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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를 만나는 시간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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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이름 너머에서 다시 만나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세 가지 얼굴.

애거사 크리스티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났다. 에르퀼 푸아로와 미스 마플을 탄생시키고 수많은 독자를 완벽한 미스터리의 세계로 끌어들인 그의 이름 앞에는 여전히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새롭게 출간되는 책들을 살펴보면 익숙한 이름 뒤에 가려진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추리소설로는 다 담지 못한 내밀한 감정을 기록한 작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실종 사건의 주인공이던 한 여성, 그리고 후대 작가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창작자까지. 애거사 크리스티는 여전히 새롭게 읽히고 있다.
<하객 명단>과 <미드나이트 피스트>로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루시 폴리는 크리스티의 대표 탐정 미스 마플을 새로운 사건의 해결사로 불러냈다. 올해 9월 영국에서 출간된 〈Murder at the Grand Alpine Hotel〉은 미스 마플 시리즈가 세상에 나온 지 50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장편소설이다. 무대는 눈으로 뒤덮인 스위스 알프스의 호화 호텔. 배우와 정치인, 사교계 인사 등이 모인 가운데 한 투숙객이 곤돌라 안에서 살해되고, 폭설까지 겹치며 호텔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다. 그리고 그곳에 조용히 사람들을 관찰하는 미스 마플이 있다. 크리스티의 오랜 팬이자 미스 마플 단편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력을 지닌 폴리는 특유의 다중 시점과 현대적 감각을 기반으로 캐릭터의 본질을 이어간다. 반세기 전 탄생한 탐정이 동시대 작가의 문장 속에서 다시금 사건을 해결한다는 사실은 크리스티라는 이름이 고전이 아닌 여전히 살아 있는 문학적 자산임을 보여준다.
다음은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모은 <메리 웨스트매콧 컬렉션>이다. 1930년부터 1956년까지 발표한 이 작품 속에서 살인 사건과 명탐정은 자취를 감춘다. 대신 사랑, 결혼, 가족, 욕망, 좌절 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미스터리가 전면에 등장한다. 한 여성이 고독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봄에 나는 없었다>, 남편의 배신으로 무너진 여성의 삶을 그린 자전적 성격의 <두 번째 봄> 등에서는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관찰해온 작가 특유의 선명한 시선을 마주할 수 있다.
작가의 삶 자체를 하나의 미스터리로 바라본 책도 있다. 마리 베네딕트의 <애거사 크리스티 미스터리>는 1926년 12월, 크리스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11일 만에 한 호텔에서 발견된 실제 사건에서 출발한다. 실종 다음 날 작가의 차가 버려진 채 발견되면서 경찰과 자원봉사자까지 동원한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졌지만, 정작 크리스티 자신은 이후 이 기간에 대해 거의 설명하지 않았다. 소설은 바로 이 비어 있는 11일에 상상력을 더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 아치볼드 크리스티의 외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당시의 상황을 토대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오가며 유명 작가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한 여성의 결혼과 상처, 선택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