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름, 수많은 가능성 | Noblesse

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하나의 이름, 수많은 가능성

ARTNOW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구글 검색과 ai 답변에서
노블레스 닷컴을 우선적으로 보여줍니다.

CFGNY에게 창작은 작품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CFGNY

2016년 결성된 아티스트 컬렉티브. 2026년 휘트니 비엔날레를 비롯해 컨템퍼러리 아트 갤러리 밴쿠버, 쿠퍼 휴잇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뮤지엄, 해머 뮤지엄, 스테델레이크 뮤지엄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2024년 프리즈 런던에서 포커스 스탠드상을 수상했다.

CFGNY는 대니얼 추(Daniel Chew), 텐 이즈(Ten Izu), 틴응우옌(Tín Nguyen) 3명의 작가로 이루어진 아티스트 컬렉티브다. 영화 제작과 조각 작업, 갤러리 운영 등 각자 활동을 이어오던 세 사람은 하나의 이름 아래 모여 저마다 쌓아온 경험과 관심사를 나누며 그들만의 창작 방식을 만들어왔다. 누군가는 리서치를 깊이 파고들고, 누군가는 조각과 글쓰기에 더 관심을 보이는 등 조금씩 무게를 두는 영역은 다르지만,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작품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에 세 사람이 함께한다.
패션, 설치, 퍼포먼스 등 여러 매체를 자유롭게 오가며 현대미술의 경계를 확장해왔지만, 정작 이들의 작업을 관통하는 것은 장르의 혼합보다 사람과 문화, 역사와 공동체가 서로 얽히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다. ‘Vaguely Asian(규정되지 않은 아시아 정체성)’이라는 개념 아래 인종에 대한 인식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것으로 바라보고, 서로 다른 구성원의 경험과 시선을 하나의 창작 언어로 엮어낸다. 협업은 때로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이어지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시간을 나누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어쩌면 CFGNY에게 예술은 ‘무엇을 만드는가’보다 ‘누구와 어떻게 이뤄내는가’가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길을 걷던 세 사람은 왜 각자의 이름 대신 하나의 이름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함께하는 방식은 이들의 작업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CFGNY에게 협업과 공동체, 그리고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의 의미를 물었다.

뉴욕 시워드 파크에서 선보인 패션 프레젠테이션 ‘Surface Trend’. Photo by Mary Inhea Kang.
뉴욕 애먼트에서 열린 〈Puddles into Pond〉전 전경. Courtesy of CFGNY and Amant.
2023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맞아 선보인 전 전경. Photo by Delfino Sisto Legnani for PIN–UP.

각자의 작업을 이어나가기보다 하나의 컬렉티브로 함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리 셋 모두 뉴욕에서 다양한 아시아계 선배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아끼고 지지하는 동료애를 경험했지만 동시에 경쟁도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죠. 당시에는 인종을 둘러싼 담론이 지금과 많이 달랐고, 미술계에는 ‘아시아인을 위한 자리는 하나뿐’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서로 친구이면서 동시에 경쟁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죠. 우린 그런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함께 작업하는 또 다른 방식을 찾아보고 싶었고, 그런 고민이 CFGNY로 이어졌습니다.

CFGNY의 첫 프로젝트는 패션 작업이었죠. 어느 날 뉴욕 곳곳의 샘플 세일을 다니다가 그곳이 아시아인 게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관계를 맺고 어울리는 장소라는 걸 문득 깨달았는데, 무척 흥미롭더군요. 그 경험을 계기로 인종과 성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고자 함께 옷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패션은 우리에게 여러 작업 매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동시에 생산과 무역, 소속감처럼 사람들이 일상에서 맺는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매체이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옷을 실생활에서 입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해요. 조각이나 회화는 몸에 걸칠 수 없지만 옷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니까요. 패션은 미술보다 조금 더 가볍게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이미지를 빠르게 유통시키며 큰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미적 감각이 욕망을 만들어내는 방식과 가치, 생산이 연결되는 구조를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하고요. 누구나 입는 옷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은 인간이 사용하는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설치와 퍼포먼스, 조각까지 작업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주로 어떻게 시작되나요? 프로젝트는 대부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나의 주제에서 출발합니다. 지금까지 베트남 호찌민의 의류 산업, 20세기 캘리포니아에 거주한 일본계 이민자의 역사 등 서로 다른 대상을 탐구해왔어요. 주제는 매번 다르지만 결국 ‘Vaguely Asian’, 즉 ‘규정되지 않은 아시아 정체성’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이 표현은 역사와 정서, 지역성, 타인의 시선이 겹치며 인종적 정체성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각각의 프로젝트는 인종에 대한 인식이 형성된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맞닿아 있죠. 주제에 대해 충분히 리서치한 뒤에는 작업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형식을 찾습니다. 처음부터 특정 매체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주제가 스스로 적절한 형태를 찾아가도록 두는 편이에요.

