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양조의 유산과 아트 컬렉팅의 조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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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13

와인 양조의 유산과 아트 컬렉팅의 조우

미국 최대 와인산지 나파밸리. 유수의 와이너리가 자리한 이곳 헤스 퍼슨 이스테이츠의 헤스 아트 컬렉션

헤스 아트 컬렉션 전시장 입구에 설치한 아르만도(Armando)의 ‘The Black Bowl’(1989). © Hess Persson Estates





1969년에 처음 만든 양조장은 2014년에 지진 피해를 입었다. © Hess Persson Estates

INTRO
나파 시가지에서 레드우드 로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편 작은 언덕에 격자로 심은 포도나무가 보이고, 그 맞은편에서 헤스 퍼슨 이스테이츠의 상징인 사자 문양을 새긴 표지판이 방문객을 반긴다. 스위스 출신 사업가인 창립자 도널드 헤스(Donald M. Hess)는 1970년대 중반 박차를 가한 미네랄워터 사업을 위해 캘리포니아를 방문, 식사 자리에서 접한 나파밸리 와인에 매료돼 ‘와인’ 사업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그는 1978년 비더산(Mount Veeder)에 있는 포도밭을 구매한 후 기존 양조장과 창고를 빌려 와인 양조의 기틀을 잡아갔다. 그의 첫 번째 비즈니스가 맥주 사업인 것을 생각하면 와인을 향한 도전이 완전히 무모한 일은 아니었을 터. 꾸준히 실험하고 확장한 결과, 1989년에 비로소 현재 헤스 퍼슨 이스테이츠의 모습을 갖추며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비교적 늦게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음에도 경쟁력을 갖춘 데에는 와인의 질도 영향을 미쳤지만 헤스 아트 컬렉션을 함께 운영했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만 해도 이런 복합 문화 공간에서 제공하는 사뭇 격조 높은 경험이 흔치 않았기에 금세 방문객을 사로잡았다. 1960년대부터 미술에 꾸준히 관심을 둔 도널드 헤스의 혜안이 나파밸리에서 꽃을 피운 셈이다. 그가 은퇴한 후에는 딸 사브리나 퍼슨(Sabrina Persson)과 사위 티머시 퍼슨(Timothy Persson)이 가업을 승계, “땅을 잘 보살펴라. 그러면 그 땅은 그대들이 원하는 것을 되돌려줄 것이다”라는 창립자의 정신을 이어 자연의 유기적 순환을 지켜나가는 지속 가능한 와이너리로 자리 잡았다.

ART - HESS ART COLLECTION
헤스 퍼슨 이스테이츠에 있는 헤스 아트 컬렉션은 도널드 헤스가 새집의 벽에 걸 장식을 찾아 그림 한 점을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첫 소장품을 벽에 걸고 몇 년 후 그의 집을 방문한 한 친구가 “피카소의 그림을 집에 걸어뒀구나!”라며 헤스의 안목에 감탄했고,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 작품 수집과 예술에 대한 공부에 열정을 쏟는 계기가 됐다. 그는 단순한 수집 개념을 넘어 예술가와 직접 만나 대화하며 영감을 얻는 ‘사적 여정’으로 미술을 대했다. 컬렉션의 대표 작가는 환경보호운동가이자 대지예술로 현대미술계에 한 획을 그은 앤디 골드워시(Andy Goldsworthy)다. 그의 ‘Surface Tension’은 작은 밤나무 가지를 화학 접착제가 아닌 산사나무 가시로 엮어 유기적인 면을 형성한 설치 작품으로, 손대면 바로 부서질 듯한 작품의 섬세함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가마 34개로 녹는점(3000℃)에서 구운 경사암을 복도를 따라 무심하게 얼기설기 늘어놓은 ‘Rock Pool’(2000)도 자연의 고유한 물성에 집중해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유사한 언어로 자연을 다룬 폴란드 출신 작가 마그달레나 아바카노비치(Magdalena Abakanowicz)의 조각도 방문객을 압도하는데, 유기적 재료로 땅의 색채와 비정형성, 질감을 아우르며 자연의 중요성을 배가한다. 더불어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와 가장 최근에 소장한 앨런 래스(Alan Rath)의 작품까지 관람하고 나면 헤스 아트 컬렉션이 구사하는 다채로운 예술 언어에 꽤나 놀랄 것이다. 그저 부유한 일가의 수집품이 아니라 개성과 내러티브가 확실한 전시 구성이 흥미롭다.

PROGRAM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는 프로그램도 이곳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아트 디렉터와 함께하는 컬렉션 산책(Walk the Collection with Our Director of Art)’을 주목할 것. 아트 디렉터 로버트 세발로스(Robert Ceballos)에게 헤스 아트 컬렉션의 작품 설명을 비롯해 도널드 헤스와 작가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으며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예술 작품에 맞춰 페어링한 와인을 마주하는 경험은 무척 신선하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금요일 진행하며 예약은 필수다. 이 밖에도 와이너리의 정원에서 키운 각종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세이버리 플레이트(Savory Plate)’, 와인에 어울리는 각종 디저트를 포함한 ‘스위트 플레이트(Sweet Plate)’ 등 미각까지 알차게 채워주는 다양한 코스를 접할 수 있다. 또한 ‘사자 길들이기(Taming the Lion)’라는 와인 블렌딩 체험과 작은 오픈카 ATV로 포도밭을 누비고 와인을 페어링해 건강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헤스 아트 컬렉션과 더불어 정원에서 고요한 내적 활동을 경험하고 비더산의 자연을 몸소 느끼는 외적 활동까지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이 헤스 퍼슨 이스테이츠의 독보적 매력이다.





