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 우뚝 선 전광영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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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27

베니스에 우뚝 선 전광영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작가, 전광영의 전시 <재창조된 시간들>을 베니스에서 만날 수 있다.

위쪽 뮤지엄그라운드 전시장에서 만난 전광영 작가.
아래 왼쪽 베니스 <재창조된 시간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Aggregation001-MY057’.
아래 오른쪽 베니스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냐크에서 열리는 전광영 작가의 <재창조된 시간들> 전시 전경.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뜻하는 ‘인연’. 그 힘은 참으로 다양하나, 그중에서도 인연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놀랄 만한 기회의 장이 펼쳐진다는 의미에서 그것이 지닌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한지 조형 작가로 알려진 전광영 작가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메니아 국가관 전시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장 보고시앙의 인연이 바로 그렇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열리는 전광영 작가의 개인전 <재창조된 시간들(Times Reimaged)>을 보고시앙 재단이 주최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문화 예술 후원 단체 보고시앙 재단을 설립하고 ‘빌라 앙팽’이라는 전시 공간을 설립해 주요 글로벌 작가의 전시를 선보이는 장 보고시앙은 아르메니아 혈통의 아티스트다.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나 레바논으로 이주했으나 내전이 발발해 1975년 이후부터 벨기에에 정착한 후 프랑스·영국·스위스·이탈리아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장 보고시앙은 아트 컬렉션만 해도 규모가 상당한데, 이 중에는 오래전부터 전광영 작가의 작품이 한 점 포함되어 있었다. 장 보고시앙에게는 세 아들과 형제들이 있는데 나중에야 각자 아트 컬렉션에 전광영 작가의 작품이 포함된 것을 알고 다들 무척 놀랐을 정도로, 전광영 작가의 작품은 보고시앙 패밀리에게 남달랐다.
장 보고시앙은 삼각형 모양의 작은 스티로폼을 고서(古書) 한지로 싼 다음 천연 염색 기법으로 물들인 후 캔버스에 빼곡히 붙여 만든 전광영 작가의 대표작 ‘집합(Aggregation)’ 시리즈를 보고 어린 시절 레바논의 내전을 목도한 자신의 경험과 한국전쟁을 겪고 분단을 마주한 전광영 작가의 경험이 한지 작품 안에서 그 역사성과 스토리가 통한다고 봤다.
장 보고시앙은 전광영 작가를 브뤼셀로 초대했고, 전광영 작가의 작품이 유년 시절 큰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약방에서 본 종이 약봉지와 한국 고유의 보자기 문화에서 착안한 것이라는 구체적 스토리를 듣고 감탄하며, 그 자리에서 빌라 앙팽의 디렉터를 통해 브뤼셀에서 개인전을 열도록 주선했다.
디렉터는 전광영 작가 작품에서 한국 사회 속 개인과 집단 경험의 역사적 사실, 무수한 시공간 속 해체된 이야기를 동양 특유의 포용적 사고로 다시 결합해 현대적 예술 맥락에서 총체적 아름다움을 구현해낸 점을 높이 평가했고, 그렇게 빌라 앙팽에서의 개인전이 성사됐다.
그 후로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은 마침내 세계 최대 미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로 선정된 전광영 작가의 개인전 주최를 맡으며 큰 열매를 맺었다.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기획을 맡았고, 세계적 큐레이터 마누엘라 루카 다지오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동양의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전광영 작가의 독창적 작품 세계를 서양의 역사적 장소에서 선보이며 동서양의 조화로운 접점을 선사할 이번 전시를 앞두고 만난 전광영 작가는 전시 준비로 분주했다. 그리고 다소 흥분한 듯한 모습이었다.

4월 1일부터 29일까지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전광영 작가의 베니스 전시 개최를 기념해 이 열리고 있다. 대지의 강렬한 에너지를 품은 대작 ‘집합(Aggregation)’을 비롯해 아름다운 ‘환희’, ‘명상’ 시리즈 등 총 11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관람객에게 고요하면서 힘찬 에너지를 전달한다.

Profile
전광영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필라델피아 예술대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95년 고서를 활용한 ‘집합(Aggregation)’ 시리즈로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2018년에는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벨기에 보고시앙 재단 미술관 빌라 앙팽과 뮤지엄 드리드 등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대영박물관, UN 본부, 리움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위쪽 <재창조된 시간들> 전시에는 대작들이 관객을 맞고 있다.
아래쪽 노블레스 컬렉션 전경.

