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핫한 영화 한 편과 책 한 권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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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01

지금 가장 핫한 영화 한 편과 책 한 권

헬렌 맥도널드의 신작 <저녁의 비행>과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를 리뷰한다.

섬세한 자연 관찰, 단단한 인생 성찰
세상에서 가장 부질없는 일 중 하나가 책 읽는 방법에 관한 논쟁이다. 속독과 정독의 우열을 따지는 일 말이다. 사실 이런 논란은 의미 없다. 책의 성격, 읽는 목적에 따라 적절한 독서법이 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번에 휘리릭 읽을 책도 있고 곁에 두고 야금야금, 한 구절 한 구절을 읊조리며 음미하듯 읽어야 하는 책도 있기 마련이다.
영국 출신의 과학사를 전공한 동물학자 헬렌 맥도널드가 쓴 <저녁의 비행>이 바로 그런 책이다. 매 조련사이기도 한 지은이는 전작 <메이블 이야기>로 논픽션계의 아카데미상이라 일컫는 새뮤얼 존슨상 등을 받은 빼어난 작가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야생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며 슬픔을 이겨내는 치유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이미 국내에도 소개되어 눈 밝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저녁의 비행>은 야생 돼지, 송골매, 찌르레기 등과 이들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그려낸 41편의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자연 에세이라면 과학적 사실과 성찰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가 관건인데, 자연의 경이로움과 삶의 지혜를 유려한 문장에 담아낸 이 책은 충분히 사랑받을 만하다. 2020년 <타임>이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많은 영예를 얻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책 표제인 ‘저녁의 비행(Vesper Flights)’을 보자. 이는 칼새가 뜨뜻한 여름날 저녁이면 “어떤 부름이나 종소리에 소환을 받은 듯” 홀연히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현상을 다룬 글이다. 평소 지붕 꼭대기나 첨탑 부근을 빠르게 돌아다니던 칼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며 지은이는 “하루를 마감하면서 드리는 가장 장엄한 기도!”를 읽는다. 이를 문인의 감수성이라 한다면 과학적 사실도 빠지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한동안 칼새가 바람을 타고 수면하기 위해 높이 비행하는 것으로 알았다든가, 최대 8000피트(약 2400m) 상공까지 오른다든가 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하지만 에세이의 매력은 성찰. 칼새들은 고공비행을 통해 최선의 비행 결정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나눈다는 사실을 짚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따라가는 것’이라는 지혜를 끌어낸다. 그런가 하면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높이 오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하나의 공동체로서 그 안의 생명을 보존하고 삶을 성장시키고 확장하려면 당연히 우리 중에 누군가는 일상에 너무 쉽게 가려지는 이런저런 상황을 분명히 바라보아야 한다” 하고 일러주는 대목에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처럼 이 책은 아름다운 말 대신 섬세한 관찰, 단단한 성찰로 채워져 있어 찬찬히 가만가만 읽어야 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여우 사냥에 동원되었다가 홀로 떨어져 헤매는 사냥개를 만나 “길을 잃었지만 따라잡으려” 줄곧 달리는 모습에 눈길을 보내는가 하면, 목초지 상실을 아쉬워하며 “우리는 언제든 다음에 무슨 일을 할지 늘 하던 일을 멈추고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소설가 헨리 그린의 말.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구절이 책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기에 하는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억지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마지막 글인 ‘동물이 주는 교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요즘 나는 동물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그리고 그들의 삶이 인간의 삶을 설명하거나 거울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진정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곤 한다.” 있는 그대로 자연을 대하는 이런 태도가 오히려 읽는 이에게 진솔한 울림을 준다.
책 첫머리 ‘들어가는 말’의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간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인정하면서 서로 보살피고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지금 당신의 눈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시도하는 것,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 당신과 다른 대상을 사랑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것, (중략) 나에게 가장 심대하게 다가오는 문제들이다.”
그렇게 시작된 책은 이렇게 끝난다. “어디론가 자기 길을 떠나던 공중의 새는 그동안 갈라져 있던 틈새에 눈길을 주고는 그 상처를 한 겹 한 겹 꿰매어 나를 다시 세상 속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그랬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는 현실로 돌아와 푸른 하늘을 다시 한번 보았다. 북 칼럼니스트 김성희





영화 속 마우리치오(왼쪽)와 파트리치아(오른쪽).


