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보이스가 이끌어낸 예술의 역할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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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4

요제프 보이스가 이끌어낸 예술의 역할

탄생 100주년이 된 요제프 보이스를 통해 걷는 예술철학에 대한 100년의 족적.

Portrait of Joseph Beuys, Paris, 1985
Photo by Laurence Sudre / Bridgeman. Courtesy of Belvedere Museum

요제프 보이스
1921년 독일 북서부의 작은 도시 크레펠트에서 태어나 공업도시 클레페에서 자랐다. 그의 작품은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등 유럽의 주요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을 비롯해 세계 전역에서 전시됐고, 워커 아트 센터와 브로드 아트 재단에 소장돼 있다. 1986년에는 독일 뒤스부르크시가 뛰어난 조각가에게 수여하는 빌헬름 렘브루크상(Wilhelm Lehmbruck Prize)을 받기도 했다.





Honey Pump at the Work Place, 1974~1977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Humlebaek, Denmark, on Permanent Loan: Museumsfonden af 7 December, 1966 / Bildrecht, Vienna 2021 The Exhibition View of [Joseph Beuys - Think. Act. Convey](2021.3.4~6.13) at Belvedere Museum

1960년대는 전위예술의 시대다. 아시아, 유럽, 미국에서 활동한 많은 예술가가 오브제 위주의 전통적 회화와 조각에 반기를 들었다. 시간 기반의 해프닝, 설치미술, 실험적 음악, 액션 중심의 작품을 만들어내며 당시 예술계에 만연한 상업주의를 외면했다. 백남준, 존 케이지(John Cage), 오노 요코(Ono Yoko) 등 다양한 예술가가 등장해 ‘플럭서스(Fluxus)’ 운동을 이끌었다. 플럭서스란 라틴어 ‘플럭스(flux)’에서 유래한 용어로, 과정을 중시하는 실험적이고 즉각적인 예술 흐름이다. 미술가, 음악가, 작가 등이 실험적 예술을 선보인 당시 예술계의 중심에는 플럭서스의 핵심 인물이자 개념예술은 물론 전후 예술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예술가 중 한 명인 요제프 보이스가 있다.
요제프 보이스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이론가, 교육가, 정치가였다. 그는 서구 문화를 창조성에 집중할 수 있는 민주적 환경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확장된 예술 개념(expanded concept of art)’을 주장하며 과정 지향적이고 시간에 기반을 둔 액션 중심의 예술을 선보였다. 회화, 조각, 드로잉 등 전통적 예술 기법도 놓치지 않으면서 그래픽아트, 공연, 설치, 퍼포먼스, 강연, 행동주의, 심지어 선거운동에까지 참여하는 등 다면적으로 활동할 뿐 아니라 사회, 정치, 환경, 문화, 심리 같은 광범위한 영역에 관심을 두었다.
요제프 보이스 작품의 뿌리는 그의 삶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 크레펠트에서 태어난 그는 공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당시 그가 탄 비행기가 크림반도에 추락하며 부상을 당해 타타르족에게 구조됐고, 수많은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종전 이후 뒤셀도르프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1961년에는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Kunstakademie Düsseldorf)의 교수로 임명돼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학생당, 자유국제대학, 녹색당 같은 단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물론 조각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전쟁의 경험을 끌어오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며 작품 활동에도 끊임없이 매진했다. 이 시기에 조각 작품을 정적인 형태가 아니라 능동적 물질과 잠재적 에너지의 결합으로 확장한 ‘The Earth Telephone’(1968)과 그 스스로 ‘생존 키트’라고 부른 ‘Sled’(1969)가 탄생했다. 전시에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그를 구조한 사람들이 펠트와 지방을 이용해 체온을 회복시키고 상처를 치료한 기억을 되살려 펠트, 담요, 지방 덩어리, 손전등을 운반하는 기본적 운송 수단을 작품으로 승화했다.





Das Erdtelefon(The Earth Telephone), 1968
Joseph Beuys Estate / Bildrecht Vienna, 2021
Part of the Exhibition Titled [Joseph Beuys - Think. Act. Convey](2021.3.4~6.13) at Belvedere Museum
Photo by Marcus Leith, Collection Thaddaeus Ropac, London / Paris / Salzburg





Gib mir Honig, 1979 Ph. Konzett Collection, Vienna
Part of the Exhibition Titled [Joseph Beuys - Think. Act. Convey] (2021.3.4~6.13) at Belvedere Museum
Photo by Pixelstorm, Vienna / Bildrecht, Vienna 2021

이처럼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한 예술뿐 아니라 보편적 예술,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한 고민 또한 놓치지 않았다. 그는 예술로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고자 고민했고, 전시장과 무대 안팎에서 다양한 액션을 통해 직접 행동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휴머니즘, 사회철학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역사, 종교, 자연과학, 경제학, 신화 등 축적된 서구 문명에 대한 지식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치유’다. 예술, 삶, 행동주의를 오가며 다양한 시각과 방식으로 접근한 이유는 예술이 궁극적으로 삶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65년에는 뒤셀도르프의 갤러리 슈멜라(Galerie Schmela)에서 단독 퍼포먼스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를 선보이며 예술의 치유 가능성을 모색했다. 머리를 꿀과 금잎으로 가리고, 구두를 각각 펠트와 쇠로 꿰매고 약 2시간 동안 죽은 산토끼에게 예술품을 설명하며 미술관을 거닐었다. 뉴욕 웨스트브로드웨이의 르네 블록 갤러리(René Block Gallery)에서는 살아 있는 코요테와 며칠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I Like America and America Likes Me’(1974)). 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 사회와 자연, 북미 문화의 상징적 조합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며 동물과 특별한 친밀감을 나누는 치유자로서 자신을 내보였다.
호박꿀, 마가린, 고무호스, 전동 펌프로 구성된 ‘Honey Pump at the Work Place’(1974~1977)도 그의 대표작. 관람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로 그의 인생, 에너지, 변화를 상징적 순환 시스템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6월 13일까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뮤지엄(Belvedere Museum)에서 대대적으로 열리는 그의 회고전 [Joseph Beuys - Think. Act. Convey]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독일 전역,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지역에 무려 7000그루의 나무를 심는 대규모 산림녹화 프로젝트 ‘7000 Oaks’(1982)를 선보이는 등 당시 전통적 기준이나 규범을 벗어난 다양한 예술 실험을 펼치며 많은 논쟁을 이끌어냈다.
요제프 보이스는 세상이 예술가로 가득 차 있다 믿고 ‘모두가 예술가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작품을 매개체로 사회적 대화의 장을 마련하며 개인의 모든 행동을 예술로 간주했다. 인간 스스로 ‘사회적 조각’으로서 창조적 에너지를 내뿜는다면, 사회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로 참여하며 사회변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술이 좀 더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행동주의에 관여하는 시대를 기대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30여 년이 흘렀다. 예술을 통해 삶과 사회에 깊이 관여하고자 한 그가 전후 예술의 발전에 미친 영향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행동하는 예술, 확장된 예술, 사회적 조각 등 그가 몸소 보여준 갖가지 실험은 현대미술 신의 중요 키워드로 여전히 살아 있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백아영(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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