비엔날레 기간 병행 전시를 열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앰블럼을 사용하게 되었는데요, 전시를 앞둔 기분이 어떠신지요. 베니스 비엔날레가 127년간 이어지는 동안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 외에 많은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올해도 수백 명 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중 비엔날레 주최 측이 선정한 소수의 작가에게 비엔날레 엠블럼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됩니다. 올해 선정된 작가 중 생존 작가가 4명인데, 그중 제가 포함되었어요. 안젤름 키퍼도 리스트에 있죠.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비엔날레 오프닝이 열리는 기간에 많은 미술계 인사가 방문할 텐데요, 작가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분도 많을 것 같아요. 비엔날레는 4월에 시작해 11월까지 이어지지만, 사실 일주일 안에 다 끝난다고 보면 돼요. 유명 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기자 대부분 오프닝을 기점으로 그때 다 모이니까요. 저도 4월 17일 도착해 28일 귀국할 때까지 오프닝 참석부터 각 나라 기자들과 인터뷰가 쭉 잡혀 있어요.

작가님의 이번 전시는 보고시앙 재단이 주최하고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기획을 맡으면서 더 파워풀해졌습니다. 장 보고시앙과는 매우 가깝고 특별한 인연을 맺고 계신데요, 이번 병행 전시는 어떤 과정을 통해 기획되었나요. 비엔날레 주최 측에서 작가들의 개인전 기획 서류를 검토한 후 심사를 거쳐 선발하는데,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 뮤지엄그라운드 대표를 맡고 있는 제 아들이 장 보고시앙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제 전시의 주최를 맡아주면 어떻겠느냐고. 그가 흔쾌히 수락해 진행될 수 있었죠. 고맙게도 이용우 박사가 큐레이터로 나섰고, 베니스 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오랜 기간 맡은 마누엘라 루카 다지오가 서브 큐레이터로 함께하며 전시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작가님의 전시가 열리는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냐크(Palazzo Contarini Polignac)는 르네상스 초기의 중요 건물 중 하나입니다. 베니스 운하를 끼고 있는 유서 깊은 이 건축물은 내·외관 모두 분위기가 대중을 압도하는 듯 보입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건축물로, 클로드 모네가 운하 건너편에서 화폭에 담기도 했죠. 국보급 건축물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베니스 귀족의 화려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운하를 따라 자리해 접근성이 좋은 것 같아요.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옆에 위치한 데다, 제 전시장 반대쪽 옆 건물에선 애니시 커푸어 전시가 열려 이 모든 전시를 한 번에 볼 수 있습니다.

전시명 ‘재창조된 시간들’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뜻이 담겨 있나요. 제 작품은 한지 역사(고서)를 통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해체해 서구적 회화 방식과 철학으로 새롭게 창조해 나만의 것으로 만든 결과물입니다. 과거를 넘어 독특한 새로움을 탄생시켰고,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품에 흐르는 이 의미를 전시명에 담았습니다.

어느 시기의 작품이 어떤 흐름으로 배치되나요. 한 방에 한 점만 들어갈 정도로 대작 설치 작품 여섯 점 정도를 배치하고, 구작과 신작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대작 평면작은 30여 점 걸립니다. 제 작품의 변천을 한눈에 엿볼 수 있도록 선정했습니다.