구찌 없는 구찌
명품을 잘 몰라도 구찌는 안다. 삼색 줄무늬와 대문자 G를 겹친 독특한 로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보니까. ‘포르노 시크’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톰 포드가 2004년 구찌 하우스를 떠난 후 주춤했지만, 2015년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후 아카이브를 통해 동물, 곤충, 꽃을 새긴 제품을 선보이며 MZ세대의 지지를 받는 브랜드로 거듭난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몰랐다. 구찌가 한때 청부살인이라는 비극을 겪으며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지금 구찌에는 구찌 가문의 일원이 한 명도 없다는 걸 말이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구찌 가문의 몰락사를 다룬 영화다. 할리우드 거장 리들리 스콧의 작품. 그는 2001년 사라 게이 포든이 쓴 동명의 논픽션을 접하고 그 강렬한 이야기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매우 매력적인 가족의 역사다. 구찌 가문은 패션계의 이탈리아 왕족이었고, 이들의 몰락 또한 가문 내부에서 시작되어 퍼졌다. 어떻게 흥미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2008년 영화화를 추진했지만, 구찌 가문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리고 20여 년의 기다림 끝에 나온 결과물은? 범작과 명작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는 평이 지배적이지만, 에디터는 명작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영화는 젊은 두 남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영세한 트럭 운송 회사 사장의 딸 파트리치아 레자니는 파티장에서 만난 법학도 마우리치오 구찌에게 한눈에 반한다. 근사한 외모와 말씨, 무엇보다 가문이 매력적이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마우리치오는 연인을 반대하는 아버지 로돌포와 연을 끊으면서까지 1972년 결혼을 강행한다. 마우리치오는 가업을 잇는 데 관심이 없었지만 파트리치아는 아니었다. 그녀는 마우리치오의 삼촌 알도를 통해 경영에 관심을 보이고, 우유부단한 남편을 구찌에 밀어 넣는다. 로돌포가 세상을 떠나자 파트리치아는 야심을 드러낸다. 알도와 그의 아둔한 아들 파올로를 이간질해 몰아내고 마우리치오를 왕좌에 앉힌 것. 그 과정에서 마우리치오는 표독스러운 파트리치아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다른 여자를 찾는다. 마우리치오가 밀어낼수록 파트리치아는 ‘구찌’라는 이름에 집착한다. 이혼에 합의한 후 남편의 청부살인을 의뢰할 정도로. 1995년 마우리치오는 암살자의 총에 피살되고, 파트리치아는 2년 뒤 법정에 선다. 재판장이 파트리치아 레자니를 호명하자 그녀는 자신을 파트리치아 구찌라고 불러달라 말한다. 영화 포스터의 한 줄 카피처럼 ‘죽여서라도 갖고 싶은 이름’이랄까.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풍성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구찌 패밀리의 화려한 스타일링, 톰 포드의 역사적인 구찌 컬렉션 데뷔 장면 등 158분의 긴 러닝타임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여기에 마우리치오 역의 애덤 드라이버, 알도 역의 알파치노, 파올로 역의 재러드 레토 등 명배우들이 경이로운 연기력으로 막장 드라마 같은 실화에 자연스러움을 덧입혔다. 그중에서도 단연 빛난 건 레이디 가가. 파트리치아 역을 위해 체중을 늘리고 이탈리아 북부 억양을 익혔다는 그녀는 브레이크 없는 욕망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한편 이러한 장점은 표피적인 것일 뿐, <하우스 오브 구찌>의 진정한 가치는 욕망을 나열하는 데 있다. 사람들은 파트리치아를 가리켜 구찌 가문을 무너뜨린 악녀라고 말하지만, 영화를 다 보면 과연 그녀만의 잘못인지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분명 파트리치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집중해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덤덤한 시선으로 조망한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유약한 마우리치오는 부와 권력을 움켜쥐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변했고, 파올로는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반기를 들었을 뿐이다. 절제 없이 뻗어나가던 욕망은 연쇄 추돌을 일으켜 가문의 몰락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졌다. 노년의 감독은 사람들에게 과도한 욕망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실제 의도는 그렇지 않더라도, 국가 간 이권 다툼과 온갖 투자 열풍으로 물신주의가 절정에 이른 지금 이 시기에 <하우스 오브 구찌>의 등장은 참으로 시의적절해 보인다. 에디터 황제웅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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