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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0

브로드 미술관, 그리고 LA의 미래

세계 10대 컬렉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LA의 거부 일라이 브로드. 그가 설립한 브로드 미술관이 마침내 지난 9월 20일 개관했다. 2000점에 달하는 최고의 현대미술 컬렉션이 모인 개관전, 그 화제의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LA 그랜드 애버뉴에 오픈한 브로드 미술관 전경




브로드 미술관 3층 전시실에서 일라이 브로드 부부
Photo by Elizabeth Daniels




바버라 크루거, 신디 셔먼, 리처드 프린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3층 전시장
courtesy of The Broad and DIller Scofidio + Renfro, Photo by Iwan Baan

브로드 미술관(The Broad)은 LA 현대미술관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위치한 그랜드 애버뉴에 자리 잡고있다. 이곳은 LA를 뉴욕에 버금가는 예술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일라이 브로드(Eli Broad)가 야심차게 선택한 예술의 거리다. 개관 첫 주에 방문한 미술관에는 이른 아침부터 관람객이 긴 줄을 서 있었다. 온라인 예매는 이미 한 달치 예약이 끝났고, 당일 입장권 수는 제한되어 있어 조바심을 낼 만하다. 입장료는 무료. 30분마다 일정 수의 관람객을 입장시킨다.
LA의 기부 사업가로 유명한 일라이 브로드는 리투아니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회계학을 전공한 뒤 주택 사업과 보험회사로 부를 일군 인물이다. 1999년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은퇴한 후 벤처 기부 사업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기부 또한 일종의 투자로 여긴다. 즉 기부한 만큼 어떤 결과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연구소, 대학, 오페라하우스, 미술관 등에 그가 기부한 금액은 14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미술에 대한 애정이 두드러져 LA 현대미술관(MOCA) 설립을 주도하고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을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구제하기도 했다. 이사로서 LA 카운티 미술관(LACMA)의 성장에 기여한 바도 크다. 하지만 후원한 만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유명해 전시 내용이나 운영에 깊숙이 관여하다 작은 마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쟁을 치르듯 LA 미술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해가는 일라이 브로드를 두고 매거진 <뉴요커>에서는 ‘로스앤젤레스의 메디치’라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일라이 브로드가 LA 미술계의 지형을 바꿔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브로드 부부가 30여 년간 모은 컬렉션을 기증받기 위해 많은 미술 기관이 경합을 벌였으나 결국 일라이 브로드는 스스로 미술관을 설립하는 길을 택했다.




장 미셸 바스키아, ‘Untitled’, 1981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 ADAGP, Paris / ARS New York 2015, Photo by Douglas M. Parker Studio, L.A.