전시장 앞에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Stefano Boeri)가 작가님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삼각 한지로 싼 종이 집을 지어 ‘한지 하우스(Hanji House)’라는 실험적 건축물을 선보입니다. 설치 작품에 가까운 한지 하우스가 지닌 상징성은 무엇인가요. 그곳엔 ‘치유’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지 하우스 내부에서는 4차원 영상을 상영할 예정인데, 관람객이 앉아 있으면 천장에 삼각형들이 막 날아다녀요. 2년 넘게 팬데믹을 겪으며 삭막해진 우리 현실과 전 인류의 무너지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할 기념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지금까지 많은 전시로 해외 관람객과 만나셨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국내 컬렉터의 관점과 사뭇 다를 것이라 짐작됩니다. 해외 컬렉터들은 주로 어떤 포인트에 관심을 갖나요. 사실 우리나라 작가가 세계 무대에 나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컬렉터의 마음을 움직이기까지 과정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역사와 문화, 관점의 차이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저 또한 그 과정이 길었고, 힘든 시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남의 것을 빌리지 않고 나만의 시각으로 동서 문화를 혼합해 독창적 조형예술을 정착해나간 점을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그것이 많은 해외 컬렉터의 흥미를 끈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작은 조각들이 화면을 율동적으로 구성하던 평면적 실험에서 시작해 거대한 완전한 조각 형태까지 경계를 확장하셨습니다. 형태와 컬러에 따라 각 작품이 뿜는 에너지가 천차만별입니다. 최근에는 어떤 작업 형태에 집중하고 계신가요. 우리는 입체 회화를 구성하는 데 사각이나 원 따위의 표현 방식에 얽매이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설치 작품뿐 아니라 벽에 걸리는 입체 회화조차 과거 관습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색채 또한 꾸준히 한지에 우리의 천연 염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같은 색이라도 모두 다르게 보이죠. 전통적 은은함이 동양, 특히 우리 정서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서구적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작가님의 작품은 한국적 색채가 강하지만, 동서양을 넘나드는 보편적 아름다움이 흐릅니다. 새 작품에 임할 때마다 조형과 색채적 요소를 어떻게 결정하시는지요. 저는 작업할 때 남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작품에 임하는 태도와 생각은 내가 평생 생각하고 살아온 삶의 방식에서 결정됩니다. 그것을 어떤 형태로 기록하고 표현하는지는 그 세월과 시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요. 저는 살아오면서 많은 것에 영향을 받았고, 매 순간 삶의 순간이 변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작품을 탄생시킵니다. 그래서 제 작품 안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볼 수 있죠.

작가님은 지상 3층, 지하 2층 규모의 뮤지엄그라운드를 개관할 때 ‘젊은 작가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채로운 전시를 선보이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건립 의도에 맞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자평하시나요. 미술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하고 작가로 살아오면서 늘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가 미술계에 만연한 학연·지연 문제였어요. 그래서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미술관을 만들어 학교와 출신 지역에 상관없이 오직 작품만 보고 좋은 작가를 선정해 전시회를 열어주겠다고 마음먹었죠. 주변 사람들이 내게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했지만, 2018년 10월 6일 뮤지엄그라운드를 오픈했습니다. 누군가는 6개월 만에 문을 닫을 거라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4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어요. 특히 지난해 열린 정찬부 작가의 개인전은 1만2000명이 봤습니다. 정찬부 작가의 전시를 기획할 때 이 사무실에서 저와 처음 만났는데, 그때는 저와 눈도 못 마주치던 작가예요. 그런데 저희 전시 이후 네 군데에서 같이 전시하자는 연락을 받았대요. 저로서는 바로 그런 점이 큰 보람입니다.

뮤지엄그라운드에서 진행하는 전시 외에 다른 기획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나요. 저는 아이들의 미술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곧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는데, 판교부터 오산·수원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많이 신청했더라고요. 젊은 엄마들의 미술 교육열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어요. 자라나는 새싹에게 규격화된 미술이 아닌, 자유롭게 응용할 수 있는 생각을 길러주고 싶어요.

평생을 작가로 살면서 유달리 기억에 남은 순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작가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브루클린 미술관 개인전 당시 오프닝에 참석한 아내가 전시를 관람한 뒤 미술관 창에 기대 창밖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었을 때입니다. 저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을 공부했고, 작가로 활동하며 어려운 시기를 오래 겪었어요. 그때마다 옆에서 힘이 되어준 사람이 바로 아내죠. 그런 아내가 세계적 미술관에서 열린 제 전시를 관람한 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내가 이제야 아내를 안심시켰구나, 드디어 신뢰감을 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으로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많은 공간에서 전시를 하셨지만 ‘꼭 이곳에서 전시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있을까요. 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이 하나쯤 있겠죠. 저 역시 많은 곳에서 전시를 했지만, 베니스 비엔날레가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 싶네요. 과거 수차례 베니스를 방문하면서 ‘나도 이곳에서 전시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거든요. 아내와 아들에게 푸념처럼 이런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고요. 그런데 올해 이렇게 초대되어 세계적 큐레이터와 함께 유네스코에 등재된 고택 폴리냐크에 전시된 것은 꾸준히 한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결과물인 것 같아 기쁩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취재 협조 노블레스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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