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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25

주류 장르로 올라선 SF

SF의 인기 비결과 SF를 잘 즐기기 위한 팁.

더스트로 멸망한 이후의 세계를 그린 김초엽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저술, 비평, 해설 등을 통해 SF 세계를 이야기하는 평론가 심완선이 SF 작가 여섯 명과 진행한 인터뷰집 <우리는 SF를 좋아해>.


최근 한국문학계에서는 SF가 인기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SF, 추리, 판타지, 무협 같은 특정 색채를 띤 소설은 인기가 있어도 인정받진 못한다’라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심지어 SF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인기 있는 편도 아니었다. 추리소설에선 1980~1990년대 김성종·이상우 같은 작가들이 활약하면서 잠깐 주목받았고, 판타지·무협 소설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다양한 작가가 쏟아져 나온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SF는 이러한 큰 성공 사례조차 없었다. 만약 몇 년 전 문학평론가에게 판타지 소설의 미래를 상상해보라고 했다면, 대중적 인기를 토대로 ‘문학평론계, 주류 문학 작가에게도 일정한 관심과 평가를 받는 일이 점차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막상 2020년대에 부는 바람은 SF다.
굳이 따져본다면, 2000년대 후반 웹소설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은 게임 판타지 소설과 SF의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대략 10여 년 전부터 게임 속 세상에 주인공이 빨려 들어가서 모험하는 이야기나 혹은 게임 속에서 어떤 일을 벌이는 줄거리가 판타지 소설의 뼈대로 유행했다. 그렇다면 컴퓨터로 만든 가상 현실 속에서 모험하는 것이기에 SF, 그중에서도 사이버펑크 SF 계통에 속하는 소설로 분류하는 일이 이상하진 않다. 그러나 누군가 한국의 게임 판타지 소설이 사이버펑크 SF의 흐름이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게임 판타지 소설’이라는 말 그대로 SF가 아닌, 판타지 소설의 일종으로 출현했고, 또 소비된 점을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때로는 SF와 판타지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게임 판타지 소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무슨 이유인지 한국에서 SF가 스멀스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는 SF 작가로서 멋대로 지어낸 것이 아니다. 2019년 <한국일보>는 신춘문예 평을 하면서 그해 키워드로 ‘SF’를 언급했고, 2020년 <시사IN> 임지영 기자는 ‘과학소설 전성시대, 왜 지금 SF일까?’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한 바 있다. 더욱이 2010년대 말에는 서로 다른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서 ‘공교롭게도’ SF 소재를 다룬 소설이 줄이어 당선된 적도 있다. 이는 SF를 향한 관심이 늘어났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이런 변화는 왜, 어떻게 일어났을까?





위쪽 프랭크 허버트의 SF 판타지 소설 <듄(Dune)>을 원작으로 한 영화 <듄(Dune)>(2021). 1984년 제작된 영화 이후 37년 만에 신작을 개봉했다. © Chiabella James/Warner Bros.
아래쪽 디즈니+에서 방영된 스타워즈 실사 드라마 시리즈 <만달로리안(The Mandalorian)> 시즌 2 장면. © 2020 Lucasfilm Ltd. & ™. All Rights Reserved.

당연한 이야기지만, SF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와중 ‘이렇게 세상이 빨리 변하면 도대체 미래는 어떻게 될까?’ 같은 경각심과 공포, 기대, 놀라움을 느낄 때 아무래도 관심을 받기 좋다. 냉전 시기 미국 SF가 전성기를 누린 일, 1980년대 일본 전자 제품이 세계를 지배할 때 일본에서 각종 로봇 이야기가 유행하던 일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조선 말 개항을 맞아 유럽 과학기술 문화가 쏟아져 들어오던 때나 1960~1970년대 산업 성장기 때 한국에서 SF가 유행했어야 마땅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 시절이 SF가 유행할 기회이기는 했으나, 근래 인기와는 차이가 있다. 필자는 지금의 SF 인기는 한국 출판계와 언론의 보수성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2010년대 후반에 들어와 문학계와 글쓰기를 이끌어가는 출판계·언론계가 마침내 스스로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충격과 격변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 언론과 출판에서 다루는 ‘기술 변화’라는 주제는 ‘기술이 변화하면 사회가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한발 물러나 해설하는 대상에 그쳤다. 이런 주제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수익을 올리기도 좋았다. 그런데 2010년대 인터넷 매체와 SNS가 성장하면서, 더는 언론과 출판이 여유롭게 한발 물러나 과학기술에 대한 해설이나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신문보다 SNS 글을 더 보고, 책보다는 웹에 올린 ‘썰’의 영향을 더 받는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세상이 뒤집히겠다는 위기감과 생경함을 다른 누구도 아닌 출판계와 언론계가 직접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2010년대 후반 무렵, 과학기술과 미래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국 SF가 특히 주목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그 기회를 맞아 한국 SF가 꽃필 수 있도록 긴 시간 SF를 성장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작가와 팬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런 시절이 찾아왔을 테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국 SF의 개성을, 그리고 현재 SF를 읽는 지침을 찾아볼 수 있다. SF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시기를 버티며 여기까지 온 한국 SF 작가들은 누가 읽어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쉽게 읽어 내려가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해온 듯하다. 그래야 SF를 하면서 살아남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었으니까. 필자는 그 흐름이 지금의 한국 SF 작가에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2~3년 사이 발행한 SF 소설을 보면 한국 SF는 집어 들자마자 재미있는 소설이면서도, 감동과 무게를 동시에 즐기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노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SF에 처음 뛰어드는 독자라면 굳이 해외 고전 SF부터 시작하거나, 괜히 이름 높은 외국 작가의 심오한 명작부터 시작하기보다는 한국 작가의 요즘 SF를 먼저 펼쳐 볼 것을 추천한다. 한국 SF 중 책 소개 문구를 읽어보거나 앞부분을 조금 살펴보고 내킨다 싶으면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재미와 감동을 함께 맛보는 좋은 방법일 터. 그뿐이 아니다. 더 나아가 왜 하필 한국문학계가 SF에 주목하는지 한국 문화와 사회의 독특한 동향을 알아본다면 SF를 읽는 묘미가 배가할 것이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곽재식(소설가,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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