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쉐론 콘스탄틴과 김준수 작가의 협업 프로젝트 ‘Timeless Flow’
바쉐론 콘스탄틴과 김준수 작가가 엮어낸 시간의 조형.

공예는 시간을 다루는 일이다. 재료를 이해하고, 손의 감각을 익히며, 반복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하나의 형태가 완성된다. 분야는 다르지만, 워치메이킹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많은 공정과 장인의 정교한 기술, 그리고 인고의 시간이 쌓여 하나의 시계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단순히 시계를 선보이는 곳이 아니라 각 도시의 문화와 고유한 서사를 담아내는 특별한 공간이다. 지난해 서울에 문을 연 세계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 메종 1755 서울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매년 다양한 한국 작가와 협업하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미감을 존중하고 메종을 관통하는 장인정신의 가치를 예술로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메종 1755 서울은 가죽공예 아티스트 김준수와 만났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김준수 작가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식물성 무두질 가죽을 접한 뒤 재료에 대한 인식을 넓히며 작업의 중심을 가죽으로 옮겼다. 그동안 가죽을 해체해 한 줄씩 쌓아 올리는 코일링 작업으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지만, 이번 협업에서는 기존의 쌓는 방식이 아닌 공간을 아우르는 몰입형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프로젝트 ‘Timeless Flow’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2026년 테마 ‘Explore All Ways Possible’에서 출발했다. 1819년 창립자 프랑소아 콘스탄틴이 남긴 “가능한 한 더욱 잘하라. 그것은 언제나 가능하다”라는 문장처럼, 작가 또한 기존 작업의 한계를 넘어 가죽이 지닌 조형적 가능성을 새롭게 정의했다. 이 작품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자연현상인 오로라에서 영감받았다. 작가는 가죽을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거대한 에너지와 흐름이 어떻게 입체적 형태를 띠는지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관람자는 한 곳에 머물러 작품을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걸음을 옮기고 시선이 달라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를 경험하며 시간과 움직임, 인식의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정교한 수작업과 반복을 통해 무형의 시간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김준수의 작업은 바쉐론 콘스탄틴이 추구하는 워치메이킹의 가치와 단단하게 맞물려 있다.

오른쪽 일정한 두께로 재단한 가죽을 하나로 엮어내기 위한 정교한 수작업 과정.
바쉐론 콘스탄틴의 워치메이킹과 가죽공예는 반복적인 수작업과 시간의 축적을 바탕으로 완성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번 협업을 진행하며 메종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 지점은 무엇인가요? 바쉐론 콘스탄틴은 271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왔습니다. 저 역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온 가죽이라는 재료 안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을 찾고자 탐구합니다. 시간의 축적을 가치로 삼고, 전통 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태도에서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이번 작업은 올해의 테마 ‘Explore All Ways Possible’에서 출발해 기존 작업 방식을 과감히 벗어났습니다. 어떤 새로운 시도를 접목하셨나요? 평소 고정된 좌대에 올리던 오브제 작업과 달리 이번에는 지름 약 3m의 거대한 규모로 천장에 매달아야 했습니다. 중력의 영향을 받기에 구조적 접근 자체가 완전히 달라야 했죠. 그래서 가죽을 겹겹이 쌓아 올리던 코일링 기법이 아닌 가죽끈 하나하나가 곡면을 이루며 흐름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Explore All Ways Possible’라는 테마를 증명하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오로라 이면의 보이지 않는 힘과 구조에 주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무거운 가죽으로 가볍고 유동적인 오로라를 표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까만 밤하늘에 일렁이는 오로라의 가벼움을 밀도 높은 가죽으로 구현하기 위해 가죽을 면이 아닌 선으로 만들고, 그 선이 모여 다시 면을 이루는 구조를 짰습니다. 그리고 끈과 끈 사이의 간격을 미세하게 조정해 그 여백 사이로 공기와 빛이 투과되도록 설계했죠. 무거운 재료임에도 오히려 빛이 흐르는 듯한 개방감과 율동감이 느껴지도록 의도했습니다.
메종 1755 서울은 바쉐론 콘스탄틴의 철학과 장인정신, 브랜드 정체성을 온전히 담아낸 공간입니다. 이곳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작품이 공간을 압도하지 않고 공간의 건축적 구조와 자연스럽게 호흡하기를 바랐습니다. 오로라 현상에서 느껴지는 시각적 색의 흐름을 가져오면서도, 메종을 상징하는 베이지·골드·네이비 등을 작품의 색채에 적극적으로 녹여낸 이유입니다. 또 관람객의 동선에 따라 매번 다양한 시점을 제공하도록 형태와 스케일도 세밀하게 조율했습니다.
작품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볼 때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관람객이 그 차이 속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길 기대하나요? 작품 전체와 부분이 맺는 관계를 온전히 경험하길 바랍니다. 웅장한 형태와 색채의 물결도 결국 손길이 닿은 작은 요소의 무수한 축적으로 완성된다는 것을요. 수백 개의 미세한 부품이 맞물린 시계의 무브먼트가 정밀한 시간을 가리키는 것처럼, 제 작품 속에서도 가죽의 디테일과 빛, 그리고 공간이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을 발견하셨으면 합니다. 1층에 들어설 때 밀려오는 묵직한 가죽 향까지 오감을 활짝 열고 감상하길 바랍니다.
작품명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이번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시간은 완성된 형태보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가 사용하는 식물성 무두질 가죽은 빛과 공기, 환경에 반응하며 천천히 변해가는 생명력 있는 재료입니다. 저는 이것을 노화나 낡음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자 기록으로 봅니다. 약 1년간 이어지는 전시 기간에 생기는 미세한 변화 역시 작품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수백 년간 장인정신을 이어온 메종과의 긴밀한 협업은 작가님에게도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새로운 화두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긴 세월 동안 시간을 기록해왔음에도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찾아내고 세상을 향한 열린 정신으로전례 없는 혁신을 멈추지 않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강력한 의지에서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주로 재료의 물성에 집중하는 경향이었는데, 이번 작업을 통해 작품과 공간, 그리고 관람객의 경험이 맺는 유기적 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작업의 확장성을 확인한 소중한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죠.
- 에디터 김소정
-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