앤디 워홀, ‘Self’, 1966
ⓒAndy Warhol Foundation, The Broad




제프 쿤스, ‘Balloon Dog’, 1994~2000
ⓒJeff Koons, The Broad

브로드 미술관 설계는 건축사무소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가 맡았다. ‘베일과 볼트(Veil and Vault)’를 컨셉으로 했는데 사무실과 작품 수장고가 위치한 2층 구조물 전체가 ‘볼트’, 위에서 뚜껑을 덮듯 이를 감싼 백색 외벽이 ‘베일’이다. 볼트 아래와 위 공간이 각각 1층 로비 그리고 3층 전시실인 셈. 베일에 뚫린 구멍을 통해 자연광이 내부로 스며들도록 디자인했고, 산호를 연상시키는 건물의 파사드는 보행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미술관 로비에 들어서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콘크리트 벽과 그 사이의 에스컬레이터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차가우면서도 유기적인 형태가 마치 우주선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1층에 들어선 관람객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쿠사마 야요이의 설치 작품 ‘인피니티 미러드 룸(Infinity Mirrored Room)’. 한국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이 작품은 거울로 둘러싸인 방 안, 무한히 증식되는 빛 속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마주하게끔 유도한다. 2016년까지 전시할 예정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하니 넓은 전시실 한가운데서 제프 쿤스의 대형 조각 ‘튤립(Tulips)’이 관람객을 맞는다. 브로드 부부는 개인 컬렉터 중 제프 쿤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증명하듯 전시실 하나를 온전히 제프 쿤스에 할애했는데 초기 작품 ‘토끼(Rabbit)’를 비롯해 ‘마이클 잭슨과 버블(Michael Jackson and Bubbles)’, ‘풍선개(Balloon Dog)’ 등의 대표작을 볼 수 있다. 개관전은 대략 연대기에 따라 구성했지만 관람객의 동선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잭슨 폴록, 로버트 라우션버그, 재스퍼 존스가 1950년대를 대표한다면 1960년대에는 앤디 워홀을 필두로 로이 릭턴스타인, 에드 러샤의 팝아트가 소개되었다. 넓은 공간을 차지한 워홀의 전시실에는 작가의 자화상과 엘비스 프레슬리, 재클린 케네디의 초상이 걸려 있다. 1980년대의 전설적 작가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의 전시실도 인상적이다. 미셸 바스키아의 캔버스 작품 ‘눈과 달걀(Eyes and Eggs)’, ‘호른 연주자(Horn Players)’, 그리고 나무 패널 위에 자유분방하게 표현한 작품 ‘금빛 그리오(Gold Griot)’까지 전시되어 있다. 그리오란 아프리카 부족에서 구전설화를 이야기와 노래로 전하는 사람을 뜻한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다. 페미니즘의 대모 바버라 크루거의 유명한 작품 ‘무제: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Untitled: Your Body is a Battleground)’와 원형 전시실에 펼쳐진 캐라 워커의 흑인 잔혹사 ‘아프리칸트(African’t)’도 만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앞탁 트인 공간에서는 마크 브래드퍼드, 줄리 메레투 등 젊은 작가의 작품도 눈에 띈다. 크리스토퍼울, 데이미언 허스트,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등 미술 시장의 슈퍼스타들도 빠짐없이 작품을 내걸었다.




라그나르 캬르탄손, ‘The Visitors’, 2012
ⓒRagnar Kjartansson; Courtesy of the aritst, Luhring Augustine, New York, and i8 Gallery, Reykjavik

전시가 이어지는 1층을 향해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2층 수장고가 들여다보이는 창문이 나타난다. 언뜻 보이는 것이 릭턴스타인, 크리스토퍼 울, 알베르트 욀렌의 대형 캔버스 작품. 많은 소장품 중 전시 작품을 선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1층에 전시한 작품들 대부분 2000년 이후의 최근작이다. 이번 전시 작품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다카시 무라카미의 ‘저승에서 무지개 꼬리를 밟고(In the Land of The Dead, Stepping on the Tail of a Rainbow)’는 전시실 두 벽에 걸쳐 펼쳐졌다. 18세기 일본 족자 회화에서 영감을 얻어 25m 길이로 완성한 회화 작품이다. 아이슬란드 작가 라그나르 캬르탄손(Ragnar Kjartan sson)의 9채널 비디오 작품 ‘방문객들(The Visitors)’은 유일한 영상 설치 작품. 에드 러샤가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로 참가해 선보인 작품 ‘오래된 테크-켐 건물(The Old Tech-Chem Building)’도 볼 수 있었다. 에드 러샤뿐 아니라 존 발데사리, 마이크 켈리 등 미국 서부 지역 대표 작가의 작품을 공들여 소개한 것이 특징이다.
브로드 미술관의 컬렉션은 과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러한 현대미술 작품을 무료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미술관을 방문하는 대중에게 크나큰 혜택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브로드 미술관의 비전이나 큐레이터십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누구나 예상 가능한 스타 작가의 작품을 모아놓은 전시라 브로드 미술관이 앞으로 어떤 차별화된 미술 기관으로 자리매김할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이는 ‘브로드 미술관이 LA 미술계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도 연관된다. 일라이 브로드는 LA 현대미술관의 이사진으로 있을 때부터 성공적 미술관을 위한 몇 가지 공식을 강조해왔다. 소장품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큐레이터의 역할은 축소하며, 보다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일 블록버스터 전시를 강화할 것. 과연 그의 신념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술관의 역할에 부합할까? 이제 막 개관한 브로드 미술관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질문이다.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
황진영(큐레이터, 아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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