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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8

흙의 소리를 빚다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이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다. 진행자로 나선 뮤지션 하림이 만난 첫 번째 주인공은 전통 악기 ‘송훈’을 제작한 송경근 작가다.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 새로운 시즌의 진행자 하림과 송경근 작가.

하림 말로만 듣던 ‘송훈’의 실물을 실제로 보다니, 영광입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훈’을 선생님이 복원한 것이 바로 송훈이죠?
송경근 맞습니다. 훈에 대해 아는 걸 보니 놀랍네요.
하림 훈이라는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송경근 흙으로 만든, 사과만 한 옹기 같은 모양의 악기에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1997년 공명이라는 월드 뮤직 그룹을 만들었는데, 음악을 창작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소리를 내는 악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중 훈이라는 악기가 눈에 들어왔죠.
하림 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악기인데, 어떻게 직접 만날 수 있었나요?
송경근 처음엔 악기를 볼 수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훈을 더 이상 만드는 사람도, 연주법도 없어 사실상 명맥이 끊겼었죠.
하림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악기를 복원한 거네요. 더욱 놀랍습니다. 훈은 도자기 아닌가요?
송경근 복원할 때 처음부터 도자기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먼저 대나무로 죽훈을 만들어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하림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겠네요.
송경근 그럼요. 훈은 온도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가마에 넣기 전 먼저 타공한 뒤 음정을 잡아야 하는데, 가마에서 고온을 거치면 부피가 17% 정도 작아지고 음정도 변합니다. 이를 감안해 섬세하게 타공해야 하죠.
하림 선생님이 복원한 송훈이 원래 훈과 얼마나 유사한지 궁금합니다.
송경근 외형상으로는 90% 이상 원래 모습에 가깝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전통 훈은 지공이 5개지만 송훈은 제가 새로 찾은 여섯 번째 지공이 있고, 기존 지공에 비해 크기에도 변화를 주었기에 송훈의 악기 메커니즘으로 봐서 50% 이상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림 훈을 복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송경근 두 가지 조건을 꼭 지키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5개 지공과 입김을 불어넣는 취구의 위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공의 위치가 바뀌면 중국의 훈과 다를 게 없거든요. 두 번째는 아리랑처럼 전통음악 연주가 가능하도록 새로운 지공을 찾는다는 것이었어요.
하림 현재까지 남아 있는 중국의 훈이 아닌 한국의 훈을 제대로 복원했다는 말이군요.
송경근 우리나라 훈도 중국에서 건너온 악기지만 한국에서만 1000년을 이어왔고, 교과서에도 국악기로 소개하고 있어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우리 음악을 연주하는 한국의 악기로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송훈의 지공을 만드는 모습.

하림 원래 전통을 이어가는 것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송경근 전통을 이어가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걸 좋아했습니다. 저는 국악을 전공했는데, 우리나라 전통음악이 점점 더 좋아지더라고요. 국악기의 음색에도 정이 가고요.
하림 음악을 넘어 지금은 공예를 하고 계시네요.
송경근 음악 활동을 하다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 눈에 작은 대나무 조명을 만드는 영상이 눈에 들어왔는데, 무작정 따라 하고 싶어 나무 자르는 기계를 샀어요. 그런데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공예 작업의 행복을 느낀 거죠. 작은 대나무 조명에서 시작해 지금은 송훈을 만들고 있네요.
하림 훈의 외형도 외형이지만, 음도 재현하셨죠?
송경근 참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특히 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악기입니다. 동일한 운지법으로 음정이 달라지기도 해요. 예를 들면 6개 지공을 다 막고 불었을 때 나는 음이 고개를 숙이고 부르면 4도까지 떨어집니다. 관악기 중 대금도 비슷하지만 음이 이렇게 큰 폭으로 변하지는 않아요.
하림 정말 예민하고 까다로운 악기네요. 하지만 소리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송경근 저는 이 소리를 흙의 기운이라 말하고 싶어요. 흙은 어쩌면 인간의 근원이잖아요.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하고, 불교에서도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하죠. 저는 훈의 소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들었을 법한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림 흙의 기운이라니, 정말 인상적이네요. 마지막으로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 공식 질문입니다. 작가님에게 장인정신이란 무엇인가요?
송경근 ‘정직’입니다. 스스로도 ‘난 정직한가?’ 묻곤 해요. 과정이 힘들다고 요령을 부리거나 빠른 길로 가려고 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어요. 훌륭한 장인은 소재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고, 그 이해를 손으로 표현해냅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하려면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필요하고요. 정직한 자세로 임해야 가능한 일이죠.





위쪽 송훈을 연주해보는 하림.
아래쪽 송훈과 발베니 30년.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사진 김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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