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는 없다
동시대 미술이 어느 곳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뉴욕에서 가장 현재적인 질문을 던져온 뉴 뮤지엄. 2년간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열며 ‘신인류’를 주제로 택했다. 이곳이 말하는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미술’은 무엇일까?
다시 문을 연 뉴 뮤지엄(New Museum)은 오프닝 전시만큼이나 새 공간을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레노베이션을 맡은 OMA의 렘 콜하스와 시게마쓰 쇼헤이는 기존 건물 옆에 새 동을 덧붙이고 중앙의 큰 계단으로 두 건물을 연결해 한 층을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넓게 사용할 수도, 여러 전시를 병렬로 운영할 수도 있는 유연한 구조를 완성했다. 뉴 뮤지엄은 새로운 공간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에서 ‘신인류’라는 야심 차고도 방대한 주제의 전시 〈신인류: 미래의 기억(New Humans: Memories of the Future)〉을 선보였다. 전 층을 아우르며 15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는 그 규모부터 이례적이다. 이는 급격한 기술 변화의 중심에서 ‘새로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한 미술관의 본격적 시도다. 전시는 의외로 이 미래지향적인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시대를 반추하는 과정에서 찾는다. ‘로봇’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고 자동화된 공장 노동이 확산하던 1920년대의 정서와 불안이, 오늘날 AI의 급격한 발전과 기계화된 전쟁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시장 초입에는 인간을 기계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환원한 콩스탕탱 브랑쿠시와 마르셀 뒤샹, 엘 리시츠키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의 조각과 드로잉이 가득하다. 이름 그대로 ‘새로운(new)’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기 위해 1977년 개관한 이래 의도적으로 과거 작품을 배제해온 뉴 뮤지엄의 역사를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행보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모더니즘’과 ‘컨템퍼러리’를 극명하게 나누는 미술계의 관습을 생각하면 특히 더 그렇다. 이어 3층 전시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활동한 작가들이 홀로코스트와 원자폭탄의 충격에 반응해 기괴하게 변형시킨 인간과 동물의 형상들을 목격하게 된다. 금방이라도 형태를 잃고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세계의 종말을 겪어낸 듯한 형상을 담은 이케다 다쓰오의 드로잉이 그 예다.

지난 세기 인간이 서로에게 행한 폭력의 역사를 보며, 2026년을 사는 우리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전쟁과 충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시의 마지막 장인 4층은 날아다니고 기어다니며 소리를 내는 물체로 가득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움직이는 물체들이 뒤엉킨 이곳은, 학창 시절 미래 과학 도시를 상상하며 그리던 낙관적인 이상향과 사이버펑크 영화 속 디스토피아 사이 어딘가에 놓인 듯하다. 센서를 통해 관람객의 위치와 공기의 흐름, 다른 개체와의 거리를 감지해 움직이는 아니카 이의 헬륨 구조체 아래에는 끝내 실현되지 못한 20세기 도시계획 마케트와 도안이 자리한다. 그 옆으로는 도시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무분별하게 착취당하고 기형적으로 변해온 도시의 역사를 되짚는 작업이 이어진다. 상상한 미래와 실제로 구현된 현실이 나란히 놓이는 구성이다. 한편 석유 시추 드릴 헤드를 매끄러운 보라색으로 칠한 모니라 알 카디리의 대형 조각은 인간의 미래를 묻는 이 자리에서 기술과 욕망이 함께 만들어온 착취의 역사를 외면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인간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도 함께 정의하게 한다. 그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로봇 홀’이라 이름 붙인 공간에는 1세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의 로봇부터 오늘날 활발히 활동하는 메리엠 베나니의 격렬하게 흔들리는 기계장치까지, 사람 형상의 사이보그가 한가득 모여 있다. 무언가 전하려 애쓰는 듯한 이들의 움직임은 공포와 연민, 묘한 동질감을 동시에 자극한다. 40여 년 전 도나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선언’에서 밝혔듯,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경계란 만들어진 허상이 아니던가. 전시를 보고 클라라 호스네들로바의 거대한 커미션 작품이 설치된 아트리움 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천연염료로 염색한 실을 손으로 엮어 만든 섬유가 4개 층을 따라 계단을 감싸며 바닥까지 이어지고, 그 사이엔 유리로 만든 발톱 같은 형태가 박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은은한 흙 내음이 퍼졌다.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끝내 내릴 수 없었지만, 지금 살아 있다는 감각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뉴 뮤지엄의 새로운 공간에서 이어질 전시가 혼란스러운 지금 우리의 감각을 더 오래 붙잡아주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