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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7

한 점의 예술을 만나는 방법

스시 오마카세가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

자연산 생선을 숙성해 기본에 충실한 맛을 구현하는 스시 타 오효석 셰프.

청담동의 한 스시야를 찾았다. 런치와 디너 모두 오마카세로만 운영하는 곳. 평일 점심에도 예약하기 녹록지 않아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방문할 수 있었다. 10여 개의 좌석은 만석이었는데, 혼자 온 사람부터 연인, 서너 명의 동료가 함께 온 팀까지 다양했다. 두 명의 셰프가 카운터에서 분주하게 스시를 손에 쥐었다. 참돔으로 시작해 전갱이·갯방어·참치·장어 스시 등 19가지 메뉴를 차례대로 서브했다. 셰프는 리드미컬하게 손을 움직이며 손님이 먹는 속도에 맞춰 스시를 만들었고, 개인 접시에 놓는 속도도 세심하게 조절했다. 스시가 한 점 한 점 사라질 때마다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재료가 좋아야 맛이 좋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원칙을 지킨 듯 스시 위에 올라가는 네타의 신선도가 훌륭했고, 샤리의 간이 세지 않아 생선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 끼 식사에 1시간 30분 소요되는 데다 1인당 10여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미각이 누린 호사는 시간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었다.
‘손님이 셰프에게 음식을 모두 맡긴다’는 뜻의 진정한 오마카세를 경험한 시간이었다. 정해진 메뉴가 있는 것이 아닌, 그날그날 가장 신선한 재료로 셰프의 재량에 따라 요리를 선보이는 스시 오마카세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매달 새로운 스시야가 문을 열고 있는 데다 인기 있는 스시야는 치열한 예약 경쟁이 벌어져 ‘스강신청’이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혹자는 “내가 먹고 싶은 날 식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가 있는 날 그 메뉴를 먹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이렇듯 스시 오마카세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반적으로 일식 셰프가 증가한 영향이 크죠. 일식은 도제식 교육을 받는 분야예요. 국내 스시를 대표하는 서울신라호텔의 아리아께, 웨스틴조선서울의 스시조 등 호텔 일식당에서 실력을 다진 셰프가 점점 늘어나고, 여기에 일본 본토에서 스시를 배운 셰프들이 가세하면서 실력을 갖춘 일식 셰프가 창업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에서 새롭게 오픈한 스시 메르 이동수 헤드 셰프의 설명이다. 그는 팬데믹으로 해외여행 기회가 줄면서 생긴 비용이 미식으로 유입되고, 적은 인원이 프라이빗하게 즐기는 식사 환경도 스시 오마카세 열풍을 견인했다고 덧붙인다. 한편 푸드 칼럼니스트 이해림은 엔트리급 스시야가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설파한다. “파인다이닝의 문턱은 여전히 높죠. 하지만 4만~5만 원에 경험할 수 있는 합리적 가격의 스시 오마카세가 눈에 띄게 늘었어요. 그뿐 아니라 스시야는 코르키지 제도가 정착해 와인이나 사케를 마시는 소비층과도 자연스럽게 교집합을 이루면서 대중적 저변을 확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쪽 밝고 편안한 분위기의 스시하네 내부.
아래쪽 스시하네의 문어, 꽃게, 새우 요리. 스시 타의 스시 5종.

이야기를 듣다 보니 스시 오마카세 열기가 뜨거운 이유가 이해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식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문화가 발판이 되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요즘 소비자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에 만족하지 않고, 한 끼라도 어디에서 무엇을 먹는지를 중시한다. 미식 ‘경험’을 소비하는 이에게 스시 오마카세는 최적의 선택지인 셈. 실력을 갖춘 셰프, 그런 셰프와 눈을 마주치며 하는 식사, 고급스럽고 정갈한 분위기, 최고급 요리를 대접받는 경험이 가능하니 과감한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물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신생 스시야의 전략도 가세하고 있다. 별도의 룸을 마련하기보다 카운터에서만 서비스를 진행하는 소규모 스시야가 늘고 있는 것. 보통 8~12명 수용 가능한 규모로 운영하되 런치와 디너를 각각 1부와 2부로 나눠 하루 총 네 타임을 이끌어간다. 소수 인원에 집중하는 만큼 셰프와 교감하는 맨투맨식 즐거움도 따른다. 분위기도 한몫한다. 어두운 조명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진중한 분위기를 유도하던 기존 하이엔드 스시야와 달리 밝고 편안한 분위기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 청담동의 스시산코우는 2층에 자리해 점심이면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신사동에 자리한 더 나인 클럽은 하와이안풍 음악을 선곡해 이국적 감성을 느끼며 보다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스시를 즐길 수 있다. 흔히 스시는 사케와 페어링해야 한다는 인식과 달리 마리아주의 경계를 허문 것도 달라진 점. 특히 젊은 층과 여성 고객은 스시에 샴페인 혹은 와인을 곁들이며 미식 경험을 확장한다. 최근 오픈한 스시 메르는 이런 경향을 반영해 프리미엄 사케를 비롯한 와인, 일본 소주 등 80여 종의 주류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프리미엄 사케를 비롯한 80여 종의 주류 리스트를 보유한 스시 메르.

스시야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흰 살 생선보다 등 푸른 생선으로 만든 초밥을 가장 먼저 낸다든지, 스시를 찍어 먹는 간장 소스나 소금에 다른 식재료를 섞어 만드는 등 색다른 변주를 시도하는 움직임도 돋보인다. “하지만 대체로 하이엔드급 스시야는 퀄리티 면에서 상향 평준화되어 있습니다. 스시야마다 추구하는 개성이 조금 다를 뿐이죠. 최고급 제철 재료를 사용하는 하이엔드 스시야의 본질은 여전합니다.” 푸드 칼럼니스트 이해림의 설명이다. 압구정동에서 20여 년간 스시하네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스시 세계관을 확고히 해온 최준용 셰프는 제철을 맞은 자연산 식재료로 정갈한 과정을 거쳐 완성한 스시가 가장 좋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송파에서 청담동으로 이전해 스시 타를 오픈한 오효석 셰프 역시 자연산 생선을 숙성해 기본에 충실한 맛을 구현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소신을 밝힌다.
한편 스시 오마카세의 유행은 한우, 파스타, 칵테일 등 다른 음식으로 범주가 확산되는 현상을 일으켰다. 좋은 것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형태의 오마카세 방식이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일각에선 ‘오마카세’를 남발하며 일종의 메뉴로 치부되는 것이 아쉽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스시 타 오효석 셰프는 “셰프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본연의 의미처럼 요리로서 최고점이 되어야 하는데, 요즘은 다양한 분야로 오마카세가 번지면서 코스 요리로 변형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스시 오마카세가 인기를 끌어도 최고 경지에 이른 셰프와 교감하며 그들의 실력을 믿고 먹는 요리의 본질이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 스시야는 기본에 충실하되 자신만의 노하우를 더한 하이 퀄리티의 스시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객 또한 ‘한 입의 예술’인 스시 맛을 음미하며 숨어 있는 디테일을 하나둘 알아간다면 오마카세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음식 너머의 맛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미식의 고차원적 감각을 일깨우는 걸지도 모른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사진 양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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