를 낳은 만토바, 한편 언뜻 어떤 작곡가도, 초연된 곡도 떠오르지 않는 베로나가 오늘날 각기 어떤 위상으로 바뀌었는지 실감하며 창작과 전통, 계승과 발전이라는 문제가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새삼 곱씹었다. 드디어 내일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라 트라비아타> 차례다.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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