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키퍼가 없는 자리
런던의 한 거실에서 시작된, 지성과 예술이 교차하는 새로운 네트워크 ‘아트로프트’에 대하여.

예술계에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미술관과 옥션 하우스, 세계적 갤러리들이 층층이 쌓인 도시 런던은 그 선이 유독 오래되고 깊다. 이곳에서 예술은 늘 문 앞에 섰다. 누구와 아는 사이인지, 어느 기관 소속인지, 명함에 적힌 직함이 무엇인지. 그것이 그 문을 열기도, 닫기도 했다. 그 선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진다. 그런데 최근, 런던 중심부의 한 로프트에서는 그 견고한 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미술비평가 파라 나예리(Farah Nayeri), 갤러리스트 안카 쿨티스(Annka Kultys), 그리고 큐레이터 조세핀 메이 베일리(Joséphine May Bailey)가 함께 만든 아트로프트(ArtLoft) 이야기다
아트로프트의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파라는 자신의 토크 시리즈를 열 공간을 찾고 있었고, 안카의 로프트를 본 순간 “런던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감탄했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그러나 필연처럼 살롱이 탄생했다. 누군가의 홈 파티처럼 친밀하고 따뜻하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대화는 깊고 진지하다. 격식이 없어서다. 조명이 부드럽고, 사람과 사람 사이 온기가 가까울 때 마음이 놓이고, 말의 결이 달라진다. 강단 위의 언어가 아니라, 생각이 아직 완성되기 전의 언어. 그 미완의 솔직함이 어떤 경계를 허문다. 이곳을 거쳐 간 이름들은 화려하다. 작가 아이작 줄리언(Isaac Julien)과 샹탈 조페(Chantal Joffe), 큐레이터 레이철 토머스(Rachel Thomas), 저자 윌 곰퍼츠(Will Gompertz),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줄리아 페이턴-존스(Julia Peyton-Jones)까지. 모두 파운더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망 속에서 자연스럽게 초대된 이름이다. 게이트키퍼의 검열 없이, 서로 오래 교감해온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깊이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거실에서 레이철 토머스는 “미술사를 배워라, 그리고 과감히 깨뜨려라”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윌 콤퍼츠가 언급한 “예술이란 그저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연결되고 이해받으려는 시도다. 그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라는 말은 그날 이후 내 안에 가장 깊이 자리 잡았다. 그 말이 오래 남은 이유가 있다. 연결되고 이해받으려는 시도. 그것은 이 로프트, 예술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다. 수많은 인터뷰를 해온 파라가 매번 반드시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인터뷰이의 어린 시절에 관한 것이다. 지금의 사회적 지위, 성공, 결실을 맺기 훨씬 전 유년기의 기억, 그때 맺은 관계, 수십 년이 지나도록 가슴에 새겨진 말과 순간순간이 한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피스이기 때문이라고 파라는 말한다. 윌 곰퍼츠도 이 질문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열여섯 살에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파라가 이유를 묻자,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학교 밖에 훨씬 재밌는 것이 많았다고. 호기심. 그 한 단어가 그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지난 11년간 런던 화이트큐브에서 일했다. 여러 메이저 전시를 동시에 준비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발은 땅을 딛고 있어도 나는 현재를 살지 못했다. 이미 다음 전시 준비에, 그다음 전시 준비에, 수년 후의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시간의 향기〉에서 현대의 가속이 ‘머무름(verweilen)’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는 것, 대화가 무르익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온기가 쌓이는 것. 그 모든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내가 잃은 것은 바로 그 머무름이었다. 전시는 오프닝 날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질문과 대화 속에서 비로소 확장된다. 그래서일까. 독립 큐레이터로서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지금 아트로프트의 풍경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네트워킹(그물망)’이라는 단어는 주로 사회적 기회의 언어로 쓰인다. 하지만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인간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회적 관계의 그물망 속에, 화학적 과정의 그물망 속에, 그리고 같은 인간 사이에서 교환되는 감정들의 그물망 속에 존재하는 매듭.” 우리에겐 이런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어디에 있든, 어떤 형식이든. 게이트키퍼 없이, 서로의 그물망이 되어주는 자리 말이다.
- 글 김예원(독립 큐레이터)
- 사진 아트로프트
- 에디터 김수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