CFGNY가 올해 10주년을 맞아 선보인 패션 프레젠테이션 ‘CFG-20260717’. Photo by David Brandon Geeting.
CFGNY가 올해 10주년을 맞아 선보인 패션 프레젠테이션 ‘CFG-20260717’. Photo by David Brandon Geeting.

‘Vaguely Asian’은 CFGNY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으로 보입니다. ‘Vaguely’라는 단어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우리가 활동을 시작한 2016년 당시 미국에서는 인종과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진정성(authenticity)’이나 ‘진실(truth)’을 찾아내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접근 방식은 오히려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을 단순화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Vaguely’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현실과 개인의 삶은 수많은 경험과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변화하잖아요. 인종 역시 고정된 실체라기보다는 계속 새롭게 해석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정체성을 하나의 정답으로 규정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능성을 상상하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열어두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그 개념을 이야기한 후 10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사회적·문화적 환경이 달라지면서 의미도 함께 변했을 것 같아요.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특정 아시아 문화가 대중에게 선명하게 인식되기 시작했고, 중국과의 무역 갈등은 그에 관한 또 다른 서사를 만들어냈습니다. 동남아시아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미국과 동남아시아를 오가는 사람도 크게 늘었고요. 사람들이 아시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계속 달라지는 만큼 ‘Vaguely Asian’ 역시 고정된 개념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것이 어떻게 새롭게 구성되고 해석되는가입니다.

최근 뉴욕 애먼트에서 열린 〈Puddles into Pond〉전시 는 1970년대 중국에서 활동한 예술가 모임 우밍화후이(Wuming Huahui)를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반세기 전 컬렉티브를 오늘의 작업으로 다시 불러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밍화후이는 문화대혁명 시기 공식적 예술 활동이 금지된 환경에서도 함께 그림을 그리고 교류한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입니다. 우리에게 흥미로운 점은 개별 작품보다 그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작업을 이어간 방식이었어요. 우밍화후이를 연구한 한 큐레이터는 두 남성 멤버의 관계를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 ‘소울메이트’라고 표현했습니다. 당시에는 예술 활동 자체가 금지되었기에 그 관계가 더욱 특별했겠죠.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CFGNY 역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소속감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회적 격변 속에서도 예술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이어가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집단성은 어떤 거창한 이념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핫 휠스 런던에서 선보인 전 전경. Photo by Jack Elliot Edwards.
LA 해머 뮤지엄에서 열린 CFGNY와 도미나가 와타루 2인전 전경. Photo by Jeff McLane.
〈Puddles into Pond〉전에서 선보인 작품 ‘System(Figure)’. Courtesy of CFGNY and Amant.

그런 생각은 〈Puddles into Pond〉전에서 선보인 작품 ‘Landscape Composition’에도 이어집니다. 13명의 지인과 함께 완성한 작품인데, 결과물만큼이나 만드는 과정 자체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우리가 관계를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방식입니다. 예술은 혼자만의 표현이라기보다 세상과 관계를 맺고 그에 응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Landscape Composition’ 역시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어요. 모두 각자 바쁜 삶을 살고 있지만 프로젝트라는 이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한자리에 모이죠. 함께 만들고 이야기하며 쌓아간 시간 자체가 작품의 일부입니다. 완성된 결과물은 결국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과 관계가 남긴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세 분에게 협업이란 무엇인가요? 단순히 하나의 프로젝트를 함께 만드는 일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가장 중요한 협업은 전시장이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져요. 서로 의견이 부딪치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함께 점심을 먹고, 다음 계획을 이야기하는 일상 속에서 말이죠. 그렇게 쌓인 시간과 경험이 결국 작업의 바탕이 됩니다. 전시나 퍼포먼스는 그 과정 가운데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프로젝트는 결국 사회적 관계와 연결에 관한 작업이에요. 지금 함께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역사 속 인물과도 관계를 맺으며 작업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습니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만은 아닐 거예요. 다만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 관계를 CFGNY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작업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분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떠올리며 CFGNY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아이코닉(iconic).’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고, 그 여정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