헤스퍼슨 이스테이츠에서 바라본 비더산의 와이너리 전경. © Hess Persson Estates





레오폴도 마레르(Leopoldo Maler)의 ‘Homage’(1974). Photo by Olaf Nagel © Hess Persson Estates





마그달레나 아바카노비치의 ‘Crowd 1’(1987) 설치 전경. Photo by Olaf Nagel © Hess Persson Estates

Q&A WITH ART DIRECTOR, ROBERT CEBALLOS
헤스 아트 컬렉션의 간략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헤스 아트 컬렉션은 범세계적 예술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요. 도널드 헤스는 미술 작품을 수집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거든요. 바로 자다가도 생각을 떨치지 못해 벌떡 일어날 만큼 강한 충격을 주는 작품을 수집하는 것. 주로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는데, 작가를 몇십 년 동안 따라다니기도 하면서 직접 교류하고 예술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인드가 돋보이죠. 그런 창립자의 열정과 진지함이 우리 미술관을 우리답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작가와 그들의 예술이 도널드 헤스의 삶의 방식과 관점에 변화를 일으킨 만큼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내보여야 한다고 여겼으니까, 그에게 헤스 아트 컬렉션은 곧 컬렉터로서 예술과 작가를 지원하는 방법이에요.
그중 작품 한 점과 와인 하나를 페어링한다면요? 꽤 어려운 질문이네요. 미술관의 작품뿐 아니라 헤스 퍼슨 와인에는 저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으니까요. 언제 질문을 받는지에 따라 다른 답변을 드리겠지만 바로 지금 하나를 고르라면, 제게 항상 제1순위인 와인 ‘더 19 블록 퀴베(The 19 Block Cuvee)’가 떠오르네요. 그리고 요즘 자주 감상하는 작품은 스위스 작가 미하엘 비버슈타인(Michael Biberstein)의 ‘E-Piece’(2002)입니다. 바로크 미술의 레퍼런스가 느껴지는 작품인데, 소나기가 내리는 듯한 그림이 마치 17세기 종교화 같아요. 종교적 상징을 담은 작품이 아닌데도요. 이 작품을 떠올리면 더 19 블록 퀴베 와인이 생각납니다. 370~609m 고지에 있는 19구역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로 만든 와인인데, 사실 이런 산자락에 포도밭을 일구기란 쉽지 않죠. 가파른 경사면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뤄낸 성과인 만큼 독특한 맛을 내요.
헤스 퍼슨 이스테이츠로 휴가를 떠나고 싶은 독자에게 팁을 주세요. 나파 시가지에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이곳에는 다양한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죠. 와이너리로 향하는 시골길을 따라오면 마야카마스산(Mount Mayacamas)의 구불구불한 길을 탐험할 수 있어요. 고속도로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있는 매력이죠.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예약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니 좀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웹사이트를 방문하거나 언제든 편하게 전화 주세요.





앤디 골드워시의 ‘Surface Tension’(1993) 설치 전경. Photo by Robert Russo © Hess Persson Estates

 TRAVEL TIP 
일단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면서 일정에 나파밸리를 추가하면 가장 이상적인 루트다. 나파밸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약 1시간, 샌프란시스코만 북쪽 끝까지 가야 닿을 수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좋은 전망을 선호한다면 서쪽 루트를 선택하자. 나파시 중심에서 헤스 퍼슨 이스테이츠까지는 경로가 꽤 단순한데, 레드우드 로드를 따라 북쪽으로 15분 정도 올라가면 헤스 퍼슨 이스테이츠의 사자 그림이 담긴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나파밸리 지역의 와이너리를 잇는 대중교통은 많지 않으니 무조건 차를 렌트하는 게 좋다. 여행사에서 기획한 단체 투어도 있지만, 조금 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유를 갖고 나파 지역의 모든 것을 향유하기 바란다. 근처에서 특별한 와인을 시음하고 싶다면 와인 열차(The Wine Train)를 추천한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풀 열차가 1864년에 놓인 철도를 따라 나파밸리를 가로지르는데, 고전적인 열차 안으로 들어서면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이 반겨주고 코스 식사를 음미하며 창밖으로 너른 포도밭과 하늘이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스타돔 좌석을 추천한다. 돔 형태 열차의 좌우 벽면을 창문으로 빼곡히 메워 마치 움직이는 테라스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붉은색 좌석과 하얀색 식탁보, 나무 재질로 마감한 실내에서 덜컹거리는 열차 소리와 함께하면 그야말로 20세기 초반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위대한 개츠비’의 호화로운 프라이빗 파티에 초대받은 듯한 분위기에 빠져든다. 또한 시에서 주관하는 ‘나파 아트 워크(Napa Art Walk)’는 도시 곳곳에 공공 미술 작품을 설치해 나파밸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느덧 7회째를 맞은 나파 아트 워크의 주제는 ‘Play!’로, 미국 서부에서 활동하는 작가 7명이 조각과 설치 작품 10여 점을 선보인다. ‘Otocast’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작가들이 직접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도 들을 수 있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윤효정(프리랜서)
사진 제공 헤스 퍼슨 이스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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