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로다주는 누구일까?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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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07

제 2의 로다주는 누구일까?

할리우드와 OTT가 만드는 히어로물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을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동양인 히어로 주인공 시무 리우.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동서양을 아우른 영화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지난가을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바로 마블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과연 마블과 할리우드가 그려내는 동양인 히어로는 어떤 모습일까? 제목에서 풍기는 진한 오리엔탈적 느낌에 에디터도 간만에 영화 티켓을 예매했다. 사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다. 그간 동양에 대한 서구권의 시각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문화적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인을 일본풍으로 스타일링한다거나 배경은 중국인데 세팅은 다른 아시아 나라 스타일로 하는 등 그들은 그동안 동양권 나라를 다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왔다. 코믹스, 영화와 TV 드라마 시리즈로 대표되는 미디어 콘텐츠에서 그래도 꾸준히 동양에 관심을 보여온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 문화에 젖어 살아가는 우리는 단편적인 소비에 늘 아쉬움이 남는다.
서구 문화권이 동양에 관심을 갖고 그 문화를 차용해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한다. 산업혁명으로 서양 국가와 동양 국가의 발전 단계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제국주의 이념 아래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수많은 동양 국가가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렇게 ‘선진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시키는 근대 개화기를 거쳤다. 자연스럽게 문화에서도 ‘상하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흐름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산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는 “그들(동양)은 스스로를 재현할 수 없고, 재현돼야 한다”라는 인상 깊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문장은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의 영문학자이자 평론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동양에 대한 서구의 권위적 시선을 꼬집고 비판한 저서 <오리엔탈리즘>의 제사(題辭)로도 사용되었다. 인류의 평등을 주장한 마르크스 이지만 그런 그조차 동양인은 스스로를 재현할 수 있는 권위와 힘이 부족한 존재로 인식했을 정도니 서양 사회가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했을지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위부터<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중국의 풍경과 문화 등 남다른 스케일을 보여줬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블 코믹스 원작에서는 에인션트 원이 티베트계 소수 민족으로 나온다. 영화화되면서 틸다 스윈턴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 <블랙팬서>는 흑인이 처음으로 히어로 주인공을 맡은 영화다. 부산에서 자동차 추격 신을 촬영하기도 했다.

비범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 악당과 싸워 사회를 지키는 ‘히어로물’은 서구 문화에 내재된 권력의지와 힘을 가장 잘 드러내는 콘텐츠다. 한번 생각해보자.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스파이더맨, 블랙위도, 토르 등 주요 히어로는 모두 백인이다. 우리나라 배우 김수현이 2015년 개봉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닥터 헬렌 조 역으로 출연하고 서울이 영화에 잠깐 등장하긴 했지만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처음 유색인종이 마블 영화의 히어로 주인공 자리를 꿰찬 건 <블랙팬서>에서다. 아프리카를 베이스로 흑인 배우가 대거 주인공으로 발탁되며 영화계에서는 이를 큰 발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도 우리나라 부산이 한 장면으로 소비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동양인의 자리는 없었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비교적 동양의 비중이 크다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다친 손을 치유하기 위해 네팔을 방문하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세계 각지에 설립한 ‘생텀’ 중 하나가 홍콩에 자리 잡았으며, 닥터 스트레인지의 동료 마법사로 등장하는 웡 역시 동양인이다. 동남아시아에 거점을 뒀음에도 마법사 집단의 리더 에인션트 원은 백인 배우 틸다 스윈턴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또 최고의 마법사 경지에 이른 소서러 수프림 역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는 등 여전히 주요 인물은 백인 배우가 차지했다. 특히 원작 코믹스에서 에인션트 원은 티베트인으로 아시아계 소수인종 설정인데, 영화에서 백인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콘텐츠의 모든 요소를 백인 위주로 치환하는 ‘화이트워싱’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일었다.





11월 2일 개봉한 <이터널스>에서 배우 마동석이 길가메시 역으로 참여했으며, 앞으로도 후속작에 출연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드디어 올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또 하나의 진보적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시무 리우, 아콰피나, 량차오웨이, 량쯔충 등 우리에게 익숙한 중화권 배우뿐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이 대거 출연하면서 정말 ‘동양인에 의한, 동양인을 위한’ 할리우드 영화가 탄생한 것. 중국 무술 쿵후와 중국을 상징하는 용 등 중국의 전통적 요소를 차용해 이를 할리우드식으로 발전시켰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가족’이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흐름 전반에 걸쳐 아버지와 자식 간 관계가 두드러지는데, 특히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다르게 그린 점에서 중국 내 뿌리 깊이 자리 잡은 남아선호사상에 대해서도 단편적으로나마 생각해보게 한다. 영화 개봉 전에는 대체로 그간의 작품처럼 오리엔탈리즘을 양념으로 뿌린 할리우드 영화일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적절히 동서양을 오가고 중국의 문화에 대한 상대적으로 높은 이해도와 존중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아콰피나가 맡은 케이티 역을 통해 중국계 미국인을 비롯해 이민 2·3세에 대한 현실적 묘사 등 단순히 동양적 요소를 영화에 덧입히는 것을 넘어, 접점을 만들어가는 서로 다른 두 문화의 공존을 있는 그대로 살려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서구가 동양의 문화를 동등한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1월 초에 개봉한 <이터널스>에 배우 마동석이 길가메시로 주요한 역할 한 자리를 차지하고, 배우 박서준이 차기 마블 영화에 캐스팅됐으며, 마블 코믹스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설정한 헤로인 작품 <실크>도 영화화를 계획하면서 앞으로 할리우드 히어로물에서 ‘동양’에 대한 소비 비중이 높아질 전망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재현할 수 없다”고 여기던 동양인의 문화가 이제는 분명 그만의 것으로 읽히고 있다. 소위 타자화해 ‘너희’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구를 점유해 살아가는, 또 다른 모습의 ‘우리’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 섞이는 방법을 고민해나간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동서고금’이 한데 모인 대망의 콘텐츠를 유희할 수 있지 않을까.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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